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2.5m 높이 4.2m… 日 박물관에 나온 압도적 고려 불화
현존 최대 고려불화인 일본 사가현 가라쓰시 가가미진자 소장 ‘수월관음도’(1310년). 세로 419.5㎝, 가로 254.2㎝. /규슈국립박물관
“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답네요.”
높이 4m 넘는 불화에 압도된 관람객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온 세상 중생의 고난을 보살핀다는 자비(慈悲)의 관음보살이 비단 화폭 속에서 빛나고 있다. 호화로운 금박 무늬에 붉은 치마, 시스루 같은 투명 베일을 온몸에 두른 고혹적 자태. 달빛 아래 바위에 앉은 관음보살이 진리를 구하는 선재동자를 내려다보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다.
현존 최대(最大) 고려 불화인 일본 사가현 가라쓰(唐津) 가가미진자(鏡神社) 소장 ‘수월관음도’(세로 419.5㎝, 가로 254.2㎝)가 전시장에 걸렸다. 일본 후쿠오카현 규슈국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숭고한 믿음의 아름다움-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불교미술’에서다. 박물관은 “고려와 조선은 불교에 대해 서로 다른 정책을 펼쳤으나 두 시대 모두 많은 불상과 불화가 만들어졌다”며 “천년에 걸친 고려와 조선시대 가운데 11~16세기 작품을 전시했다”고 소개했다. 평소 사찰 밖을 나오기 힘든 고려 불화와 조선 불화, 불상, 고려 나전 경함, 청자까지 48점이 출품됐다.
일본 규슈국립박물관 전시장에 걸린 가가미진자 소장 ‘수월관음도’를 관람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허윤희 기자
특히 가가미진자 ‘수월관음도’는 현존하는 고려 불화 170여 점 중 제일 크고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딱 두 번 고국 땅을 밟았다. 1995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대고려국보전’에 처음 나왔고, 2009년 경남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전시됐다. 제작 시기와 발원자(發願者), 그린 사람을 모두 알 수 있는 유일한 고려 불화다. 현재 그림상에는 없지만 일본인이 쓴 ‘측량일기’에 화기(畵記)가 남아 있어 1310년(충선왕 2) 왕과 숙비(淑妃·후궁 김씨)의 발원으로 8명의 화가가 참여해 그렸다는 내용이 있다. 전문가들은 “화려한 색채와 문양,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 완벽하게 숙달된 기법 등 고려 불화의 독창적 예술성을 최대치로 뽑아낸 명품”이라고 꼽는다.
규슈국립박물관은 2005년 건립 당시부터 이 그림을 온전히 펼쳐 전시하기 위해 특별 진열장을 맞췄다. 박물관 관계자는 “규슈박물관은 아시아와의 교류를 주제로 건립한 박물관이라 설계 당시부터 규슈 지역을 대표하는 유물을 생각하며 건물을 지었다”며 “그중 하나가 바로 가가미진자 수월관음도”라고 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국내 연구자들은 “워낙 거대한 그림이라 아래를 말아서 전시하거나 멀리서 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전체를 살펴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라고 했다.
일본 가나가와현 엔가쿠지(円覚寺) 소장 ‘지장보살상’(고려 13~14세기). /규슈국립박물관
국내 불교미술사 연구자들과 불화 작가, 애호가들은 올 초부터 이 전시를 기다려 왔다. 가나가와현 엔가쿠지(円覚寺) 소장 ‘지장보살상’, 히로시마현 후도인(不動院) 소장 ‘만오천불도’ 등 평소 공개되지 않는 고려·조선 불화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다. 불교 회화 연구자인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조선 전기 불화는 국내에 워낙 작품이 없어서 연구자들도 도판을 통해서만 접해왔는데, 일본에서도 전국 사찰에 흩어져 있는 작품을 이렇게 한꺼번에 모으기가 쉽지 않다”며 “‘관경십육관변상도’ 등 동일한 주제를 그린 고려 불화와 조선 불화를 나란히 전시해 비교할 수 있게 한 전시 기법도 흥미로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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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2대 왕 인종의 비인 인성왕후 발원으로 제작된 ‘관음삼십이응현도’(1550년·교토 지온인 소장). /규슈국립박물관
일본 후쿠오카현 혼가쿠지(本岳寺) 소장 15세기 조선 불화 ‘석가탄생도’. /규슈국립박물관
13~14세기 고려 불화인 엔가쿠지 소장 ‘지장보살상’은 호방하고 활력 넘치는 당당한 필선이 눈길을 끈다. 교토 지온인(知恩院) 소장 ‘관음삼십이응현도’는 조선 1550년 인성왕후(조선 12대 왕 인종의 비)의 발원으로 제작됐고, 후쿠오카현 혼가쿠지(本岳寺) 소장 15세기 조선 불화 ‘석가탄생도’는 일본에 전파된 후 17~19세기 에도 시대 사찰에서 앞다퉈 베껴 그리면서 신앙의 대상이 된 그림이다. 국화와 당초 무늬가 촘촘히 새겨진 고려시대 나전 경함(도쿠가와미술관 소장), 두건을 쓴 11세기 고려시대 ‘지장보살 유희 좌상’, 말간 비취색 ‘청자 음각 물가풍경무늬 정병’도 빠뜨리지 말아야 할 명품이다.
두건을 쓴 고려 11세기 ‘지장보살 유희좌상’(규슈국립박물관 소장). /허윤희 기자
전시를 기획한 모리자네 구미코 규슈국립박물관 학예관은 “고려와 조선의 불교 문화는 단절된 게 아니라 계속 이어져 왔다는 걸 이번 전시에서 강조하고 싶었다”며 “규슈박물관에 기탁된 지온인 소장 불화들이 대부분 나왔으니 많이 오셔서 감상하시면 좋겠다”고 했다. 10월 15일까지.
일본 후쿠오카현 규슈국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숭고한 믿음의 아름다움-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불교미술’ 전시장 전경.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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