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영아리오름
서귀포 남원읍 중산간 화구호… 람사르 습지 지정된 생태의 보고
하늘에서 본 물영아리오름 화구호수. 숲의 눈동자처럼 신비롭다.
대대손손 제주에 뿌리내리고 살던 제주도민들에게 오름은 저마다 신들의 거처였다. 그래서 수많은 오름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당堂이 세워졌다. 당이 있던 오름을 보통 ‘당오름’이라고 불렀다. 제주 곳곳에 당오름이 산재하는 이유다. 수많은 오름 중에서도 ‘영아리’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좀더 특별하게 여겼다. ‘신령할 영靈’에 산을 뜻하는 만주어 ‘아리’가 붙어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뜻이다.
쾌적하고 걷기 좋은 오름 진입로. 많은 나무가 이름표를 달고 있어서 살펴보는 재미가 좋다.
놀랍고 신비로운 화구호
제주에는 ‘영아리’라 이름 붙은 오름이 몇 있다. 제주 서부 중산간 마을인 서귀포 광평리의 동쪽에 동그랗고 예쁜 물웅덩이를 품은 서영아리가 있고, 동부 중산간에도 같은 이름의 오름이 탐방객들의 사랑을 받는다.
이 오름은 정상 분화구에 물이 고여 있어서 ‘물영아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물영아리에서 북쪽으로 1km쯤 떨어진 곳엔 ‘여문영아리’라는 재미난 이름의 오름도 있다. 화구호는커녕 분화구도 없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두 오름은 남원과 조천을 잇는 남조로 옆에서 듬직한 산체를 자랑한다.
오름 중 산정에 물웅덩이를 가진 것은 한라산의 사라오름을 비롯해 물장오리와 어승생악, 물찻오름, 금오름, 동수악, 원당봉, 세미소에 물영아리까지 모두 아홉 곳, 백록담의 동북쪽 산중의 소백록까지 포함시켜도 열 곳에 불과하다. 이 중 비교적 쉽게, 제대로 된 화구호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물영아리오름이다. 물영아리오름의 동그란 화구호는 비교적 얕아서 수생식물이 거의 빈틈없이 뿌리를 내리고 산다. 한자로는 ‘수령악水靈岳’, ‘수령산水靈山’이라고 적는다.
오름 입구 삼거리. 무덤 옆으로 오름 안내판이 서 있다.
물영아리 주차장에서 오름 자락에 붙기까지는 오른쪽으로 넓은 초지를 끼고 들어서는데, 그 길이 여간 예쁜 게 아니다. 부러 이 코스만 걷기 위해 찾는 이가 있을 정도다. 오른쪽으로 광활하게 펼쳐지는 목장 초지도 이색적이라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에게도 인기 있는 곳이다. 배우 송중기·박보영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늑대소년> 촬영지가 이곳 초지이다. 여름이면 길을 따라 수국이 피어나 더욱 아름답다.
물영아리오름 습지를 찾아가는 탐방로는 두 가지다. 주차장에서 650m쯤 들어선 오름 입구 삼거리에서 왼쪽의 분화구 능선을 향해 곧장 치고 오르는 계단길(길이 530m)과 삼거리에서 직진해서 오름 동쪽 자락의 중잣성과 전망대를 지나 습지로 가는 능선길(길이 2.16km)도 있다. 계단길은 넉넉히 30분쯤이면 능선에 닿지만 이름처럼 계단이 계속되는 무척 가파른 코스다. 중간에 쉼터가 두세 군데 마련되어 있지만 만만찮다.
중산간의 벵듸와 중잣성이 버틴 삼나무숲을 지나고 전망대도 거치는 능선길은 살짝 길긴 하지만 완만하고, 숲이 쾌적하고 좋아 걷는 기분 나는 코스다. 울창한 삼나무 숲을 지나면 청미래덩굴과 온갖 활엽수가 뒤엉긴 벵듸가 나타나고, 잔디 깔린 평지도 만난다. 그래서 숲은 어둡다가 밝아지고, 환해지는가 하면 터널을 이룬다. 제주의 건강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전체적으로 완만해서 산책하듯이 걸으면 화구벽에 닿는다.
