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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한국 미술사

미술사학자 최열 ..... 우리 山水를 모시듯 성실히 그린 조선의 화가들

by 주해 2024. 5. 25.

우리 山水를 모시듯 성실히 그린 조선의 화가들

 

우리 山水를 모시듯 성실히 그린 조선의 화가들

우리 山水를 모시듯 성실히 그린 조선의 화가들 Books가 만난 사람 미술사학자 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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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가 정조의 명을 받아 금강을 유람한 후 그린 '해산도첩' 중 '총석정'./혜화1117

조선 후기에 중국의 영향을 받은 관념 산수가 아니라 우리 땅의 실제 경치를 화폭에 담은 ‘실경(實景) 산수’가 유행했다는 사실이 지금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1970년대만 해도 대학에서는 “조선은 실경이 없는 관념 산수의 나라”라고 가르쳤다.

미술사학자 최열(68)은 “‘어떻게 화가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풍경을 그리고자 하는 욕망이 없을 수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그때부터 가졌다”고 했다. 20대 때의 그 의문을 파고든 결과물이 최근 출간한 ‘옛 그림으로 본 조선’이다. 조선 시대 실경 그림 1000여 점을 총망라해 모두 세 권으로 낸 이 책은 전작 ‘옛 그림으로 본 서울’(2020), ‘옛 그림으로 본 제주’(2021)에 이은 ‘옛 그림으로 본…’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1권 ‘금강’엔 금강산을 다녀온 화가들이 그린 그림, 2권 ‘강원’엔 관동팔경은 물론 설악산과 오대산, 영동과 영서 지역 주요 도시들을 그린 그림, 3권 ‘경기·충청·전라·경상’에는 임진강 이남 우리 국토의 실경을 샅샅이 모았다.

'옛 그림으로 본 조선'(전 3권)의 저자인 미술사학자 최열이 22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미술관에서 본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최열은 “고향 무주, 대학을 다닌 광주를 떠나 1980년대 초 서울로 이주했는데 가는 곳마다 ‘조선 시대엔 여기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다. 흑백사진을 보면 조선은 망해가는 나라 같은데 그림을 하나둘 찾기 시작하니 서울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더라”고 말했다. ‘옛 그림으로 본 서울’은 그렇게 시작됐다. 서울서 제주를 거쳐 전국으로 주제를 확장시킨 건 강연할 때 쏟아지는 청중들의 질문 때문이었다. “’저는 밀양 사람인데 밀양 그림은 없나요?’ 하는 식으로 저마다 자기 고향이 조선 시대엔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해하더라. 그래서 각 지방을 그린 옛 그림을 본격적으로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18세기 조선에서 실경 산수가 유행한 건 당시 선비들 사이에서 유람 열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실경 산수의 대표 주자로 여겨지는 겸재 정선이 처음 금강산에 간 게 1711년이에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전란 후에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실학이 유행하면서 영·정조 시대 조선은 일종의 문화적 ‘르네상스’를 맞이합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니 많은 이가 여행을 다니기 시작해요. ‘와유(臥遊)’라 해서 집에 누워 명승지 그림을 감상하는 일도 유행했고요. 명승지 화첩 수요가 높아지니 유능한 화가들이 일제히 그 일에 달라붙었어요. 18세기에 실경화의 시대가 열린 건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문인들이 쓴 유람기도 유행했는데, 그중엔 여성이 쓴 것도 있었다. “원주 출신 여성 김금원(金錦園·1817~1853)은 열네 살 때 집안을 설득해 남장을 하고 유람을 해요. 유람을 다녀온 후 모든 걸 접고 기생이 되죠. 그는 1850년 탈고한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에서 내금강을 ‘높고 험준하며 흰빛이 많고 푸른빛이 적다’고 쓰고, 외금강은 ‘온화하며 푸른빛이 많고 흰빛이 적다’고 묘사합니다. 내금강이 강경하고 외금강은 우아하다는 이야기죠. 이번 책에 김금원의 기록을 많이 인용했어요.”

그림 수요는 많았지만 화가들은 가난했다. “미술 시장 유통 구조가 지금과 달라요. 화가가 자발적으로 그려 돈을 받고 파는 게 아니라, 주문을 받아 그리고 비단 같은 것으로 대가를 받았죠. 그림값도 그리 비싸지 않았어요. 그러니 겸재는 평생 가난했고, 단원 김홍도는 찢어지게 가난했죠. 그림은 화가 손을 떠나 이 사람 저 사람 손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값이 올라갑니다.”

이번 책엔 겸재, 단원 등 교과서에 등장하는 화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들의 그림도 많이 실었다. 최열은 “최고의 경지에 있는 것만이 예술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다양한 양식, 화풍, 형태가 있는 게 예술이죠. 같은 풍경인데도 다른 화가가 그리면 달리 표현되잖아요. 미(美)의 본질은 그런 다채로움에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청류 이의성의 '실경산수화첩' 중 '총석정'. /혜화 1117

독자들에게도 같은 주제를 그린 화가들의 화풍이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하며 읽어달라 당부했다.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옛사람들은 자연을 신성하다 생각했어요. 자연이 베풀고 인간이 혜택을 받는다 여겨 자연 속에 사람이나 인공물을 그리긴 하되 아주 작게 그렸지요. 김홍도가 금강의 절경을 그려 정조에게 바친 ‘해산도첩(海山圖帖)’의 총석정 그림을 한번 보세요. 거품 하나, 물결 하나 소홀히 그리지 않았어요. 자연을 성실히 모시듯 그렸죠. 그런 것들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찾아내면서 화풍, 선(線), 색채 등을 살피는 것이 그림을 ‘읽는’ 태도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