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열(金昌烈 : 1929~2021) : 물방울 Water Drops oil on hemp cloth 60.0☓72.5cm (20) 1979
by 주해2022. 12. 27.
2022.10.12
김창열의 회화에서 1970년대 초부터 등장한 물방울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치열한 자기성찰의 결과로서 화면에 존재한다.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면서 작가로서의 방향을 모색하던 시기인 1972년, 팔레조Palaiseau의 화실 뒤편에서 우연히 캔버스에 흘린 몇 개의 물방울을 보고 전율을 느낀 것에서부터 물방울 회화는 시작됐다.
물방울 작업에는 빛과 그에 따른 반사효과, 그리고 그림자가 중요한 조형적 요소로 등장하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70년대 후반을 지나며 변화를 보인다. 모델링 페이스트를 사용해 빛의 하이라이트를 강조하거나 그림자 부분을 에어브러시 대신 유화 물감을 사용해 화면에서 더욱 확실한 존재감을 가진 형태로 표현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물방울의 밝게 빛나는 부분과 어두운 그림자 부분이 극적인 대조를 이루게 되고, 찰나의 순간에 반짝이는 하나의 물방울 속에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회화에서 물방울이 맺힌 배경은 실재하는 거친 질감의 마포천이지만, 물방울은 눈앞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붓으로 그린 환영이다.출품작은 1979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직사각형의 화면 중앙과 아래쪽에 물방울이 군집과 층위를 이루며 영롱하게 맺혀있다.
일정한 형태와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배열되지 않고 물방울 하나하나는 그 크기와 모양이 미묘하게 다르게 그려졌다. 이처럼 제각각인 물방울이 상단에 너른 여백을 남기고 화면 안에서 단조롭지 않으면서도 균형 있게 구성됐다. 또한, 우측 상단에서 빛을 받은 듯한 물방울 하단의 그림자는 무한한 공간 같은 화면을 지지체와 물방울이 만나는 지점으로 표현했다. 마포 천 위에 그려진 물방울은 바탕에서 만들어진 느낌을 주는데 인위적으로 그려졌다기보다 표면에 맺혀 자연적으로 발생한 듯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표면에 물이 맺혀 생성되는 물방울은 영원히 지속되는 모양이 아닌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모습으로, 작가는 이를 포착해 캔버스 위에 그려낸다.
순간의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찰나의 시간 속에서 생성되는 물방울의 다채로운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김창열은 오랜 시간 물방울 하나하나를 그리면서 ‘에고의 소멸’에 다가갔는데 이는 마음을 비우는 ‘무아’無我의 경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물방울로 ‘공’空을 표현하는데 단순히 빈 것이 아닌 그 속에 모든 것을 투영하는 무한성을 담고자 했다. 이후, 김창열의 화업 50여년 동안 여러 가지 시도에 따른 변화가 있었지만, ‘물방울’만큼은 사라지지 않고 지속돼 작가의 삶에 영원히 존재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