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한국 고미술

대동여지도 (大東輿地圖) : woodcut printed and color on paper 1. 395×209cm (ten-panel screen) 2. 315.8×209cm (eight-panel screen) 3. 236.3×209cm (six-panel screen) : 1861

주해 2025. 2. 7. 22:16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김정호는 머리말인 지도유설을 마무리하면서 ‘세상이 어지러우면 이를 통해 쳐들어오는 외적을 막는 일을 돕고, 시절이 평화로우면 이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보살핀다’고 적었다. 가히 그 말대로 당대 조선의 지형, 교통, 물류, 국방 등 모든 종합적인 국토정보를 하나의 지도에 총망라한 고산자의 일생 역작을 이번 경매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국가적 위기를 겪고 다시금 행정구역의 정비를 마친 조선에서는 치국과 국방, 외교 등 여러 필요로 인해 정확하면서도 세부적인 정보를 담은 지도 제작의 필요성이 있었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는 성곽 및 요새의 구조와 배치를 그린 군사지도인 관방도나, 전국의 모습을 한 눈에 들어오도록 그린 전국도, 각 도의 세부도인 팔도도와 도별도, 그 이외에 군현도와 읍지도 등 다양한 형태의 지도들이 국가와 관청 차원에서 제작 및 배포됐다.

이 중 전국도는 조선 후기에 들어 1712년 백두산 정계비 건립을 통한 청나라와의 국경선 합의, 1700년대 전반기 정상기鄭尙驥, 1678-1752의 동국지도東國地圖 완성을 통해 그 형태가 비로소 확립됐다. 특히 정상기는 기존 지도들이 각 지역의 위치와 서로 간의 거리가 잘 맞지 않는 오류를 바로잡고자, 100리를 1척으로 표현하고 10리를 1촌으로 나타내는 백리척百里尺이라는 새로운 축척법을 도입해 동국지도를 제작했다. 이에 따라 전대의 지도에 비해 보다 규격화되고 정형화된 축척의 지도 제작이 가능해졌으며, 이때 그가 확립한 지도 제작의 규범은 후대에 전국도 제작의 기본적인 참고 사항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흐름을 기반으로 1861년(신유년)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간행된다. 대동여지도는 가로 20cm, 세로 30cm 정도의 목판을 총 126면에 걸쳐 이어 붙인 형태로 만들어졌다. 1개의 목판은 가로 80리와 세로 120리를 나타내어 동서로 약 1,520리, 남북으로는 약 2,640리에 이르는 총 거리를 표현했다. 각 면에는 산과 강·도로·군진·성·읍치·창고·역참·봉수·능침 등 많은 지형과 시설을 다양한 기호로 표기했으며, 범례를 나타낸 지도표를 별도로 같이 실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필요한 정보를 쉽게 습득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지도 상에 필요 이상의 글자를 싣지 않게 되어 판각의 수고를 덜고, 다량의 정보를 지면에 옮기는 데에서 오는 혼동을 방지할 수 있었다. 도로에는 10리마다 방점을 찍어 사람들이 지역 간을 이동하면서 자신의 위치와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가늠하기 용이하게 했다. 강과 하천에서도 배가 다닐 수 있는 곳은 두 줄의 실선으로, 그렇지 못한 곳은 한 줄로 나타내어 수로 이용 시에도 쉽게 참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한 이전 시기에 유통됐던 지도들과, 1834년에 김정호가 제작한 또 다른 지도인 청구도靑丘圖처럼 일반적인 책 형태가 아니라 분첩절첩식分帖折疊式의 22첩으로 제작됐다. 그로 인해 사용자는 필요한 지역이 그려진 지도 책만 소지하고 이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22첩을 모두 합쳐 펼칠 경우에는 가로 약 3.6m에 세로 약 6.8m에 달하는 거대한 전국도가 된다. 또한 주로 필사로 제작됐던 앞선 시기의 다른 지도들과 달리 목판으로 제작되어, 필사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오류와 왜곡을 막고 똑같은 형태의 지도를 반복 생산하는데 유리했다. 현재까지 국내외로 약 35점의 대동여지도가 남아 있으며, 이 중 최초 간행 시기인 신유년(1861)에 제작된 목판 완질본은 국내 약 7점이 전하여 한층 귀하다. 아울러 대부분 박물관과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어 개인이 쉽게 접하기 힘들다.

출품작은 목판본 대동여지도로 국왕 재위 12년 신유년當宁十二年辛酉이라는 기록이 있어 대동여지도의 최초 간행 시기인 1861년에 제작됐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오랜 기간 보관되어 오면서 아쉽게도 거제도의 일부가 소실됐다. 지도첩을 병풍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공간상의 문제로 인해 제주도를 전라도의 남쪽이 아닌 서쪽에 배치한 점과, 지도제목 1판이 황해도의 옹진반도 좌측으로 옮겨진 것이 확인되며, 대동여지도의 서문인 지도유설地圖類說 2판이 누락됐다. 그러나 축척표와 범례를 표기한 지도표, 한양도성 내부를 나타낸 도성도, 한양을 포함한 인근 일대를 그린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 등 대동여지도에 같이 포함된 부록과 지도는 대체로 빠짐없이 실렸다.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은 목판 인쇄만으로 그치지 않고, 필요한 부분에는 여러 채색을 가미하여 시인성과 작품성을 한층 더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개인이 소장한 완질에 근접한 목판본 대동여지도라는 점은 이 작품의 희소성을 돋보이게 만든다.

참고문헌
이상태, 「한국고지도 발달사」, 『한국지도학회지』7(2007), pp.31-43.
김기혁, 「『대동여지도』 판본 형태의 비교 연구」, 『한국고지도연구』14(2022), pp.31-71.

 

20250218 : S :  추정가 KRW 320,000,000 ~ 1,000,000,000  :  HP : 320,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