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있다가 절도범에 의해 국내로 들어온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불상)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오는 26일 열린다. 사진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 수장고에 있는 금동관음보살좌상
아시아투데이 황의중 기자 = 천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불상)이 다시 일본으로 떠나게 됐다. 절도범에 의해 일본에서 국내로 들어온 이 불상의 소유권을 둘러싼 법정 다툼은 대법원이 26일 일본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11년 만에 마무리됐다.
고려 후기인 14세기 초반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높이 50.5㎝·무게 38.6㎏의 이 불상은 고려 때 약탈당해 일본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관세음보살이 가부좌한 모습으로 조성된 예술성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대한불교조계종과 충남 서산지역 사회는 판결에 대한 강한 아쉬움을 표현하며 환지본처(還至本處·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옴)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11년 만의 결론...고려 부석사와 조계종 서산 부석사 동일성 인정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이날 서산 부석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유체동산 인도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타인의 물건이더라도 일정 기간 문제 없이 점유했다면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보는 '취득 시효' 법리에 따라 불상의 소유권이 정상적으로 간논지에 넘어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옛 섭외사법(현 국제사법) 법리에 따라 취득시효가 만료하는 시점에 물건이 소재한 일본 법을 적용하는 게 맞는다고 보고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및 공연하게 타인의 물건을 점유하는 자는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는 옛 일본 민법에 따라 일본의 소유권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피고보조참가인(간논지)이 법인격을 취득한 1953년 1월 26일부터 2012년 10월 6일경 절도범에 의해 이 사건 불상을 절취당하기 전까지 계속하여 이 사건 불상을 점유했다"며 "간논지는 취득시효가 완성된 1973년 1월 26일 당시 일본국 민법에 따라 이 사건 불상의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밝혔다.
또 불상이 고려 시대 왜구에 약탈당해 불법으로 반출됐을 개연성이 있다거나 우리나라 문화재라는 사정만으로 이러한 취득시효 법리를 깰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2심과 달리 서주 부석사가 현재 부석사와 같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봤다.
앞서 이 불상은 쓰시마의 사찰 간논지(觀音寺·관음사)에 보관돼 있다가 2012년 절도범들에 의해 국내로 밀반입되다 적발 돼 현재는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 수장고에 있다. 조계종 서산 부석사는 불상의 원소유자임을 주장하며 국가(대한민국)를 상대로 반환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적 다툼은 시작됐다.
1심인 대전지법은 2017년 1월 불상을 부석사로 인도하라는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이 불상이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도난이나 약탈 등 방법으로 일본으로 운반돼 봉안되어 있었다며 역사·종교적 가치를 고려할 때 불상 점유자는 불상을 원고인 부석사에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판단 근거로는 이 불상이 제작된 1330년 이후 서산지역에 왜구들이 5차례에 걸쳐 침입했다는 기록과 불상에 화상의 흔적이 있는 점 등을 들었다.
왜구들은 주로 사찰에 방화한 후 불상을 가지고 나왔다는 자문 결과를 토대로 했다.
국가를 대리해 소송을 맡은 검찰은 '불상과 결연문의 진위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은 무려 6년 넘게 이어졌다.
대전고법은 지난 2월 1심을 뒤집고 불상을 일본에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간논지 측이 1953년부터 불상이 도난당하기 전인 2012년까지 60년간 평온·공연하게 점유해 온 사실이 인정된다"며 "불상이 불법 반출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취득시효(20년)가 완성된 만큼 소유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당시 서주의 부석사가 현재의 부석사와 동일한 종교단체라는 입증도 되지 않았다고 봤다.
◇조계종과 지역사회 "약탈문화재 특수성 외면해"...환지본처 다짐조계종은 이날 최종심 판결이 나오자 대변인(총무원 기획실장) 우봉스님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비상식적인 선례를 남겼다"며 깊은 유감을 표했다.
조계종은 "서산 부석사 관음상은 1330년 조성돼 부석사에 봉안됐으며, 조선 초 왜구의 약탈로 인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은 기존 판결에 의해 충분히 검증됐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약탈문화재의 특수성을 외면한 채 취득시효 완성을 이유로 기각결정을 내렸다"면서 "약탈하여 강제로 국외 반출된 도난문화재에 대하여 취득시효를 인정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어불성설(語不成說)일 뿐 아니라, 약탈문화재의 은닉과 불법점유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강제로 빼앗긴 약탈문화재에 대한 소유자의 정당한 권리를 가로막은 반역사적 판결일 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약탈문화재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도 최악의 판례가 될 것"이라며 "만약 대법원의 판단대로 약탈문화재의 취득시효를 인정할 경우, 향후 모든 약탈문화재 문제에 있어 약탈 국가가 소유권을 주장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조계종은 부석사 관음상의 환지본처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아직도 되찾지 못한 문화유산의 환지본처를 위하여 전국민과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불상 제자리 찾기 운동을 지속해서 펼쳤던 지역사회 역시 대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석사 전 주지인 원우 스님은 "문화재를 빼앗겼던 후손의 입장에서 약탈을 자행했던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라며 "대법원이 약탈을 앞장서서 합법화했다. 전 세계에 내놔도 정말 부끄러운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우스님은 "그럼에도 우리는 종교적·외교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며 "미국이 우리나라에 어보를 돌려준 것처럼 문명국의 일반적인 흐름에 일본이 동참하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상근 부석사불상봉안위원회 상임대표도 "안타깝고 쉽지 않겠지만, 문화적 교류나 일본 불교계와 협력을 통한 수단으로 불상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 판결 후 일본 측은 불상의 조속한 반환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힌 상황이다.
간논지의 다나카 세츠료 주지는 조기 반환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NHK 방송은 전했고, 무라이 히데키 일본 관방 부장관도 "불상이 간논지에 조기 반환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를 설득하고 간논지를 포함한 관계자들과 연락해 적절하게 대응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