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김창열은 1970년에 제작한 〈제전〉과 같이 구체에서 점차 흘러내리는점액질의 형태로 대상을 변화시켰다. 1971년 파리 근교 팔레조Palaiseau의 화실 뒤편에서 우연히 캔버스에 흘린 몇 개의 물방울을 보고 전율을 느낀 것에서부터 물방울 회화는 시작됐다. 1972년 《살롱 드메Salon de Mai》전시에서는 물방울을 주제로 〈밤의 행사Event of Night〉를 선보였고, 이후 평생을 고집스럽게 물방울을 반복하여 그렸다. 초기 물방울 회화는 다소 거친 마천 위에 그려진 영롱한 형태를 띠었고 눈앞에 살아있는 듯 한 흔적을 남겼다. 1970년대의 물방울 표현 기법은 그 흘러내림이 극단적으로 도드라지기보다 물방울 자체의 영롱함을 선보였다. 다만 극사실적 회화 기법처럼 물방울을 또렷하고 투명하게 그리는 것에만 목적을 두지는 않았다. 김창열의 회화 속에 오일로 그려진 동그란 원형의 형상을 본 사람들은 그것이 눈앞에 실존하는 물방울인 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된 형태에 감탄하며 빠져든다. 너무나 맑고 투명해 혼탁하지 않은 물방울은 감상자가 바라보며 믿던 물질(물방울)이실존하는 것이 맞는지 되묻는다. 작가는 물방울을 그리며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용해시키는 투명함의 경지를 쫓았다. 물방울은 마치 찰나의 순간이 지나면 곧 흘러 쏟아져 내릴 것 같으며, 시간이 정지된 듯한 그의 회화는 물방울이 물감으로 그려진 물질임을 잊게 할 정도의 환영을 느끼게 한다. 만약 회화의 물방울이 실존하는 것이었다면 시간이 지나 곧 천에 스며들거나 증발해버리는 존재임을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나, 김창열의 물방울은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무한함을 담아낸 대상으로 자리하며 우리 눈앞에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