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19 16:39:10
서울옥션 음정우·김현희 경매사
이중섭 ‘소’· 안중근 ‘경천’도 잊지 못할 작품
작품의 역사, 소장자가 더해나가는 것
“신진 작가 작품은 후원하는 마음으로 사야”
“작품 한 점 구하려 5번 설득도…고종 황제 하사품, 낙찰 후 눈물바다”
서울옥션의 미술 경매를 책임지는 김현희, 음정우 경매사(왼쪽부터)가 16일 서울 신사동 강남센터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했다. 사진은 이우환 작가의 '선으로부터(From Line)'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이 작품은 오는 22일 서울옥션의 제165회 경매에 출품된다. /박상훈 기자
미술품 경매는 치열한 스포츠 경기를 방불케 한다. 시작가 500만원에서 출발한 그림이 열띤 경합 끝에 수억원까지 오를 때는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게 되고, 마침내 낙찰돼 새 주인을 찾으면 까닭 모를 전율과 희열을 느낀다. 천문학적인 낙찰가가 확정될 때면 장내가 감격 어린 박수 소리로 가득 차기도 한다.
스포츠 경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운동 선수라면 경매 현장의 중심에는 경매사가 있다. 연단에 꼿꼿하게 선 채 손을 바삐 움직이며 호가를 부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한 박자 쉬며 숨 막히는 긴장감을 연출해낸다. 경매사의 완급과 박자 조절은 경매의 흥행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건이기도 하다.
서울옥션의 ‘얼굴’인 음정우 경매사업팀 이사와 김현희 수석경매사는 15년 넘게 주요 경매를 진행하며 미술계의 유명인사로 자리매김했다. 음 이사는 고미술품, 김 수석경매사는 현대 미술품 전문가다. 미술 시장의 역사가 새로 쓰인 중요한 순간들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당사자들이기에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식견도 갖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신사동의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15년 넘은 인연은 훌륭한 ‘케미(사람 사이의 조화나 호흡을 뜻하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쉴새 없이 뛰어난 입담을 자랑한 두 사람은 서로의 가장 열성적인 청자가 되기도 했고, 마치 퍼즐을 맞추듯 답변의 빈칸을 채워주기도 했다.
미술품 경매 업에 종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현희(이하 김) :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2005년부터 서울옥션에서 인턴 사원으로 일했다. 경매 현장을 눈으로 보니 굉장히 스릴 넘치고 재미 있더라. 그래서 미술품 경매 팀에 신입 사원으로 정식 입사하게 됐고, 입사 1년 후 경매사로 입봉했다(경매사는 경매 업체의 직원들 중 교육을 거쳐 선발된다).”
음정우(이하 음) : “원래 조소를 전공해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서울예고를 거쳐 고려대 조소과(현 디자인조형학부)를 졸업했다). 그러던 중 2008년 가나아트센터 공모전에 지원서를 내러 갔다가 서울옥션 신입 직원 채용 공고를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력서를 넣었고, 결국 미술품 경매팀으로 입사했다. 당시 김현희 경매사님이 내 사수였다. 마침 회사에서 남자 경매사를 필요로 했기에 입사 4개월 만에 경매사로 데뷔하게 됐다.”
김 : “경매 현장을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을 받느냐에 따라 이 일과 잘 맞는지, 잘할 수 있는 지 여부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경매를 처음 봤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해 지금까지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신입사원이나 인턴이 입사하면 경매를 처음 본 소감을 묻곤 한다. 즐거웠는지, 가슴은 뛰었는지 말이다.”
음 : “경매사로 일하다 보면 쾌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작품의 낙찰에 미치는 경매사의 영향력이 3~5%는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경매사가 진행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도 달라지고 매출도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중섭의 '소'. 2018년 서울옥션 제 147회 메이저 경매에서 47억원에 낙찰됐다. 현존하는 이중섭 작품 중 최고가다. /서울옥션 제공
그동안 경매를 진행했던 작품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김 : “고(故) 이중섭 작품의 최고가가 ‘소’ 연작으로 2010년과 2018년 두 번에 걸쳐 경신됐다. 2010년 낙찰작은 내가 경매를 준비한 작품이었고, 2018년 작품은 경매 준비에 이어 판매까지 직접 했다. 시작가 20억원에서 출발해 1억원씩 올렸으며 최종적으로 47억원에 낙찰됐다. 사상 최고가를 향해 올라갈 수록 ‘이 자리에서 한국 미술의 역사가 새로 쓰이는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나 가슴 벅찼다.
