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언 ‘사인시음(士人詩吟·18세기 중엽)’, 종이에 담채, 28.2×35.6㎝, 개인 소장.
선비 여섯이 큰 고목나무 아래 모여 있다. 생각나는 시를 쓰고 이를 바라보거나 엎드려 뭘 열심히 적고 있는 선비, 책 한 권을 펼쳐놓고 같이 훑어보는 두 선비, 선 채로 수염을 만지면서 생각을 가다듬는 선비 등이 화면을 구성한다. 어느 늦여름 날 가까운 친구들끼리 단출한 시회(詩會)를 열었다. 각자의 얼굴에서 서로 다른 표정이 읽히지만 모두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지금처럼 세상살이가 각박하지 않아 공부의 절박함이 덜한 탓일 것이다.
그림의 가운데 가지를 넓게 펼친 큰 나무는 옛 선비들이 좋아했다는 회화나무다. 두 아름은 족히 될 곧은 나무줄기는 햇빛에 반사된 부분과 그늘진 부분의 명암 대비가 명확하다. 껍질이 세로로 길게 갈라지는 이 나무의 특징을 강조코자 한 것이다. 굵은 뿌리가 노출되어 있고, 줄기 정면에는 썩은 구멍이 보인다. 모두 고목나무의 특징이다. 나무 잎사귀 표현도 오늘날의 세밀화 수준으로 그린 듯 정확하다. 더 확대해 보면 하나의 잎 대궁을 중심에 두고 여러 개의 잎이 좌우로 나란히 붙어있다. 회화나무 잎의 본래 모양새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는 아까시나무와도 닮았다.
삼국시대 이전에 중국에서 들어온 회화나무는 선비들 곁에 흔히 심고 가꾸던 나무다. 고위 관리들은 벼슬살이가 끝나고 고향으로 되돌아가면 마을 앞에다 회화나무부터 먼저 심었다. 궁궐에도 자라는 귀한 나무이면서 다른 이름이 학자수(學者樹, 영어로도 ‘scholar tree’)라 하므로 선비가 사는 곳임을 은근히 자랑할 수 있어서다. 창덕궁 돈화문 안 등의 궁궐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서울의 성균관과 각 지방의 유명 서원이나 향교 등 유서 깊은 우리의 문화 유적에서 회화나무 한두 그루쯤은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림에는 배경이 생략되어 있지만 어느 양반 마을 앞에서, 당산나무 기능도 겸하는 회화나무인 것 같다. 선비들의 모임은 근사한 전용 정자 건물이 아니라도 좋다. 넉넉한 해 가림막이 되어주는 회화나무 아래라면 나무의 상징성만으로 선비의 야외 공부 장소로 충분하다.
조선 말기 강희언(1710~1784)의 작품이다. 중인 출신으로 관상감의 관리이면서 풍속화에 능한 독특한 이력의 화가다. 뒷날 붙인 이 그림 제목은 사인시음(士人詩吟)이다.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들이 시를 읊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