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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입고 빛나는 집
주해
2023. 5. 5. 11:02
어둠을 입고 빛나는 집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60] 어둠을 입고 빛나는 집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60 어둠을 입고 빛나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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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살던 집. 오래되어서 흐릿해진 장면들이 어슴푸레 끌어올리는 기억은 마음까지 말랑하게 만든다. 하지만 오래된 기억이 반짝반짝 빛나기만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 매끈하게 정리된 앨범처럼, 깔끔하게 단장한 소셜미디어처럼만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말이다. 남들은 모르는, 내밀한 기억 속에 오랜 집도 대부분 그렇게 명과 암이 교차하는 모습일 것이다.
회화와 사진을 전공한 손은영 작가는 ‘밤의 집 I(2020)’ 연작에서 초라한 집들을 주인공 삼아 낯선 당당함을 제시했다.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도시의 밤 골목을 헤매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가로등도 드문 좁은 길에서, 그는 누군가의 쉼터이자 희망일 수도, 또 전쟁터이자 고통일 수도 있는 집들을 찍었다. 가난은 감출 수 없는 것이라지만 사진 속의 작은 집들은 작가의 눈과 손에서 초라함을 이겨내고 아름다움을 입었다.
손은영, The Houses at Night #11,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