최고가를 경신하기 위해서는 우선 작품 자체가 좋아야 하고 작품을 살 수 있는 컬렉터가 있어야 하며, 높은 경매가를 인정 받을 수 있는 시장이 형성돼있어야 한다. 세 가지 요소가 모두 뒷받침될 때 작가의 최고가 경신이 이뤄지는데 이게 워낙 어려운 일이다. 2018년은 고(故) 김환기의 작품이 몇 개월에 한 번씩 최고가를 경신해나가던, 한국 회화의 기록적 호황이 계속되던 해였다(그 해 5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김환기의 ‘붉은 전면 점화’가 사상 최고가인 85억원에 낙찰됐으며, 이 기록은 이듬해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같은 작가의 ‘우주’가 131억8000만원에 팔리며 다시 경신됐다).”
음 : “나는 두 점의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 점은 고(故)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뤼순 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앞두고 있을 때 일본인 간수의 부탁을 받아 쓴 붓글씨 ‘경천(敬天)’이다(KBS의 ‘TV쇼 진품명품’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감정 평가를 받은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글씨를 소장했던 삼중스님이 낙찰되면 수익금으로 안 의사의 동상을 만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경매를 진행했다. 워낙 희소성이 높고 안 의사의 다른 붓글씨 2점이 이미 보물로 지정돼있었기에 당연히 경합을 이룰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국 유찰되고 말았다.
그 당시만 해도 붓글씨는 크기와 글자 수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경천’도 크기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쌌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이 붓글씨는 크기나 글자 수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작품이었다. 사형을 앞둔 안 의사가 일본인 간수에게 ‘하늘 무서운 줄 알고 하느님을 공경하라’는 뜻을 담아 써준 작품이었다(안중근 의사는 생전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였다). 그러니 값이 비싸다는 말을 들으며 속으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는가.”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음 : “고종황제가 독일인 칼 안드레아스 볼터에게 직접 선물하신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다. 신선들이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넘실대는 파도 위에서 구름을 타고 이동하는 장면을 그린 병풍화다. 을사늑약 체결 후 1908년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볼터에게 고종이 ‘너는 바다를 건너가야 하니, 우리의 신선들이 너를 지켜줄 것’이라는 의미로 하사하신 것이다.
볼터는 귀국 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져 피난을 다니는 중에도 군선도를 꼭 들고 다녔다고 한다. 이후 그의 딸인 마리온 볼터가 1950년대에 작품을 한국에 돌려주려고 했으나 6.25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포기했고, 결국 마리온의 딸인 바바라 미셀 예거후버 여사가 92세가 되던 2013년 독일대사관을 통해 한국으로 작품을 보내왔다. 외할아버지와 어머니가 들려줬던 얘기를 기억하며 언젠가 꼭 그림을 한국에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더라.”
고종 황제가 독일인 칼 안드레아스 볼터에게 하사한 병풍화 '해상군선도'. 2013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6억6000만원에 낙찰됐으며 현재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 소장중이다. /서울옥션 제공
이 작품은 낙찰이 됐는지.
음 : “미술 시장이 별로 좋지 않은 시기였지만, 시작가 3억원에서 출발해 네 명의 응찰자가 경쟁했다. 4억5000만원부터는 두 명만 남아 경합을 이어갔다. 계속 가격이 올랐고, 6억원이 넘어가니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하던 대리 응찰자가 갑자기 전화를 내려 놓더라. 패들(번호가 적힌 손팻말)은 계속 높이 든 채로 말이다. 더 높은 가격이라도 응찰을 이어가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작품은 그 응찰자(추후 아모레퍼시픽으로 밝혀졌다)에게 6억6000만원에 낙찰됐다.
당시 예거후버 여사는 주치의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족들과 함께 경매장에 직접 나와 계셨다. 내가 서툰 독일어로 ‘한국 물건을 한국에 돌려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자 갑자기 펑펑 우시더라. 알고보니 나 때문에 우셨던 건 아니고, 어린 시절 전쟁통에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병풍에 그려진 신선의 배를 만지면 맘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며, 신선들이 드디어 자기 고향에 돌아와서 너무 행복하다는 얘길 하시더라.”
김 : “(눈물을 훔치며) 우리 회사 직원들은 지금껏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을 물으면 모두 그 때를 얘기한다. 경매가 끝난 후 예거후버 여사가 병풍에 그려진 신선들을 손으로 한번씩 쓰다듬으며 ‘신선님들 고국에서 잘 지내시라’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모두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경매를 진행하다 보면 작품에 개인적으로 애정이 생기는 경우도 많겠다.
