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 미술/전시 . 탐방 . 아트페어
"그림은 어떻게 봐야 되나요?" 미국 현대미술 거장 데이비드 살레에게 묻다
주해
2025. 6. 1. 12:22
그림은 어떻게 봐야 되나요? 미국 현대미술 거장 데이비드 살레에게 묻다
"그림은 어떻게 봐야 되나요?" 미국 현대미술 거장 데이비드 살레에게 묻다
"그림은 어떻게 봐야 되나요?" 미국 현대미술 거장 데이비드 살레에게 묻다, 미국 현대미술 대표 화가 데이비드 살레 인터뷰 34세때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최연소 회고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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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대미술 대표 화가 데이비드 살레 인터뷰
34세때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최연소 회고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등에 작품 소장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스토리지에서 9월7일까지 전시회
데이비드 살레.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1950년대생 화가 중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데이비드 살레(73)를 두고 하는 말들이다. 젊은 나이에 성공을 거두는 화가는 드물다. 평생에 걸쳐 발전을 거듭하며 그 성공을 계속 유지하는 화가는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다. 살레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작가다.
20대에 미술계에 뛰어든 살레는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34세때 사상 최연소로 회고전을 열며 일찌감치 ‘전설’의 반열에 올랐고, 그 후로도 줄곧 현대미술계의 중심에서 예술적·상업적 성공의 길을 걸어왔다. 그의 작품은 오스트리아 빈 알베르티나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구겐하임 등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사진, 예술 비평, 무대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를 누비는 그를 사람들은 ‘예술가들의 예술가’라고 부른다.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9월 7일까지 열리는 살레의 전시 ‘언더 원 루프’는 지난 50년에 걸친 그의 작품세계 전체를 조망하는 전시. 그를 유명하게 만든 초기작부터 신작 ‘윈도우 시리즈’와 함께 애니메이션 형태로 만든 작품까지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전시 개막에 앞서 살레를 만나 작품의 의미는 무엇인지,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지를 물었다. 예술을 쉽게 설명하는 작가이자 달변가로도 이름난 작가답게 유려한 답변이 돌아왔다.
▷전시 1부에는 당신의 초기작이 나와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뭘 뜻하나요.
“한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그게 현대미술의 특징이니까요. 물론 사람들은 그림을 보며 ‘이건 이런 뜻이야’라고 명쾌한 결론을 내리고 싶어해요. 그게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래서 광고나 대중문화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이미지를 보여줘요. 하지만 현대미술 작가들은 일부러 작품의 구조와 의미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관객이 천천히 그림을 감상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복잡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기를 원하니까요. 이건 순수예술과 대중문화의 중요한 차이 중 하나입니다. 제 작품도 그렇습니다. 작품에 여러 개의 요소를 동시에 넣어서 다양한 해석을 유도하고, 이 요소가 결합해 음악의 화음처럼 아름다워지도록 구성했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찬찬히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으세요. 너무 빠르게 ‘이 그림은 이런 뜻’이라고 판단하지는 마세요. 누군가를 대할 때도 그 사람을 너무 쉽게 단정지으면 안 되는 것처럼요.”
1부에 나온 작품 Playing, Dreaming(2015).
'트리 오브 라이프' 연작이 나와 있는 2부 전시장.▷반면 2부의 ‘트리 오브 라이프’ 연작은 명확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야기를 담고 있긴 해도, 정해진 해석이나 뚜렷한 결말이 없다는 점은 1부 작품과 똑같아요. 같은 그림을 두고 동시에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것. 그게 미술의 장점이자 흥미로운 점이지요.”
▷아파트 창문 너머의 다양한 사람들을 그린 ‘윈도우 시리즈’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렇게 설명해 볼게요. 도시를 걷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옆에는 아파트 건물이 있고 각각의 창 너머로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고립된 공간에 있으면서도, 함께 존재한다는 그 감각. 그 감각을 그림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회화라는 장르의 ‘동시에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거지요. ‘동시성’은 제 작품과 미학을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데이비드 살레의 애니메이션 작품 설치 전경.
'윈도우 시리즈' 설치 전경.
▷동시성이란 건 우리 삶에 있어 어떤 의미인가요.
“정말 좋은 작품에는 항상 두 가지가 나란히 존재합니다. 강한 재치(wit)와 깊은 슬픔(melancholy). 이런 상반되는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해서 ‘지금 이 순간’이 다양한 요소를 함께 품고 있음을,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유일무이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일깨워주는 게 그림의 역할이고 본질입니다. 그건 우리가 그림을 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움직이는 애니메이션 작품들도 나왔습니다.
“옛날부터 제 그림을 한번 움직이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번 기회에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시선을 사로잡는 유쾌한 장르에요. 하지만 한계도 있습니다. 항상 정해진 방식으로만 움직이니까요. 반면 그림은 그 자체로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는 이의 마음 속에서는 늘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지요. 그래서 그림은 절대 ‘소진’되지 않아요. 물리학 용어 중에 잠재 에너지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힘. 회화는 그 에너지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그림은 열려 있는 매체입니다.”
▷당신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일부러 피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건 별로 특별하지도, 재미있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문화, 그리고 그 안에서 접해온 것들에 의해 형성된 존재잖아요. 어디서 뭘 했는지보다 중요한 건 그 경험들에 ‘내가 어떻게 반응했는가’예요. 그 ‘반응’은 제 작품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걸 보면 되죠. 제가 겪은 일을 따로 말해야 한다면 별로 재미 없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