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한국 미술사
백남준이 노은님에게 말했다… “천천히 가요, 죽으면 한국에 큰 손해야”.....파독 간호사 출신 화가 노은님 별세
주해
2022. 12. 28. 00:41
2022.10.20
백남준이 노은님에게 말했다… “천천히 가요, 죽으면 한국에 큰 손해야”
백남준이 노은님에게 말했다… “천천히 가요, 죽으면 한국에 큰 손해야”
백남준이 노은님에게 말했다 천천히 가요, 죽으면 한국에 큰 손해야 발자취 파독 간호사 출신 화가 노은님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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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취] 파독 간호사 출신 화가 노은님 별세
2011년 서울 갤러리현대 개인전 당시 노은님 화가. 뒤쪽에 밝은 색채의 새 그림이 보인다. /이덕훈 기자
파독(派獨) 간호보조원 출신의 세계적 화가 노은님(76)씨가 18일 독일에서 암 투병 중 별세했다. 꽃이나 새 등의 단순한 형상으로 태곳적의 생명력을 표현해온 화가다.
전북 전주에서 9남매 셋째 딸로 태어났다. 스물한 살 때 모친을 잃었다. 방황하다 간호보조교육을 받고 경기도 포천군 면사무소에서 결핵관리 요원으로 일했고, 신문 광고를 보고 1970년 독일 함부르크로 떠났다. 함부르크 항구 근처의 시립병원은 근무 시간이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까지였다. 말도 잘 안통하는 타지에서 그는 퇴근하면 방에 앉아 그림만 그렸다. 그러던 어느날 감기로 출근 하지 못한 노은님의 집을 찾아온 간호장이 그의 그림을 보게 되고, 병원에서 작은 전시회를 열어줬다. 관람객 중에는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학 한스 티만 교수도 있었다. “학교에 지원해보라”고 조언했다. 스물 일곱, 그렇게 예상치도 못한 미대생이 됐다. 훗날의 이야기지만, 노은님은 한국 여성 최초로 1990년부터 20년간 이 대학 교수를 지내게 된다.
1979년 대학 졸업 직후부터 전업작가로 활동했다. 현학적인 미술 이론과 그림에 물려있던 독일 화단은 어린아이 낙서 같은 노은님의 순수한 형상에 반색했다. 중요한 조력자가 바로 백남준이었다. 함부르크 대학 초대교수로 있던 백남준의 주선으로 1982년 국내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85년에는 독일 ‘평화를 위한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등 여러 기회를 얻었다. 어느 겨울, 백남준을 공항으로 바래다 주는 길이었다. 시간이 늦을까 과속 운전하는 노은님에게 백남준이 말했다. “천천히 좀 가요. 노은님씨랑 나랑 이렇게 죽으면 한국 미술사에 큰 손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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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님 1999년작 '마리타가 만든 정원'(40×49.8㎝). /가나아트
노은님 1990년작 '암초상어'(45×55㎝). /가나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