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귀족 열광시킨 명품 거울, 일본 왕실보물전에 나왔다
일본 나라 ‘쇼소인’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8~9세기의 나전 장식 원형 거울이 진열장에 놓인 모습. 노형석 기자© 제공: 한겨레
1300년 전 한반도의 신라와 일본열도에서 귀족들이 갖고 싶어 안달했던 최고의 패션 명품은 바로 나전과 보석으로 치장한 거울이었다. 7~8세기의 이 명품 거울이 전시장에 나왔다. 독특한 광택을 내는 조개껍데기 조각인 나전과 잘게 부순 터키석·호박 등의 서역산 보석을 새카맣게 옻칠한 표면 위에 깔아 뒷면을 수놓은 원형 거울이 진열장 속에서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당대 미술공예사의 걸작품으로 유명한 이 명작 거울이 일본의 고대 도읍이었던 간사이 지방의 나라시 나라국립박물관에서 관객을 맞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나라 도다이사(사찰) 경내의 일본 고대 왕실 보물창고 쇼소인(정창원) 유물들을 꺼내어 보여주는 제75회 ‘쇼소인’전 현장이다.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이 기획전은 고대 한·중·일 왕실과 귀족층이 누린 최고의 미술공예품들과 도다이사에 연관된 불교미술품과 관련 경전·고문서들을 보여주는 특별한 전시다.
나라국립박물관 본관 전시장에 나온 8세기께의 나전 장식 원형 거울. 당나라 제작품으로 소개되어 있다. 노형석 기자© 제공: 한겨레
7~9세기 한·중·일 유한층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보이는 나전 거울은 쇼소인의 보물 창고를 만든 주역인 당시 일본 쇼무왕의 불교식 법복과 더불어 이번 전시를 대표하는 출품작 중 하나다. 삼성미술관 리움도 비슷한 얼개와 모양새의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 더욱 이채를 띠는 유물이다.
야광패를 붙여 여기저기 피어오르듯 크고 작은 꽃가지 문양을 구현하고 그 위에 붉은빛 호박을 끼워 넣어 황홀한 입체감을 선사하는 상감 기법을 풀어놓았다. 더욱이 이런 꽃무늬 사이로 잘게 부순 청색, 녹색, 백색의 터키석을 채워 넣어 호화의 극치를 이룬다. 현존하는 나전 장식 거울 중 가장 규모가 클 뿐 아니라 보존 상태도 마치 지금 만든 것처럼 양호해 놀라움을 자아낸다. 리움 소장 나전 거울은 가야 지역에서 나온 출토품으로만 알려져 있다. 쇼소인 소장품처럼 화려한 꽃에 동물 무늬를 나전 기법과 호박·터키석 등으로 장식해놓았는데, 보존 상태는 출토되지 않은 전래품인 쇼소인 것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2015년 ‘세밀가귀’ 기획전에 출품돼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나라박물관 쪽은 전시한 거울의 제작국을 당나라로 명기하고 있지만, 리움에 소장된 거울은 국내 학계에서 신라산일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경주 월지에서 출토된 다른 옻칠 금박 기법의 거울과 다른 공예품 등에서 비슷한 문양 등이 확인된다는 것이 근거다. 두 유물은 앞으로도 계속 비교되면서 국적을 둘러싼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나전 장식 원형 거울. 쇼소인 유물과 얼개·외관이 흡사해 눈길을 끈다.
‘쇼소인’전 전시장에 나온 ‘사하리’ 명칭이 붙은 동제 합자. 불교 의식 때 향을 넣었던 용기로 추정된다. 노형석 기자© 제공: 한겨레
전시장은 이외에도 당대 최고의 공예사 유물들로 가득하다. ‘사하리’란 고유명사로 불리는 신라산이 유력한 탑 모양 꼭지가 달린 동제 향합, 정밀한 꽃잎 나전 옻칠무늬와 코끼리 위에 올라탄 서역 악사와 무동의 풍류놀이 장면이 그려진 초호화 비파 악기, 경주 월지에서도 비슷한 부재 조각이 나와 눈길을 끈 바 있는 고급 수납장 부재 모음 등 당대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명품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당시 당나라와 신라, 일본이 불교문화를 배경으로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공유했던 최고 수준의 귀족 종교문화의 진수가 펼쳐진 이번 전시는 긴장과 갈등이 지속되는 현재 한·중·일 관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성찰하는 계기로도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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