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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미술/서양 미술사

모과가 있는 정물화

by 주해 2022. 12. 30.

모과가 있는 정물화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53] 모과가 있는 정물화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53 모과가 있는 정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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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모과가 있는 정물화, 1633~1664년, 캔버스에 유채, 35×40.5㎝,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국립미술관 소장.

은접시에 잘 익은 황금빛 모과를 괴어 담았다. 눈으로 보기만 하는데도 모과 특유의 단단한 과육과 왁스를 바른 듯 끈적이는 표면이 만져질 것 같다. 틀림없이 파란 하늘 아래서 가을바람과 뜨거운 햇볕을 듬뿍 받고 자라났을 텐데,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을 배경으로 정갈하게 놓인 그림 속 모과에서는 시끌벅적했을 바깥세상의 공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토록 잘 익은 모과를 따다가 접시에 곱게 담아둔 그 누군가조차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지 오래된 것처럼 주위가 온통 적막하다. 이 모과는 살아있는 이들을 즐겁게 할 음식이 아니라, 신과 영혼들에 바치는 향기로운 제물이다.

에스파냐의 세비야에서 주로 활동했던 화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án·1598~1664)은 수도사나 순교자를 그린 종교화와 이처럼 과일과 그릇을 소재로 한 단순한 정물화를 많이 남겼다. 이 그림은 원래 더 큰 종교화의 일부로 그려졌다가 나중에 정물 부분만 따로 잘라 지금처럼 독자적인 작품이 됐다. 따라서 제작 연대 또한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이 그의 전성기에서 말년 사이 언젠가 그려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빛과 어둠의 대조가 강렬한 가운데 표면 질감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단순한 장면 안에서도 극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내는 데 능했던 수르바란은 이러한 화풍을 처음으로 개척했던 이탈리아의 카라바조에 필적한다고 해서 ‘에스파냐의 카라바조’라고 불린다. 같은 시대에 황금기를 맞이했던 네덜란드의 정물화는 온갖 진귀한 집기들과 화려한 사치품들을 부려 놓아 눈을 사로잡았다. 반면 수르바란의 정물화는 종교화와 다름없이 엄격한 절제와 금욕을 통해 내면을 성찰하게 하는 경건함을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