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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김환기 작품관

김환기(1913~1974) : L'Endroit Où J'habitais Where I Lived : oil on canvas : 60.2☓92.2cm : 1956년

by 주해 2022. 11. 30.

2020-09-10 20:02:46

 

 

PROVENANCE

Galerie Drouant David(Paris)Private Collection(New York)

LITERATURE

『김환기화집金煥基畫集』(일지사一志社 , 1975 ) , p.66.

EXHIBITED

Galerie M. Benezit(Paris): 1957

 

작품설명

“많은 예술가들에게 파리는 자신을 발견하는 장소였다. 파리로 찾아온 많은 거장들이파리에서 비로소 자신을 바라 볼 수 있었고 자신의 색깔이, 자신의 냄새가 어떤 것인지를 인지할 수 있었다. 언젠가 샤갈은 이런 말을 했다. 파리에 나온 자신은 마치 무대 위에 올려져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노라고, 자신을 그처럼 환히 볼 수 있었노라고. 샤갈은 파리에 나오면서 비로소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것, 러시아에서 나온 유태인이란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에콜 드 파리의 화가들이 그랬다. 그들은 한결같이 파리에 나와서야 자신이 누구인가를 자각할 수 있었다.비로소 자신의 고유한 속성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김환기의 파리 체류도 자기 발견의 계기였다. 자신이 속해 있는 곳이 어디이며 자신의 고유한 정신이, 고유한 노래가무엇인지를 비로소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 오광수(1996)『김환기 영원한 망향의 화가』(열화당 미술문고, 1996), p.93.김환기 평생의 화제는 자연이다. 그 자연은 화가가 자신의 눈앞에 마주세우는, 대상 對象 으로 존재하는 자연이 아니고 인간을 포함한 일체를 아우르는 자연이다. 화가의 과업은 자연을 대상으로 간주해서 그 외형을 모방하거나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드러내는 것이다. 계획이나 개념, 보다 넓게는 화가의 의식보다는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길 줄 아는 능력이 화가에게 더욱 중요하다.환기가 파리에 갔던 1956년 유럽 화단의 야수파, 입체파, 앵포르멜 모두 그 기저에는 대상을 파악하는 者로서 화가가 존재한다. 그리고 자연을 대상으로 파악할 때 그것은 캔버스에 바탕과 구분되는 형태를 갖게 된다. 환기가 파리에 가서 가장 어색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이 지점이었을 것이고,이번 출품작은 이러한 환기의 고민을 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항아라와 산, 그리고 새를 대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하얀 선의 구분을 통해 바탕(배경)이 곧 형태가 되게 만들었다.

이러한 시도는중국 출신이면서 환기와 마찬가지로 파리에서 유학했던 작가 산유 Sanyu, 1901-1966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1956년작 <내가 살던 곳 L’Endroty où j’habitaese >은 파리 ‘베네지트 화랑 Galerie M. Bénézit ’에서 열린 개인전에 처음으로공개되었던 작품이다. 명제 그대로 내 고향의 산, 달, 항아리와 학을 푸른공간에 담아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겹겹이 올린 푸른색 물감은 다양한 변주 속에 각기 다른 면으로 나뉘고, 면을 관통한 선들은 테두리 없이 공간의 조화를 꾀한다. 산뜻한 화면 아래 이전보다 과감해진 면 분할과 선의 율동은 각 대상을 해체한 후 자연과 사물이 내포한 그 원형의 정수만을 남긴모습이다. 면과 선, 선과 선은 서로의 공간에서 혼재되어 있지만 오히려 흐트러지지 않는 단단한 조형성을 띠는데, 이는 이후 추상에 이르기까지 김환기의 회화에서 지속되는 부분이다.형태의 묘사에서 본질의 탐구로 치닫는 이 시기, 김환기는 이전 서울시기와 비교했을 때 소재의 급격한 변화를 시도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파리에서의 몇 차례 개인전을 진행하며 끊임없이 탐구하고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했음에도 그의 화면에는 여전히 한국적인 모티브가 펼쳐졌는데, 이는여타 한국화가들이 파리 방문 후 화풍을 변화시킨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스스로 말했듯 그곳 파리에서 지금껏 본인이 부르던 노래, 앞으로 나아갈 예술세계가 자신이 고국으로부터 지니고 온 정서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모든 예술의 가치는 ‘오리지널리티 originality, 독창성 ’에 있다고 봐요. 특정 대상이나 기법을 쉽게모방하는게 아니라 자기만 가진 재능을 재료로 삼아 완전히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걸작이 탄생하는 거죠…. 여기 와서 느낀 것은 시정신이오.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할 것 같소.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 강력한 노래가 있구려. 지금까지 내가 부르던 노래가 무엇이었다는 것을 나는 여기 파리에 와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소.” - 김환기「파리통신Ⅱ」, 『김환기 에세이-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환기미술관, 2005), p.142.1956년, 화가 김환기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독창성은 무엇인지를 찾아 새롭고 다양한 파리의미술문화를 관조하며 탐색의 시기를 가졌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것과 사랑하는 정서는 우리네 고유한 가치임을 깨닫고 문인화적 화제 畵題 를 통한 한국적 풍류에 현지의 세련된 조형및 색채 감각을 입혀가기 시작한다.“나는 동양 사람이요, 한국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하더라도 내 이상의 것을 할 수가 없다. 내 그림은 동양 사람의 그림이요, 철두철미 한국 사람의 그림일 수밖에없다.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강렬한 민족의 노래인것같다. 나는 우리나라를 떠나 봄으로써 더 많은 우리나라를 알았고, 그것을 표현했으며또 생각했다. 파리라는 국제경기장에 나서니, 우리 하늘이 역력히 보였고, 우리의 노래가 강력히 들려왔다. 우리들은 우리의 것을 들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 것이 아닌 그것은 틀림없이 모방 아니면 복사 複寫 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김환기「편편상片片想 8」, 『김환기 에세이-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환기미술관, 2005), p.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