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3건·보물 7건, 18세기 조선 미술의 거장 의겸을 만나다
국보 3건·보물 7건, 18세기 조선 미술의 거장 의겸을 만나다
불교중앙박물관 기획전 ‘호선 의겸: 붓끝에 나투신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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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9년 그린 합천 해인사의 영산회상도. 지난달 9일부터 22일까지 전시됐다가 절로 돌아갔다. 불교중앙박물관 제공
한국 미술사에서 회화의 최고 전성시대로 흔히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기를 꼽는다. 그 시절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을 떠올리곤 한다. 호암미술관의 역대 최대 규모 회고전 덕분에 겸재가 재조명되는 지금, 한국인들은 18세기 조선 미술을 함께 빛냈으나 잊힌 한 승려 거장을 기억해야 한다. 그의 이름은 의겸이다.
‘붓의 신선’으로 불리며 정묘하고 세련된 필선과 색감으로 18세기 영호남과 충청도 각지의 사찰 불화 제작을 이끌었던 화승 의겸의 회화 세계를 처음 대중에 선보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견지동 불교중앙박물관 기획전 ‘호선 의겸: 붓끝에 나투신 부처님’이다.
의겸 스님이 제작을 주도해 1723년 그린 여수 흥국사 관음보살도. 이번 전시의 얼굴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관음보살도와 함께 들머리에서 관객을 맞는다. 불교중앙박물관 제공
놀랍게도 의겸은 국가지정유산이 가장 많은 작가다. 국보 3건, 보물 7건, 유형문화유산 1건을 포함한 그의 걸작 20건 47점이 처음 한자리에 모였다. 사찰의 불전에 부처님의 세계를 구현하고자 했던 조선시대 화사 스님의 예술적 발자취를 조명하는 첫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의겸은 1713~1757년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제자들과 화파를 형성하면서 수많은 불화들을 그렸다. ‘존숙’(존경받는 어른), ‘대정경’(크고 올바른 모범) 등 그를 추앙한 문헌의 문구에서 보듯 후대 승려와 문도들의 큰 존경을 받았던 몇 안 되는 화승이다. 불교 사상과 법식에 밝아 18세기 불화에서 이전에 없던 혁신적 표현을 창안한 주역이다.
의겸 스님 등이 1730년 제작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관음보살도. 고려시대의 전통을 이어 새롭게 조선시대 관음보살도의 전형을 만들었다. 불교중앙박물관 제공
그의 작품 세계는 크게 4개의 대표 도상들로 가름할 수 있다. 거대한 괘불탱과, 부처의 설법 장면을 담은 영산회상도, 중생을 구원하는 관음보살도, 수행하는 존자들을 담은 나한도로 갈라서 볼 수 있는데, 전시에선 괘불탱을 뺀 세 장르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전시장 들머리에서 관객을 맞는 작품은 의겸이 제작을 주도해 1723년 그린 전남 여수 흥국사 관음보살도와 1730년 제작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관음보살도다. 관음보살의 거처인 보타락가산을 궁의 전각 공간으로 새롭게 설정하고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와는 다른 당당한 정면상으로 재해석해 조선시대 관음보살도의 전형을 이룬 대표작들이다. 다음 공간에서 주목되는 건 여수 흥국사와 순천 송광사에 조성했던 나한도의 행렬이다. 각 나한들의 내면과 개성을 표정과 몸짓에 섬세하게 드러내면서 배색에도 신경 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725년 그린 순천 송광사 응진당의 16나한도 가운데 11·13·15존자(부분). 노형석 기자
부처가 여러 보살과 함께 장엄한 설법을 행하는 장면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영산회상도는 의겸의 대표작으로 오르내린다. 특히 이번 전시에선 지난 연말 국보로 지정된 경남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를 지난 4월9~22일 공개한 데 이어, 5월20일부터 6월29일까지 순천 송광사 영산회상도를 선보일 예정이다. 영산회상도는 가로세로가 몇미터나 되고 대웅전 내부를 장식하는 상징적인 대형 불화여서 부처와 수하 보살 권속들의 표현과 구성이 치밀하지 않으면 제대로 그릴 수 없는데, 의겸은 송광사와 해인사에서 역대 최고의 영산회상도를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영산회상도 모두 이견 없이 국보로 지정된 것도 그 가치를 방증한다. 금니(아교에 개어 만든 금박 가루)와 진채(진하고 강한 색채를 쓰는 전통 채색 화법) 기법을 활용해 표현한 해인사 영산회상도는 관련 장르에서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의겸 스님 등이 1725년 제작한 송광사 불조전의 53불회도. 불교중앙박물관 전시실 공간에 원래 절에 설치된 얼개대로 재현해 전시 중이다. 노형석 기자
또 하나 전시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후반부에 나오는 1725년 작 오십삼불회도다. 승려가 기도하는 자리를 삼면에서 에워싸고 쉰세분의 부처가 도열해 시선을 보내는 구도의 송광사 불조전 불회도 공간을 전시실에 원래 절에 설치된 얼개대로 재현해 장관을 이룬다. 전각 크기를 고려해 화폭 수량을 구성하고 폭별로 나눠 존상을 배치하는 데 뛰어났던 의겸의 공간 조형 능력도 엿볼 수 있다.
의미가 큰 기획전이지만, 의겸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청곡사, 안국사 등지의 대형 괘불탱 5개를 공간적 제약과 절의 불허로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6월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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