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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후계 모의했다는 ‘윤필용 사건’은 모함… 그래도 朴리더십 존경”...........‘윤필용 쿠데타’의 전말책으로 낸 지성한 회장
주해
2022. 12. 16. 20:23
2022-02-20 12:25:41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2/02/19/WOI4274TG5B3TLMZPBOYT46XEM/
“박정희 후계 모의했다는 ‘윤필용 사건’은 모함… 그래도 朴리더십 존경”
박정희 후계 모의했다는 윤필용 사건은 모함 그래도 朴리더십 존경 아무튼, 주말 윤필용 쿠데타의 전말 책으로 낸 지성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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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용 쿠데타’의 전말
책으로 낸 지성한 회장
1973년 3월 9일 육군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 영문도 모르는 채 조사실로 끌려온 40대 육군 대령은 조사관이 시키는 대로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었다. 계급장이 없는 해진 군복이었다. 며칠 동안 강도 높은 취조가 계속됐다.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 소장이 쿠데타에 성공하면 자리를 내주기로 했다면서? 모두 털어놔!” 세간에 박정희 정권 최대 권력 스캔들로 알려진 ‘윤필용 쿠데타 사건’의 시작이었다. 윤 소장이 한 술자리에서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의혹이었다. 군 재판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된 윤 소장은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다 1975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휘하 군 간부 40여 명도 강제로 군복을 벗거나 형을 살았다.
당시 윤 소장과 함께 내란 음모에 휘말려 옥고를 치른 사람 중 한 명이 자동차 부품 업체 한성실업 창업주인 지성한(90) 회장이다. 그는 지난 설 연휴 직전 윤필용 사건의 진상을 담은 책 ‘반추(反芻)’를 냈다. 군 엘리트가 한꺼번에 잡혀가고도 그 내막이 거의 알려지지 않아 미국 CIA조차 ‘실체를 알 수 없다’ 했던 사건의 블랙박스가 열린 셈이다. 최근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지 회장을 만났다. 그는 당시의 신문 기사나 재판 기록을 보지 않고도 2시간 넘게 그때 일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지성한 한성실업 회장은 1973년 '윤필용 쿠데타 사건'에 휘말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뒤 군복을 벗고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1970년대 정치판은 날카로운 발톱을 감춘 채 권력욕에 찬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정글이었다"고 했다.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국운을 바꾼 윤필용 사건
-사건 50년 만에 책을 낸 이유는.
“윤필용 사건은 희생자가 너무 많았다. 사건 진상을 알리고 싶었다. 나이도 있고, 사건을 겪었던 사람도 나까지 셋 정도밖에 남지 않아 지금이 역사의 증인으로 나설 적기라 생각했다.”
지 회장은 당시 육군 중앙범죄수사단장(대령)이었다. 1972년 12월 모 일간지 사장 A씨 초대로 윤필용 소장, 김시진 청와대 정보비서관, 정소영 경제수석과 함께한 송년 모임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윤 장군이 술자리에서 A에게 나를 ‘이놈의 영감’ 하면서 후계자를 정해야 한다고 떠들었다며? 이런 버릇없는…”이라며 관련자 색출을 지시했다. 유신헌법(1972년 10월)을 선포한 직후였다.
-누군가 모함을 했다는 건가.
“윤필용 소장은 오히려 A 사장이 먼저 후계자 운운했고, 본인께서 ‘무슨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며 화를 냈다고 했다. 알고 보니 A 사장과 청와대 핵심 인사 B씨가 윤 소장과 나를 비롯한 여러 군인을 그물로 몰아넣으려던 시나리오였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함께 정권 실세였던 윤 소장이 하루아침에 반역자로 추락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누명을 썼나.
“박 대통령이 대로(大怒)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A 사장을 찾아가 녹음기를 켠 뒤 물었다. 보안사령관에게 무엇인가 시인한 게 있다던데 사실이냐고. A 사장에게 ‘별일 없었다’는 답을 들었고 그 녹음 테이프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하지만 이후 서빙고에 붙들려 가 ‘A 사장에게 총을 들이대며 협박했느냐’는 말을 들었다. 녹음 테이프는 대통령에게 보고되기 전 보안사에 압수됐고, A 사장은 사실과 다른 내용을 허위진술해 윤 소장과 내게 누명을 씌웠다.”
-왜 그런 음모를 벌였을까.
“권력 싸움이었다. 윤필용 소장은 당시 대통령의 총애와 확고한 지지 세력으로 입지가 강화됐다. 권력욕으로 눈이 맞은 A사장과 청와대 인사 B씨는 정권 2인자 이후락과 군의 수장 윤필용을 무너뜨리려 했다. 윤 장군이 대통령을 험담하며 후계자를 논했다고 보안사령부에 밀고했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증거는 없지 않나.
“쿠데타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우리에게 누명을 씌운 배후자들에 대해서는 진상 조사나 재판이 이뤄지지 않았다. 진실이 담긴 녹음 테이프를 무시하고 사건을 쿠데타로 몰고 간 당시 보안사령관은 그후 좌천됐다. 쿠데타 모의가 터무니없음을 보여준 방증이다.”
-당신도 박정희의 신임을 받았는데.
“5·16 당시 전속 부관 등 모두 박정희의 총애를 받던 사람들이 사건에 연루됐다. 만날 때마다 내게 ‘지 대령’ 하던 박 대통령이 한마디도 소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나를 감옥으로 보냈다. 1970년대 정치는 정글과도 같았다.”
-고문 후유증은 없나.
“서빙고 분실을 떠올리면 아직도 등줄기가 뻣뻣해진다. 몇 번이나 기절하면 군의관이 와서 살리고 또 고문했다. 출소 후 당시 조사관을 우연히 마주쳤다. ‘처음엔 복수를 다짐했지만 당신도 국가의 공복으로 애쓴 것뿐’이라고 말해줬다. 그가 명함을 주며 ‘살다가 어려운 일 있으면 목숨 바치고 나를 돕겠다’고 했다. 그 이후로 만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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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경비사령부 시절 윤필용(왼쪽)과 지성한. /지성한 회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