김 : “발품을 팔아 작품을 직접 구해서 공들여 포장하고 경매를 준비하는 작업까지 직접 하다 보니 작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작품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경매를 진행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작품에 대한 강한 애착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드디어 이 작품이 팔리는구나’ 하는 생각에 신이 나서 감정적이고 역동적으로 경매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흥을 주체하지 못할 때도 있다(웃음).”
음 : “안 의사의 ‘경천’이 유찰됐을 때는 2분 동안 허공에 대고 ‘정말 아무도 안 계시냐’ 묻기도 했다. 도저히 놓을 수가 없더라. 회사에서 그런 감정 표출을 굳이 자제 시키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그게 우리의 색깔인 것 같다.”
경매사로 일하려면 연예인 같은 기질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김 : “우리 스스로 경매를 즐겨야 보는 재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경매는 분위기를 제대로 끌고 나가지 못하면 진행이 너무 힘들다. 분위기 덕에 더 잘 팔리고 가격이 오르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에, 경매사가 강약 조절을 잘 해야 한다. 한 편의 쇼를 하듯 역동적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음 : “프리뷰 전시(경매에 앞서 출품작을 미리 공개하는 전시)가 끝날 무렵이면 어떤 작품이 잘 팔릴 지 예상이 된다. 그러면 경매의 전체 흐름에서 어느 구간에 긴장감을 줄 지 가늠할 수 있다. 몰입도를 위해서는 흥행이 안 되는 구간에서 오랫동안 끌거나 경합이 치열한 구간에서 빨리 지나쳐선 안 된다. 그런 박자 설정을 스스로 하고 경매장에 들어가곤 한다.”
귀한 작품을 경매에 올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 지 궁금하다. 노하우가 있다면.
김 : “그림을 내놓아야 할 지 말 지 고민하던 소장자의 집을 5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소장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해당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지 철저히 공부하고, 기존 작품들의 낙찰가 데이터를 모두 보여주며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어떤 작품은 경매에 나오기까지 6개월이 걸리기도 했다.
아버지가 소장했던 동양화를 많이 물려 받은 컬렉터도 기억에 남는다. 엄청난 수장가였던 아버지와는 달리 미술 작품에 큰 관심이 없는 분이었다. 그분의 마음을 얻기 위해 먼지 쌓인 수장고를 전부 정리해드리기도 했다. 보물 같은 작품들이 정말 많더라. 결국 경매를 통해 작품들의 가치를 확인해드렸던, 굉장히 뿌듯하고 기쁜 경험이었다.”
음 : “미술품을 소장한 컬렉터는 문화적 소양과 식견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그 분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미흡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굉장한 결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공부를 많이 하고 가야 한다. 작품의 가치와 앞으로의 비전, 또 처분 방법에 대해서도 깔끔하고 빠르게 전달해야 한다. 소장작을 자식처럼 아끼는 분들이 많은 만큼, 작품에 대한 예우는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
음정우, 김현희 서울옥션 경매사(왼쪽부터)가 16일 서울 신사동 강남센터에서 작자 미상의 병풍화를 배경으로 조선시대 달항아리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김 : “작품의 의미와 역사는 기본적으로 작가가 만들지만, 소장한 사람들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젊은 나이에 월급을 아껴가며 힘들게 구해 20년 간 갖고 있던 작품을 경매에 내놓는다고 가정해보자. 그 심정은 장성한 자녀를 독립 시키는 마음과 비슷할 것이다. 그 추억과 깊은 역사가 오롯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작품을 소홀히 대할 수 없다.”
음 :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라 해도, 자기 돈을 주고 직접 미술품을 산 사람보다 해당 작품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겸손해야 하며 작품을 소개하는 글도 사실과 정보에 기반해서 성심을 다해 잘 써야만 한다.”
김 : “한 가지 덧붙이자면, 미술사적 가치와 시장에서의 가치를 함께 찾아내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팔리는’ 작품의 공통점이 있을까. 같은 작가가 비슷한 시기에 그린 그림이라도, 어떤 것은 고가에 낙찰되는 반면 어떤 것은 유찰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나.
