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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전시 . 탐방 . 아트페어

장 미셸 오토니엘.......염원 담긴 목걸이, 고결함의 연꽃… 유리구슬로 표현했죠

by 주해 2022. 12. 24.

장 미셸 오토니엘

프랑스의 설치미술가 장 미셸 오토니엘(58)이 오는 8월 7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에서 ‘장 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 전시회를 열어요. 유리구슬로 만든 각종 조각 작품으로 유명한 오토니엘은 ‘반짝거리는 유리구슬 조각가’라고 불리는데요.

그는 “사람들이 미술관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작품이 직접 사람들을 만나러 미술관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번 전시도 미술관 내부뿐 아니라 미술관의 야외 정원과 미술관 돌담 너머 덕수궁 정원의 연못 두 곳에서 열기로 했지요. 사람들이 미술관 바깥에서 먼저 작품을 만날 수 있도록 한 거예요.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과 함께 오토니엘의 작품 세계에 대해 알아볼게요.

①장미셸오토니엘‘, RSI매듭’(2+019) ②장 미셸 오토니엘, ‘푸른 강’(2022) ③장 미셸 오토니엘, ‘황금 목걸이’(2021) ④장 미셸오토니엘, ‘황금연꽃’(2017) /장 미셸 오토니엘·오토니엘스튜디오

◇예술가와 수학자의 만남

<작품 1>은 수학적 상상력을 결합한 작품입니다. 천장에 매달린 구슬 목걸이인데요.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났는지 알 수 없는 매듭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멕시코의 수학자인 오빈 아로요와의 협업을 통해 탄생했어요. 어느 날 온라인에서 오토니엘의 작품을 보게 된 아로요는 흥미를 느꼈다고 해요. 이에 오토니엘에게 먼저 연락을 했고, 그렇게 몇 년간 대화를 주고받다 유리구슬을 엮은 매듭 모양이 탄생한 거지요.

이 유리구슬 매듭은 3차원 공간에서 무한히 매듭지어진 곡선 ‘와일드 노트(Wild knot)’라는 수학적 개념을 작품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와일드 노트를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를 실제로 눈에 보이도록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해요. 하지만 오토니엘은 거울 같은 구슬 표면이 서로 끝없이 비추고 반사되는 성질을 이용해 무한하다는 개념을 나타냈지요.

◇인도의 푸른색과 벽돌에서 영감

이번 오토니엘 전시의 특징은 ‘소원(所願)’을 상징하는 작품이 많다는 거예요. <작품 2>에서는 짙은 푸른색 바닥 위로 이런 구슬 매듭 작품이 천장에 여러 점 걸려 있습니다. 작품 이름은 ‘푸른 강’이에요. 길이 26m, 폭 7m에 이르는 바닥에 7500개의 유리 벽돌을 깔아 푸른 강물을 만들었어요. 그 위로 잔잔한 물결처럼 빛이 일렁이지요.

오토니엘은 서른 살 무렵인 1990년대 초반부터 유리 재료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어요. 그는 세계 곳곳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업하는 유리 공예가를 찾아가 배움을 청하고, 각국의 풍경이나 풍습에서 영감을 받고는 했지요.

이 작품의 영감을 얻은 곳은 인도였습니다. 인도에는 푸른색을 뜻하는 말 중 ‘피로지(firozi)’라는 단어가 있어요. 유리 벽돌처럼 투명하면서도, 깊은 물 속처럼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짙은 푸른색을 의미하지요. 이 색은 하늘과 물, 그리고 생명과 관련된 의미를 품은 색이라고 일컬어진다고 해요. 오토니엘은 이 색을 귀하고 아름답게 느꼈지요.

그가 건축에서 주로 쓰이는 벽돌을 미술 작품에 사용하게 된 것도 인도에서 받은 영감 때문이었습니다. 예부터 인도에서는 분가를 하거나 결혼을 할 무렵 어딘가에 틈틈이 벽돌을 쌓는 풍습이 있었다고 해요. 마치 우리나라에서 돌을 쌓아 소원을 빌듯, 벽돌을 쌓으며 아늑한 보금자리 등을 꿈꾸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거지요.

오토니엘은 누군가의 소원이 서려 있는 이런 벽돌 하나하나가 소중하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벽돌을 촘촘하게 이어 붙인 작품을 구상했지요.

그는 유리로 벽돌을 만들기 위해 인도의 유리 산업 중심지로 유명한 ‘피로자바드(Firozabad)’를 찾아갔어요. 그리고 이곳의 유리 공예가들과 함께 벽돌 만들기 작업을 했습니다. 이 유리 벽돌들은 사람이 입으로 공기를 불어 만드는 수공예 방식으로 제작됐어요. 그래서 저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는 모양과 색, 그리고 얼룩이나 흠집을 갖고 있지요. 이 때문에 여럿을 모아 놓으면 제각각 미묘하게 다르면서도, 마치 화음을 이루듯 어우러져 신비로운 빛깔을 뿜어내는 것이랍니다.

◇염원 담긴 황금색 구슬 목걸이

오토니엘은 인간이 어떤 초월적인 존재를 향해 소원을 빌고픈 마음이 구슬 목걸이 형태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대표적인 예가 천주교 신자들이 조용히 정신을 가다듬으며 명상할 때 쓰는 묵주(默珠)라고 할 수 있죠. 많은 문화권에는 나무에 목걸이를 걸거나 천을 묶어두는 형태로 염원을 비는 풍습이 있는데요.

그는 이런 의미를 담아 <작품 3>처럼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로 된 구슬 목걸이를 야외에 선보입니다. 황금색은 ‘햇빛을 닮은 색’이라며 예부터 신성한 색으로 숭배돼 오곤 했지요. 그는 목걸이에 황금빛 금박을 입혀 나무에 걸어 놨어요. 나무 위 높은 곳에서 빛을 내며, 우리 안에 있는 열정과 희망이 하늘에 더 잘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지요.

◇연꽃 둘러싼 동서양 의미 담아내

<작품 4>는 덕수궁 연못 위에 설치한 연꽃 모양의 황금빛 구슬입니다. 한국을 몇 차례 방문했던 오토니엘은 이곳 덕수궁 연못을 눈여겨봐 두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여름이 되면 주변이 온통 수풀로 뒤덮인 초록색으로 바뀌고, 물 위에 노란색의 작은 어리연꽃이 피는 이 연못에 황금 연꽃을 띄우면 최고의 아름다움을 선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대요.

그는 한국 문화에서 연꽃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고결함과 지혜’를 상징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또 인도와 유럽 지역에서는 연꽃의 씨앗은 천 년이 지나도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설이 있는데, 이 때문에 연꽃이 끈질긴 생명력과 풍부한 번식력을 의미한다는 것도 알게 됐지요. 오토니엘은 연꽃을 둘러싼 동서양의 의미를 자신의 작품에 불어넣고자 했습니다.

단번에 성취되는 것을 소원이라고 부르지는 않지요. 매 순간 정성을 들이며, 깨끗한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과정이 쌓여야 점차 이뤄지기 시작하는 것이 소원인 만큼, 오토니엘은 그런 사람들의 염원을 자신의 구슬 작품에 담아내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