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간직했던 이중섭 그림, 이젠 못 찾아도 아쉽지 않소
“이중섭 작가는 1954년 6월 대한민국미술협회와 국방부가 공동 개최한 ‘6·25 4주년 기념 전람회’의 긍정적인 성과로 인해 모처럼 고무됐을 때, 자신을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畫工)으로 자처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중섭미술상이라는 인연 안에서 한국이 낳은 정직한 두 화공을 한자리에서 마주하는 복을 누립니다.”
제36회 이중섭미술상 시상식. 왼쪽부터 김종학 심상용 김선두 신양섭 윤동천 오숙환 정현 김영순 김봉태(수상자) 오광수 정종미 김경인 황용엽 강승완 곽훈 김찬동 배병우. /박상훈 기자
축사를 맡은 심상용 서울대미술관장의 말에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아내가 김봉태(87) 작가의 덕성여대 교수 시절 제자라는 그는 “선생님의 예술은 국경을 넘나들면서도 당대의 조류에 휩쓸리거나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조형을 이루고자 하는 태도로 초지일관해 오셨다”며 “건강하시고 저희 곁에 오래 머무르시면서 이 세대가 나아가는 길을 지켜보시고 밝혀달라”고 말했다.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제36회 이중섭미술상 시상식 겸 수상기념전 개막식이 열렸다. 올해 수상자 김봉태는 강렬한 원색과 기하학적 형태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색의 마술사’라 불린다. 1960년 미술가협회 창립 멤버로 시작해 60여 년간 꾸준히 작업해 왔다. 1960년대 초반 뉴욕 유학길에 올라 동서양의 정서를 아우르는 작품을 실험했고, 1980년대 중반 귀국한 이후에도 미술계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원색과 기하학적 형태를 바탕으로 한 평면과 입체의 조형세계를 탐구했다.
이번 수상기념전 ‘축적(Accumulation)’에는 상자 시리즈 21점이 나왔다. 심사위원장인 강승완 부산현대미술관장은 “이중섭이 피란 시절 담배 은박지에 철필로 드로잉한 것처럼 김봉태는 버려진 종이상자를 활용해 작업을 하고 그것을 다시 플렉시글라스로 전환하면서 일상적 소재의 발견을 새로운 창조의 영역으로 이끌어 왔다”며 “서양의 기하학적 원형성과 동양의 색채적 감수성을 추구하는 작가는 형태의 철저한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특유의 경쾌한 유희에 탐닉하는 양가적인 조형적 태도를 보여준다. 이중섭처럼 김봉태의 작업에서도 삶과 예술이 합치하는 절묘한 지점을 발견한다”고 평가했다.
김봉태 작가는 이날 수상 소감에서 “수년 전 이중섭미술상 심사를 맡은 적이 있다. 우리에겐 심사만 맡기고 상은 안 주냐며 동년배 작가들이 넋두리를 한 적이 있는데, 막상 받고 보니 후배 작가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기쁜 마음이 더 크다”고 말했다.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어떠한 인연으로 이중섭 화백의 작품을 소장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책 사이에 끼워 놓으셨다는데, 미국에서 잠시 나와 병환으로 입원 중이신 아버님께 차마 여쭙지 못하고 결국 작품을 찾지 못했습니다. 돈이 궁해지면 한 번씩 생각이 났었는데 이번 상을 받고 보니 아쉬웠던 마음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이날 시상식에는 조각가 정현, 서양화가 김종학, 김영순 전 부산시립미술관장, 한국화가 김선두 등 이중섭미술상 운영위원,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찬동 전 수원시립미술관장, 진휘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 심사위원, 역대 이중섭미술상 수상 작가 황용엽·김경인·정종미·오숙환·배병우·곽훈·윤동천씨, 김종규 박물관협회 명예회장, 배순훈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장경수 장욱진 미술문화재단 이사장, 신양섭 화가, 방준오 조선일보 사장, 변용식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 이중섭 화백의 조카손녀 이지연·이지향씨 등 각계 인사 100여 명이 참석했다. 수상 기념전은 19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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