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인 줄 알았는데… ‘색채의 마법사’ 겸재 작품 165점 총출동
수묵화인 줄 알았는데… ‘색채의 마법사’ 겸재 작품 165점 총출동
수묵화인 줄 알았는데 색채의 마법사 겸재 작품 165점 총출동 진경산수화 대가 겸재 정선 작품 한자리에 호암미술관 기획전 내일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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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수목이 절경을 이룬 그림 '여산초당'이 전시장에 걸렸다. 오른쪽 동그라미는 초당에 앉아있는 선비를 확대한 모습. 초가집에 둘러진 붉은 난간과 분홍빛 벽이 보인다. 왼쪽 동그라미는 붉은 봇짐을 어깨에 멘 동자를 확대했다. 간송미술관 소장. 125.5×68.7cm. /연합뉴스·허윤희 기자
꿈틀거리는 듯한 산줄기로 감싸인 골짜기에 아담한 초당(草堂)이 들어섰다. 겸재 정선(1676~1759)의 걸작 회화 ‘여산초당’이다. 여산에 초당을 짓고 은거한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고사를 그렸다. 눈에 띄는 건 실감나는 색채. 짙푸른 수목이 채도를 달리 하며 절경을 이뤘고, 선비는 붉은 난간과 분홍빛 벽을 두른 초당에 앉아있다. 멀리 동구 밖에서 초당으로 올라가는 동자의 어깨엔 붉은색 봇짐이 또렷이 보인다.
진경산수화의 거장은 색채의 대가였다.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2일 개막하는 특별전 ‘겸재 정선’은 조선 회화의 거장 겸재를 조명하는 최초·최대 규모의 기획전이다. 겸재 회화 165점이 총출동한 이 전시에선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정선의 진가를 다각도로 보여준다. 조지윤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놀랐던 점이 정선이 색을 굉장히 잘 쓴다는 것이었다”며 “심사정, 이인상, 강세황 등 당대 유명한 화가들이 많았지만 이만큼 색을 화려하고 다채로우면서도 난하지 않게 쓴 화가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겸재 정선, '사문탈사'. 율곡 이이가 눈 오는 날 소를 타고 절을 찾는 모습을 그렸다. 조지윤 실장은 "절집의 벽을 온통 분홍빛으로 칠했다"며 "당시에 분홍색을 쓴 화가는 겸재 말고는 없었다"고 했다. 간송미술관 소장.
한국의 양대 사립 미술관인 호암미술관과 간송미술관이 공동 개최하는 전시다. 양 기관 소장품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 등 18개 기관, 개인 소장품까지 165점을 선보인다. 국보·보물로 지정된 정선 작품 12건 중 8건(국보 2건, 보물 6건)을 처음 한자리에 모았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정선의 시대별 주요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간송미술관과 힘을 합쳐 정선의 예술세계 전모를 펼쳤다”며 “본격적인 전시 준비에만 3년이 걸렸다”고 했다.
전시장 입구에 나란히 걸린 국보 두 점. 왼쪽은 이건희 컬렉션의 대표 작품인 '인왕제색도', 오른쪽은 겸재의 금강산 그림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금강전도'다. /뉴시스
전시장 입구에 국보 두 점이 나란히 걸렸다. 이건희 컬렉션의 대표작인 ‘인왕제색도’와 금강산 그림을 대표하는 ‘금강전도’다. 정선은 평생 여러 차례 금강산 일대를 여행했고, 수많은 금강산 진경산수화를 남겼다. 겨울 금강산인 개골산을 그린 ‘금강전도’는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으로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를 한눈에 들어오게 펼쳤다. 뾰족한 암산과 나무숲 우거진 토산을 오로지 점과 선만으로 뚜렷하게 대비시킨 걸작이다. 조지윤 실장은 “특히 봉우리 위로 푸른 하늘을 표현했는데, 조선 시대 회화에서 이렇게 푸른색을 쓴 예가 없다”고 했다.
전시장 입구에 걸린 국보 '금강전도'. 겸재가 평생 가장 많이 그린 주제가 금강산이었다. /뉴스1
겸재 정선, '청풍계'. 1756년 제작한 '장동팔경첩' 속 그림이다. 간송미술관 소장.
정선은 서울 풍경도 많이 남겼다. 자신이 태어나 평생 살았던 장동(서울 종로구 청운동·효자동 일대)의 여덟 가지 아름다운 풍경을 뽑아 두 차례 화첩을 만들었다. 1756년 제작한 ‘장동팔경첩’(간송미술관 소장)이 족자 형태로 걸렸고, 80대 초반에 만든 ‘장동팔경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 함께 전시됐다. 미술관은 “당시 세도가였던 ‘장동 김씨’ 등 고관대작들이 살던 곳으로 정선의 주요 후원자들이었기 때문에 특히 많이 그린 것 같다”고 했다.
겸재 정선, '독서여가도'. 사랑방 앞 툇마루 위에 편안히 앉아있는 선비가 겸재 자신이다. 서책이 쌓인 방안 책장은 학문하는 선비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낸다. 겸재의 흔치 않은 인물화로서도 중요성이 크다. 간송미술관 소장.
2층 전시장에선 정선의 문인 의식과 집안에 대한 자부심도 드러난다. 정선은 명문가의 후손이었으나 증조부 이후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사랑방 툇마루에 한 선비가 앉아 있는 ‘독서여가도’나 도포 입은 선비가 집 안에 책을 펴놓고 앉아 있는 ‘인곡유거’ 속 선비는 모두 정선 자신이다.
겸재 정선, '계상정거'. 천원짜리 화폐 뒷면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퇴계 이황의 도산서당을 그린 것으로, 보물 '퇴우이선생진적첩' 속 그림이다. 대학자 퇴계에서부터 이어진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드러나 있다. /호암미술관
인물화, 화조영모화, 초충도 등 평소 보기 힘든 장르도 고루 나왔다. 전시작 중 ‘인왕제색도’는 다음 달 6일까지 전시된 뒤 가을 금강산을 그린 ‘풍악내산총람’으로 교체된다. 미술관은 “교체 이후엔 가을 금강산과 겨울 금강산 두 그림을 입구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인왕제색도는 11월부터 2027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이건희 컬렉션 해외 순회전’을 위해 하반기에 비행기를 탄다. ‘여산초당’(간송미술관 소장)은 6월 1일까지 전시되고, 이후엔 여산 폭포를 그린 ‘여산폭’(국립중앙박물관 소장)으로 교체된다. 호암미술관 전시는 6월 29일까지. 내년 하반기에는 대구간송미술관으로 전시가 이어진다. 관람료 성인 1만4000원.
1742년 임진강 뱃놀이를 그린 '연강임술첩'이 전시된 모습. 경기도 관찰사 홍경보가 관내의 연천현감 신유현과 양천현령 겸재를 불러내 연강(지금의 임진강)에서 뱃놀이를 즐겼고, 이를 두 점의 그림으로 기록하고 시문을 더했다. 겸재 소장본과 홍경보 소장본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서 전시됐다. /뉴시스
☞겸재 정선(1676∼1759)
한국 회화사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K아트의 근원으로 꼽힌다. 관념적인 이상향을 그린 산수화가 아니라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을 생생히 담아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창시해 18세기 조선 회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산수, 인물, 화조 등 모든 분야에 능해 화성(畵聖)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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