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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첫 출근날 사표쓰고 유엔으로 날아간 남자.....20년째 굶주림과 싸우는세계식량계획 임형준 소장
주해
2022. 12. 14. 10:31
2021-11-27 08:17:50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1/11/27/RWSH5YUVCJBL5B57LZ4SQX6JMM/
대기업 첫 출근날 사표쓰고 유엔으로 날아간 남자
대기업 첫 출근날 사표쓰고 유엔으로 날아간 남자 아무튼, 주말 20년째 굶주림과 싸우는 세계식량계획 임형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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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굶주림과 싸우는
세계식량계획 임형준 소장
임형준 소장은 20대 때 배낭여행으로 인도에 다녀왔다. 하루는 짐이 무거워 인력거를 타려는데, 인력거꾼들끼리 경쟁이 붙었다. 100루피, 20루피, 15루피로 가격을 내리는 이들을 보고 ‘가난’이 무엇인지 느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시내에서 아침 먹고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총성이 울렸죠. 하필 사무실 방향이 그쪽이라…. 귀가 쩌렁쩌렁 울리는데도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낯선 나라에 도착한 지 45일 만에 쿠데타가 일어났다. 굶주린 사람들을 도우러 간 곳이었다.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축출되고 군부가 정권을 잡았다. 기아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도 원점으로 돌아갔다. 아프리카 기니공화국에 파견된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임형준(50) 소장에게 벌어진 일이다. 임 소장은 한국 사무소에서 지난 10년간 소장으로 활동하다, 지난 7월 기니로 발령났다.
유엔에서만 20년 넘게 활동한 임 소장의 이력이 독특하다. 스무 살에 배낭을 메고 미국으로 날아간 뒤 80국을 여행했다. 돌아와 ‘나는 지구를 콱 삼켜버렸다’는 제목의 책을 냈다. 26세에 대기업에 합격했지만 입사 첫날 퇴사했다. 이유는 출근길 ‘좀비 부대’의 일원이 되기 싫어서! 그가 결국 선택한 곳은 유엔. 뉴욕 본부 인턴으로 시작해 빈곤 국가의 기아 종식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 기니로 출국하기 전 임 소장을 만났다. 출국 후 한 차례 더 화상으로 만났다.
◇“쿠데타 일어난 나라에서 일합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총격이 눈앞에서 벌어졌다고.
“지난 9월 5일 오전 8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군인들이 총을 쐈다. 민심이 안 좋은 줄은 알았지만, 쿠데타는 생각지도 못했다. 카톡에 불이 났다. 충격이 컸지만 두려워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총성이 나는 쪽으로 걸었다. 3년 임기 동안 시간만 때울 순 없으니, 빨리 정신줄을 붙잡아야 했다.”
-기니 사무소에선 어떤 일을 하나.
“한국 사무소에서는 모금과 홍보를 주로 했다면, 기니에선 실제로 배고픈 사람을 상대한다. 이곳엔 당장 굶주린 사람이 40만명 정도 된다. 올해는 코로나뿐 아니라 에볼라와 마버그 바이러스까지 발생하면서 상황이 더 심각하다. 우리 사무소는 주민들이 쌀농사를 짓도록 논을 확장하고, 쌀을 팔 수 있도록 저장 시설과 판로를 만든다. 그리고 추수한 쌀을 제값에 사서 학교 급식으로 납품하는 일을 한다.”
-원해서 간 나라인가.
“우리는 UN 본부에서 하라는 대로 한다. 그리고 나는 꼭 현장 소장이 되고 싶었다. 기니와 우리나라는 1964년에 똑같이 유엔 세계식량계획이 지원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20년 만에 수원국을 졸업하고 현재는 10위권 공여국이 됐다. 반면 기니는 6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원조를 받고 있다. 보크사이트라는 지하자원도 많고 가능성이 많은 나라인데, 곳곳에 만연한 부정부패 때문에 지원을 받아도 어려운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배고픈 사람에게 직접, 지속 가능한 도움을 주고 기아를 끝내는 게 세계식량계획의 역할이다.”
-가족을 지구 반대편에 두고 와 마음이 편치 않겠다.
“아내와 아홉 살 난 아들은 내년 1월에 기니로 올 예정이다. 아들은 구독자 300명을 거느린 유튜버인데 ‘아빠, 기니 소개 영상 찍으면 구독자 100만도 넘을 거야’라며 들떠 있다(웃음). 아내는 그림을 그리는데, 이곳에서 전시회를 열어 수익을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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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케냐의 소말리아 국경에서 식량 배급 후 난민들과 함께 웃는 임형준 소장. /W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