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30 10:21:23
머리에 劍 꽂자 잠들었던 龍이 깨어나 포효했다
문화재청, 태안 갯벌에서 발굴한 조선 전기 왕실 장식 기와 공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구름 문양 꿈틀거리는 검(劍)을 머리에 꽂자 잠들었던 용(龍)이 깨어나 포효하기 시작했다. 29일 오후 국립고궁박물관 강당.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문화재 연구소 직원 두 명이 길이 40.5㎝, 무게 4.2㎏의 검파(劍把·칼자루 모양 토제 장식)를 끙끙대며 들어올렸다. 이 검파가 꽂힌 곳은 어룡(魚龍) 머리 형태 하단에 독수리 꼬리 형태 상단을 얹은 취두(鷲頭·장식기와) 꼭대기의 방형 홈. 이로써 머리와 꼬리, 검이 하나가 되어 높이 103㎝, 무게 120㎏의 완전체를 이뤘다. 주인공이 “변신, 합체!”를 외치며 신성한 돌에 검을 꽂으면 신화 속 동물들이 살아나 꿈틀거리는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광경이었다.
이날 연구소가 언론에 공개한 검파와 취두는 충남 태안군 양잠리 청포대 갯벌에서 출토된 것. 2019년 9월 조개 캐던 주민이 발견해 신고한 취두 하단과 잡상(雜像)에 이어 지난해 6월 연구소가 발굴한 취두 상·하단, 올해 5월 연구소가 발굴한 검파와 취두 상단까지 약 2년 9개월에 이르는 발굴조사 결과물이다. 조선 전기 유물로 추정되는데, 지금까지 조각 형태로만 발굴되던 조선 전기 취두가 완전체로 출토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기와 전문가인 김성구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보물로 지정해도 좋을 만큼 상태가 좋다. 수중 고고학의 건축학적 성과로서는 최고의 수준”이라 말했다.
‘취두’란 왕실 건축 용마루 양쪽끝을 장식하는 기와를 이른다. 중국에서 유래한 건축양식으로 중국 한나라 때는 새 모양으로 제작돼 독수리[鷲] 머리[頭], 즉 ‘취두’라 불렸지만 세월을 거듭하며 어룡의 얼굴에 새의 꼬리를 결합시킨 형태로 변화했다. 이번에 발굴된 취두가 조선 전기 것으로 추정되는 건 명대 장식 기와와 유사한 형태이기 때문. 김성구 전 관장은 “목조건물에 화재가 나지 않게 감시하라는 의미에서 물을 다스리는 어룡을 조각했는데, 천성이 게으른 것으로 알려진 이 어룡이 한눈팔지 않도록 하기 위해 머리에 검을 꽂은 것”이라고 했다.
서해안 갯벌에서 난데없이 기와가 발견된 까닭은 뭘까? 발굴을 총지휘한 김동훈 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서울서 제작해 지방의 사당이나 관청 등 왕실과 관련 건물에 사용하려던 기와를 싣고 가던 배가 서해안에서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 미술 > 화제의 유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동물시계 자격루의 ‘두뇌’가 복원됐다 (0) | 2022.12.24 |
---|---|
이 문화재들 찾으러 지구 160바퀴 누볐다 (0) | 2022.12.24 |
500년전 선비 뱃놀이 그린 ‘독서당계회도’… 美·日 떠돌다 귀환美경매서 8억4000만원에 낙찰“조선 실경산수화 수준 보여줘”.....前교토박물관장이 소장하기도 (0) | 2022.12.24 |
오스트리아서 발견된 구석기 풍만한 비너스상, 이탈리아産 돌로 제작 (0) | 2022.12.22 |
8년째 네덜란드 법정에서 장기戰… ‘황금 유물’은 누구 것?....크림반도 스키타이 황금 유물러시아-우크라이나 소유권 다툼 (0) | 2022.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