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한국 미술사
손재형은 왜 세한도를 지키지 못했나
주해
2022. 12. 3. 01:03
2021-01-08 22: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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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2040] 손재형은 왜 세한도를 지키지 못했나
카페 2040 손재형은 왜 세한도를 지키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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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뜨거웠던 한 사내의 삶과 그의 애장품을 생각하며 새해 첫 주를 맞았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컬렉터이자 뛰어난 서예가였고 정치에 투신했던 소전 손재형(1903~1981) 얘기다. 지난해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 선생의 ‘세한도(歲寒圖)’ 기증 소식을 취재하면서 그에 대해 궁금증이 커졌다.
20세기 중반 촬영한 소전 손재형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추사 김정희가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이 걸작의 파란만장한 소장사(史)에서 그를 빼놓을 수 없다. 손재형은 일본으로 건너간 세한도를 되찾아온 주인공이다. 1943년 경성제대 교수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가 그림을 갖고 일본으로 귀국하자, 이듬해 거금을 들고 도쿄로 갔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도쿄는 밤낮 없이 계속되는 연합군의 공습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손재형은 병석에 누워 있는 후지쓰카 집을 매일 찾아가 “세한도는 조선 땅에 있어야 한다”고 애원했다. 100여일 만에 후지쓰카 마음이 움직였고 결국 세한도를 내주었다. 그가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세한도는 한 줌의 재로 변했을지 모른다. 석 달 뒤 후지쓰카 집에 포탄이 떨어져 불이 났기 때문이다.
여기까진 널리 알려진 얘기. 이후 손재형은 정치에 참여하면서 소장품을 저당 잡히고, 세한도는 개성 출신 사업가 손세기 소유가 된 뒤 아들 손창근 선생에 의해 국민 품에 안겼다. 우리나라 문화재 역사에 길이 남을 경사다. 그런데 한편으론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목숨 걸고 세한도를 되찾아온 손재형은 왜 끝까지 애장품을 지키지 못했을까.
추사 김정희 '세한도'. 그림: 23.9x70.4cm, 글씨: 23.9x37.8cm.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