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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도상봉 작품관

도상봉(1902 ~ 1977) : 라일락 : oil on canvas : 90.8x72.7cm (30) : 1955

by 주해 2023. 2. 16.

 

안정적 구도와 차분한 색조를 특징으로 하는 도상봉의 화풍은 그가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유학하며 습득했던 근대 일본풍의 아카데미즘에 양식적 근원을 두고 있다. 도상봉은 일본 아카데미즘의 화법을 따르면서도 민족적 정서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는 그가 작품의 소재로 선택한 조선 백자와 전통적 기물, 고궁의 풍경 등에서 드러난다. 소재에 대한 그의 관심은 초기에는 인물, 중기에 는 정물, 후기에는 풍경으로 옮겨갔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즐겨 그렸던 것은 정물이다. 그의 작품세계에서 정물화는 수적으로 단연 우세할 뿐 만 아니라 초기부터 만년까지 고른 분포로 등장한다.

출품작 또한 정물화로 백자 항아리에 꽃이 가득 담겨있는 모습이다. 캔버스 하단의 중앙에 자리잡은 테이블과 항아리는 균형을 이루며 안정감을 주고, 그 위로 흐드러지게 꽂힌 꽃다발은 생기와 풍요로움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백자 항아리에 꽃이 담긴 정물은 다양한 소재들 중에서도 도상봉이 가장 많이 즐겨 그렸던 도상으로 손꼽힌다. 그는 자신의 아호를 ‘도자기의 샘’을 뜻하는 ‘도천陶泉’으로 지을 만큼 백자에 강한 애착을 가졌는데, 이를 열정적으로 수집하였을 뿐 만 아니라 자신의 작업에도 적극적으로 등장시켰다. 그의 작품에서는 심취했던 백자가 지닌 유려한 곡선의 형태와 유백색의 오묘한 색채미가 은은히 드러난다. 도상봉은 완벽한 구형의 백자만이 아닌 일그러진 형태의 백자 또한 즐겨 그렸는데, 출품작 속의 백자도 왼쪽이 살짝 찌그러진 모습을 하고 있다. 균형과 대칭을 이루는 안정적인 구도 안에 변화와 재미를 준 작가의 심미안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작가는 꽃이라는 소재에 대해 “예부터 인간은 누구나 꽃을 좋아하고 그 아름다움을 동경해 왔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감성을 부드럽게 하고 우리들 심정에 더 할 수 없는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출품작을 보면 다양한 꽃들 중에서도 라일락이 꽂혀 있는데, 라일락은 작가가 자신의 정원에 라일락 나무를 심었을 정도로 가장 좋아하던 꽃이다. 그에게 라일락은 백자와 같이 오묘하고 부드러운 빛깔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우아하고 숭고한 아름다움을 지닌 대상이었다. 주제를 둘러싼 배경은 어두운 색조로 무겁게 칠해져 있는데, 이로 인해 하얀 라일락과 백자가 은은히 그 윤곽을 드러내는 듯 보인다. 작가는 캔버스 천의 고운 결을 살리면서 부드럽고 잔잔한 붓질로 온화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으며 이러한 요소들은 서로 어우러져 작품 전체에 서정적인 여운을 풍긴다. 이처럼 도상봉은 대상을 서사적이거나 상징적으로 다루지 않고 소재들이 품고 있는 보편적 가치로서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했는데, 출품작 또한 꽃과 백자를 소재로 하여 대상의 미적 진리와 조화를 추구했던 그의 예술 성향이 잘 담겨있다.

20230228  :  S  :  추정가  :  KRW 180,000,000 ~ 350,000,000

                              HP  :  180,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