음 : “다른 조건이 모두 동일하다고 가정한다면, 작품에 얽힌 드라마나 소장 이력, 작품이 수록된 서적 등이 낙찰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
김 : “작품의 주제나 구도, 색감 등 ‘내용’이 좋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작년에 A4 용지의 절반 크기 밖에 안 되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 출품된 적이 있다. 과슈로 산과 달을 그린 작품이었는데 내용이 정말 좋았다. 사람들이 보는 눈은 대부분 비슷하다. 그렇게 작은 그림이었지만 2500만원에서 시작해 1억원에 낙찰됐다. 반면 그 다음에 나왔던 김환기의 다른 그림은 주인을 찾지 못했다. 이전 작품의 4배 정도 되는 크기였는데도 말이다. 미술 시장이 불황이어도 잘 팔리려면, 크기와 관계 없이 내용이 좋아야 한다.”
컬렉터 중에는 경매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작품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더라. 단지 ‘신비주의’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이유가 무엇일까.
음 : “현대 미술은 시장에서의 거래 이력 때문에 가격이 더 높아지는 경우도 있는데, 고미술은 그렇지 않다. 고미술품 컬렉터는 ‘마니아’의 성향이 강해 고미술 시장은 ‘그들만의 리그’와도 같다. 좋은 작품일 수록 소장자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숨겨둘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반면 경매 등 시장에 한 번이라도 나갔던 작품은 ‘안 팔렸기 때문에 다시 돌아온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고미술 컬렉터들의 그러한 성향은 ‘혜안’ 컬렉션의 인기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혜안 컬렉션은 고객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미술품들을 따로 모아 한꺼번에 경매에 부치는 것이다. 이 작품들은 시작가 100만원에서 출발해 수천 만원에 낙찰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람들은 개인이 20~30년 간 갖고 있다 내놓은 작품이라는 점에 열광하는 것이다.
혜안 컬렉션의 인기는 해당 컬렉터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하기도 한다. 만약 각기 다른 컬렉터가 출품한 100점의 작품이 있다면, 사람들은 각 소장자가 정말 ‘수준 높은’ 컬렉터인지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혜안 컬렉션을 통해 수십 점의 작품을 한꺼번에 살펴보면 그 컬렉션의 ‘결’을 볼 수 있다. 이 컬렉터가 어떤 것을 좋아했고,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추구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퀄리티에 대한 확신이 드는 순간 작품 전체의 낙찰가가 올라간다.”
부동산의 경우 ‘강남 3구’의 시세가 상승기에 먼저 오르고 하락기에 더 천천히 떨어지지 않나. 미술품도 비싼 작품이 먼저 오르고 침체기에 가격 방어가 잘 되는지 궁금하다.
음 : “부동산보다는 주식에 빗대어 설명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지금 미술 시장에서 가장 높은 시세를 형성하는 단색화를 ‘대장주’라고 한다면, 시장에서 의도적으로 유행을 만들어낸 장르는 ‘테마주’라고 할 수 있다. 테마주는 이것을 만든 주체가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하고 나면 풍선의 바람이 빠지듯 가격이 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대장주는 시장의 침체기에도 가격 방어가 상대적으로 잘 된다.”
김 : “예를 들어 이우환 작가는 오랜 세월 전세계에서 전시를 해왔으며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향후 미술 시장의 상황이 안 좋아져도 가격이 크게 변동하지 않는다.”
현재 한국화단을 지배하는 단색화의 대표적 작가 고(故) 김환기의 1971년작 '우주'.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됐다. 한국 작가의 작품이 기록한 사상 최고가로, 이 기록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은 상태다. /크리스티
고미술품도 시장 침체기에 가격 방어가 잘 되지 않나. 고미술을 단색화와 마찬가지로 ‘안전자산’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음 : “고미술품의 가격 방어선은 좀 다른 차원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앞서 설명했듯 고미술은 ‘그들만의 리그’이기 때문에 수준 높은 인문학적 지식까지 요한다. 중견 컬렉터층이 형성돼서 진입 장벽이 높기 때문에 견고한 가격 방어선이 형성된 것이지, 대중이 ‘안전자산’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격이 덜 하락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미술 시장에서 김환기의 작품이 가장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듯, 고미술 시장에도 ‘가장 비싼 작품’에 대한 합의된 기준이 있을까.
음 :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작품을 최고로 치는 등 어느 정도 합의된 기준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합의되지 않은 기준은 특히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1~2010년생) 컬렉터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다.”
MZ세대의 부상은 최근 미술 시장에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다. 그들의 소비 패턴은 어떤가.
