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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00년 한글특별전 ‘ㄱ의 순간’ 참여 작가 인터뷰][13] 도자기 파편 이어붙여 ‘번역된 도자기’ 만든 이수경
주해
2022. 12. 2. 10:13
2020-12-27 10:29:16
https://www.chosun.com/culture-life/art-gallery/2020/12/23/DCWHMQIFJ5HQ7MNA4XX72SAVLI/
“한글도 도자기도… 집집마다 즐겨쓰니 세상 천하 제일이구나”
한글도 도자기도 집집마다 즐겨쓰니 세상 천하 제일이구나 조선일보 100년 한글특별전 ㄱ의 순간 참여 작가 인터뷰 13 도자기 파편 이어붙여 번역된 도자기 만든 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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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00년 한글특별전 ‘ㄱ의 순간’ 참여 작가 인터뷰]
[13] 도자기 파편 이어붙여 ‘번역된 도자기’ 만든 이수경
이수경 작가가 출품작 ‘번역된 도자기’ 옆에 앉았다. 북한 해주 지역과 경기 여주 등의 도자기 파편을 이어 붙여 빚어낸 새로운 도자기다. 도자기 왼쪽 전면에 붓글씨로 유연하게 흘려 쓴 한글 글씨가 보인다. 그는 “서양화를 전공해 그런지 내게는 이 조각이 액자에 담긴 그림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나무 상자를 열었다. 도자기 파편이 가득했다. 100년 된 청자(靑瓷)부터 탄생 연대를 일별할 수 없는 토기의 잔해가 무용(無用)한 형태로 무더기였다. 깨진 도자기를 새로 조립해 전혀 다른 도자기로 빚어내는 작가 이수경(57)씨는 지난 1월, 중국 단둥에서 온 이 상자를 뒤적이고 있었다. “중국 고미술상으로부터 작품 제작용 도자기 파편을 제공받고 있다. 2~3년에 한 번씩 온다. 상자 속에서 웬 파편 하나가 딱 눈에 띄었다. 한글로 글씨가 적혀 있더라. 읽다가 소름이 끼쳤다. 하늘이 내린 계시처럼.”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한글 특별전 ‘ㄱ의 순간’에 참가하는 이씨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읽으며 전시를 준비하던 찰나, 이 글씨를 보는 순간 고민이 끝났다”고 말했다. 그의 전매특허 ‘번역된 도자기’ 연작은 2017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에 전시되고 최근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 소장될 정도로 세계적 각광을 받고 있지만, 글씨(한글)가 들어간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자기 중앙에 ‘…중에 제일 가는 이 단지는 양인 천인 가리지 않네. 강 건너 산 넘어 이 고장 저 고장 집집마다 즐겨 쓰니 세상 천하 제일이구나’라고 적혀 있다.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으나, 훈민정음 창제 의미 그 자체 아닌가.” 전시는 내년 2월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전관과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린다.
그는 도자기 파편을 에폭시(접착제)로 이어붙여 새 형상을 창조한다. 초성·중성·종성이 하나로 건축돼 한글로 형상화되듯, 파편이 합쳐져 예상치 못한 시각적 결과로 태어난다. 예컨대 ‘안녕’이 부서져 ‘낭연’으로 재조합되듯 전혀 다른 모양과 의미를 획득하는 식으로, 도자기를 통해 숨겨진 언어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금간 부위에 금(金)을 입힌다. 흉터를 장식해 적극 강조한다. 이씨는 이번에 100년 된 북한 해주(海州) 지역 도자기와 경기도 여주 백자 파편 등을 섞어 재조합했다. 130㎝ 높이로 부풀어 오른 ‘남북 합작 도자기’가 완성됐다. 한글 역시 원래 전국 팔도의 것이었다. “처음 한글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을 담은 외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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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된 도자기' 제작을 위해 깨진 도자기 조각을 에폭시로 이어붙이고 있는 이수경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