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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꿈꾼 길가메시의 깨달음… 영원한 건 인간이 아닌 인간의 업적
주해
2023. 1. 3. 10:26
불멸 꿈꾼 길가메시의 깨달음… 영원한 건 인간이 아닌 인간의 업적
불멸 꿈꾼 길가메시의 깨달음… 영원한 건 인간이 아닌 인간의 업적
불멸 꿈꾼 길가메시의 깨달음 영원한 건 인간이 아닌 인간의 업적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82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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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5.5m 높이의 ‘사자를 압도하는 영웅’(왼쪽) 조각상과 날개를 달고 인간의 머리를 한 황소의 조각상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기원전 8세기 작품이다. 사자를 압도하는 영웅의 주인공은 길가메시, 황소의 정체는 여신 이슈타르가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세계관이 응축된 길가메시 이야기는 계속 변화하면서 주변 지역으로 확산됐고 풍부한 내용과 뚜렷한 메시지를 담게 됐다. /플리커
약 4500년 전에 기록된 길가메시 이야기는 인류 최초의 서사시다. 석판 12개 위에 기록한 시구 3000행은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왕국 우룩(Uruk)의 왕 길가메시의 영웅적 모험을 그린다. 처음에 시의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룩의 성곽으로 올라가서 찬란한 도시를 보라. 그리고 삼나무 궤 안에 보관된 청람석 석판 위에 새겨진 길가메시 이야기를 보라.
길가메시는 3분의 2가 신이고 3분의 1이 인간인 특별한 존재지만 폭군 모습으로 등장한다. 젊은 남자들을 전쟁터로 내몰고, 많은 처녀에게 몸을 바치도록 했다. 압제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하늘에 탄원하자 신들은 길가메시와 싸워서 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인간 엔키두를 만들어 지상으로 보냈다. 두 영웅은 온종일 싸움을 벌였으나 끝내 승패를 가리지 못하자, 결국 싸움을 중단하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인간의 숙명에 도전한 첫 영웅
어느 날, 길가메시는 엔키두에게 사막 너머 서쪽 세계 끝에 있는 신성한 삼나무 숲으로 가서 나무를 베어오는 모험을 제안했다. 이 숲에는 훔바바라는 괴물이 신들의 나무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훔바바를 죽이고 거대한 삼나무를 베어 왔다. 이런 용맹한 길가메시의 풍모를 보고 사랑에 빠진 여신 이슈타르가 구혼했으나 차갑게 거절당했다. 격분한 여신은 하늘의 황소를 땅으로 보내 이들을 공격하게 만들었지만, 두 주인공은 오히려 소를 죽이고 심지어 고기를 잘라 여신에게 던져 모욕했다. 이 오만방자한 행동이 결국 화를 불렀다. 신들이 모여 재판한 결과 둘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는데, 웬일인지 엔키두에게만 죄를 물어 목숨을 앗았다.
길가메시는 친구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영생불사의 비밀을 알아내겠다고 결심했다. 세계의 동쪽 끝에서 우트나피시팀이라는 노인이 죽음을 모르고 영생을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기에 그 노인을 찾아가는 여행길에 올랐다. 하늘에 닿는 산을 지나고 어두운 터널을 지난 후 ‘죽음의 강’을 건너니 다시 가없는 바다가 앞을 가로막는다. 길가메시는 다시 용기를 내어 우르사나비라는 뱃사공의 배에 올라타고 힘겨운 항해를 한 끝에 드디어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으로 가서 우트나피시팀과 아내를 만났다. 그렇지만 이 부부가 전해준 영생의 비밀은 길가메시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옛날 노인이 겪은 대홍수 이야기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내용을 묘사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부조 작품. 길가메시의 모험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방황과 고난 끝에 어린이의 불가능한 꿈을 버리고 어른의 현명함을 얻는 성장·성숙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폭군이던 길가메시는 현명한 왕으로 탈바꿈한다. /위키피디아
옛날 언젠가 신들의 왕 엔릴은 수선스럽기만 하고 아무 쓸모없는 인간을 몰살하고자 대홍수를 일으켰다. 이때 에아 여신이 우트나피시팀에게만 홍수를 피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여신이 시킨 대로 큰 방주를 만들어 아내와 온갖 가축을 실었다. 7일 동안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었으나 우트나피시팀만은 재앙을 피했다. 7일째 되는 날 드디어 폭풍우가 멈추자 그는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세상은 전부 물에 잠겨 있고 사람들은 모두 진흙으로 변해 있었다. 방주 밖으로 나가도 될지 알아보기 위해 차례로 비둘기와 제비, 까마귀를 날려 보냈는데 앞의 두 새는 앉을 곳을 찾지 못해 돌아왔지만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다(성경에 나오는 대홍수 이야기와 비교하면 새의 종류와 순서가 다르다). 물이 마른 것을 알게 된 우트나피시팀은 아내와 가축을 데리고 땅에 내려와 신께 기도를 올렸다. 엔릴은 살아남은 우트나피시팀에게 세상 끝의 먼 섬에서 영생을 누리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러니 이들이 영생을 누리는 것은 오직 신들의 특별한 은총 덕분일 뿐, 다른 사람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실망한 길가메시는 계속 영생의 비밀을 찾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러자 우트나피시팀은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가르쳐 주기 위해 만일 그가 ‘작은 죽음’, 곧 잠을 피할 수 있다면 진짜 죽음도 피할 수 있으니 해보라고 권했다. 그렇지만 먼 여행 때문에 피곤했던 길가메시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7일 동안이나 곯아떨어졌다. 잠에서 깬 길가메시가 실망하자 아내가 영생은 아니더라도 대신 다른 보상을 해주자고 제안했다.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풀이 바닷속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이다. 길가메시는 회춘의 풀을 얻어 귀향길에 올랐다. 가는 도중 샘에서 목욕하는데 뱀 한 마리가 나타나 그 풀을 먹고 허물을 벗고는 젊음을 되찾았다. 길가메시는 영생도 회춘도 불가능하게 된 상태로 고향 우룩으로 돌아왔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내용이 담긴 석판. 고대 바빌로니아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2013년 이라크 남부에서 발견됐다.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