전망대 길은 완만하고 걷기 좋은 숲을 지난다.
능선길로 올랐다가 계단길로 하산
해발고도 508m, 분화구 둘레 300m, 정상에서 화구호 바닥까지의 깊이가 40m인 물영아리는 생물·지형·지질·경관 등의 가치가 빼어나 습지보전법이 제정된 후 지난 2000년에 전국 최초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2006년에는 생태의 우수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람사르 습지에 등록되기도 했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다는 영아리난초를 비롯해 물장군, 맹꽁이, 제주도롱뇽, 긴꼬리딱새, 팔색조 같은 귀한 생물의 보금자리로 알려졌다.
들머리에서 본 물영아리오름. 소떼가 한가로운 이 초지는 영화 '늑대소년' 촬영지 중 한 곳이다.
능선에서 습지로 내려서는 계단이 조성되었고, 습지 가장자리 일부에 데크가 깔려 습지를 가까이에서 눈으로 확인하며 관찰할 수 있다. 또 습지 안에 상주하는 해설사로부터 언제든지 물영아리 습지에 대한 자세하고 전문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산정호수를 품은 분화구 안쪽은 박쥐나무, 참꽃나무, 생달나무, 산딸나무, 서어나무, 산뽕나무, 때죽나무, 참식나무, 새덕이 등 온갖 활엽수가 하도 푸르러서 검게 보일 만큼 울창하다. 이곳에 깃들어 사는 새가 많아서 아침 일찍 찾는다면 그야말로 ‘온 세상을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에 취하기도 한다.
물영아리오름은 기본적으로 습지여서 여름날에는 탐방로에서 여느 오름보다 더 자주 뱀이 출몰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분화구 안 데크에 올라오기도 한다고 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등산로 이외에는 들어서지 않는 게 좋다.
습지식물이 건강한 생태계를 이룬 물영아리 습지. 얼핏 보면 풀밭 같다.
활엽수가 많은 물영아리오름의 능선길. 평탄하고 숲이 울창해 걷기에 그만이다.
붉은오름과 붉은오름자연휴양림.
교통
제주버스터미널에서 서귀포환승정류장을 오가는 231, 232번 버스가 물영아리오름 들머리에 정차한다. 승용차의 경우 내비게이션에 ‘물영아리오름’을 찍고 오면 된다.
주변 볼거리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제주에는 서귀포, 절물, 교래, 붉은오름까지 4개의 자연휴양림이 있다. 이 자연휴양림들은 숲 탐방환경이 좋아서 안전하고 쾌적하게 최고 수준의 숲을 둘러볼 수 있다. 온대와 난대, 한대수종이 다양하게 분포하는 붉은오름자연휴양림은 사려니숲의 동쪽 끝에 자리했기에 숲의 어떠함은 말할 것도 없고, 사철 야생화가 아름답기로도 손꼽힌다.
휴양림 내의 붉은오름은 탐방로를 따라 노루귀와 현호색, 산자고, 세복수초에 온갖 별꽃이 꽃을 피우는 봄철엔 대표적인 꽃산행지로 사랑받는다. 휴양림 안에는 오름 탐방로 외에도 ‘무장애 나눔 숲길’(1.1km)과 ‘상잣성 숲길’(2.7km), 말찻오름을 다녀오는 ‘해맞이 숲길’(6.7km)이 좋고, 입구에 시설이 훌륭한 야영장도 있다. 문의 064-782-9171.
맛집
오름 들머리의 ‘물영아리식당(010-2313-4566)’이 먹을 만하다. 갈비탕과 우거지갈비탕이 대표 메뉴고, 산채비빔밥과 메밀전병, 수수부꾸미도 인기다. 칡냉면은 여름철에 많이 찾는다. 근처의 작업 인부들이 대놓고 먹는 함바집 같은 곳이어서 점심때는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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