음 : “합리적인 성향이 강하다. 어떤 MZ세대 컬렉터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달러를 넘은 시점부터 문화재의 가치가 올라가기 마련인데, 우리나라는 중국 등 동양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문화재 가격이 아직 많이 오르지 못했다’며 고미술 시장에 비전이 있다고 말하더라. 신진 작가들의 작품이 한점 당 1억원이 넘는 것과 달리 고미술품은 아직 비싸야 수천 만원에 불과하다며, 고미술 작품을 지금 사서 5년 만 들고 있으면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호불호가 분명하고 취향이 뚜렷하다는 점도 MZ세대 컬렉터의 특징이다. 우리 세대는 거장의 작품에 대해 솔직하게 평가하길 꺼리고 두려워하지만, MZ세대는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블루칩(우량주를 의미하는 단어로, 미술계에서는 작품의 가격대가 매우 높은 거장 작가를 뜻한다)이 될 수 있는 신진 작가는 어떻게 알아보는지.
김 : “우리가 그것을 말하면 ‘테마주’가 될 수 있다(웃음). 사실 나도 ‘나중에 이우환이나 김환기가 될 수 있는 젊은 작가가 누군지 알려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는다. 그러나 젊은 작가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게끔 후원한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사 줘야 한다. 제2의 김환기, 제2의 이우환이 되길 기대하며 사서는 안 된다. 투자의 목적으로 그림을 사려면, 이미 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는 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사는 것이 낫다.”
서울옥션에서는 기존 경매 방식에서 벗어난 ‘제로베이스’를 운영하고 있다. 신진 작가들의 작품에 0원부터 응찰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 미술계 일각에서는 이를 ‘옥션사의 시장 독점’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음 : “우리가 2019년 제로베이스를 선보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작품을 팔아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작가들에게 판매의 장을 열어줬을 뿐이다. 신진 작가나 40~50대가 될 때까지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지 못한 작가들은 작품을 전시할 공간이 없어 높은 대관료를 지불하고 개인전을 여는 경우가 많다. 제로베이스는 그런 작가들을 대중에 소개하고 그 이후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실제로 갤러리가 제로베이스를 통해 알게 된 신진 작가와 전속 계약을 맺은 사례도 있다.”
작품성을 보는 안목은 어떻게 키워야 하나.
음 : “취향을 형성하기 위해 남에게 기대려 해서는 안 된다. 일단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확고하게 알아야 한다. 어떤 색감이나 도안, 미술사조를 좋아하는 지 알고 나면 취향의 고도화는 순식간에 이뤄진다. 작가의 네임밸류에 매몰되는 소비를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김현희, 음정우 서울옥션 경매사(왼쪽부터)가 16일 서울 신사동 강남센터에서 야요이 쿠사마의 '비너스' 조각·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작품의 추정가는 40억원으로, 22일 진행되는 제165회 메이저 경매 출품작 중 가장 높은 가격이다. /박상훈 기자
김 : “경매 전 프리뷰 전시를 보는 것도 안목을 기르는 좋은 방법이다. 프리뷰 전시에는 많은 작가의 다양한 작품이 모여 있으며, 현재 시장에서 인기 있거나 앞으로 인기를 얻게 될 작품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좋아하는 작가가 생긴다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해당 작가의 전시회를 찾아가 작품을 관람할 것을 추천한다. 미술품의 실물은 화면이나 모바일을 통해 보는 모습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초보자라면 100만원을 갖고 실제로 작품을 한 번 구매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구매를 위해 가격을 조사하고 작가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을 거치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오는 22일 열리는 제 165회 경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김 : “쿠사마는 내가 서울옥션에 입사한 이래 작품 가격이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계속 상승한 유일한 작가다. 이번 경매에는 전세계에 10점 밖에 없는 쿠사마 야요이의 ‘비너스’ 중 한 점이 출품됐다. 귀한 작품을 소개하게 돼 우리로서도 굉장히 영광이다. 비너스는 특히 ‘인피니티 네트(Infinity Nets·검은 선으로 그물을 빼곡히 그려 넣은 쿠사마의 연작)’의 의미를 가장 잘 구현한 작품이다. 인피니티 네트에 내재한 확장성과 무한성이 조각에서 회화로 이어지며 소멸하는 비너스의 모습을 통해 제대로 표현됐다. 그 외에도 고(故) 김창열 화백의 1970년대 수작, 박수근·김환기 등 거장들의 작품이 골고루 출품됐다. 경매 현장에 직접 와서 미술 시장의 트렌드를 살펴보길 권한다.”
음 : “지난해 하반기부터 MZ세대가 고미술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MZ세대의 고미술품 구입이 지속된다면 더 많은 컬렉터들이 좋은 작품을 출품할 것이다. 침체돼있던 고미술 시장에도 선순환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경매에도 서울옥션이 엄선한 좋은 고미술품들이 많이 나온 만큼,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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