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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한국 고미술

신윤복 ‘무녀신무(巫女神舞·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28.2x35.6㎝, 간송미술관 소장........자두나무 집 재앙, 썩 물렀거라!

by 주해 2022. 12. 13.

신윤복 ‘무녀신무(巫女神舞·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28.2x35.6㎝, 간송미술관 소장

무당이 신들린 춤을 추고 있는 무녀신무(巫女神舞)다. 장소는 여염집 마당, 널찍한 마루에는 제물을 차렸다. 초가지붕이지만 치밀하고 가지런하여 정성이 든 건물이다. 사각기둥에 서까래 일부도 각재(角材)를 썼다. 껍질만 벗긴 통나무를 쓰는 것보다 공임이 훨씬 더 든다. 생활의 여유가 조금 있는 집에서 무당을 불러다 굿판을 벌인 것이다.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30폭 중 일반 백성의 삶을 그린 풍속화의 백미다.

사립문을 나서면 초가집 사이 마을 길에는 돌담을 따라 나무 몇 그루가 자란다. 꽃도 열매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있을까? 찾아 들어가 보자. 배곯기가 일상이던 시절, 옛날 전통 마을 길가에는 누구나 손쉽게 과일을 따 먹을 수 있는 나무가 인기였다. 옛 과일나무의 대표는 ‘도리(桃李)’라고 하여 복사나무와 자두나무로 짝을 이룬다. 그림 속 나무는 무성한 잎이나 자라는 모양새로 봐서 둘 중 하나다. 다만 복사나무는 귀신이 싫어하므로 제삿날 조상님이 찾아오실 길목인 사립문 옆에 심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두나무로 추정한다.

오늘날엔 식물학적 이름이지만 옛날에는 오얏나무라 했다. 이(李)씨 성을 나타내며 우리에게 오얏나무가 더 친숙하고 훨씬 정감이 간다. 자두나무는 어른들은 물론 신맛을 별로 개의치 않는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다. 그림 속 자두나무는 굵은 줄기 하나가 아니라 뿌리에서 싹눈이 많이 돋아 이렇게 여러 그루가 모여 자라는 모습이 된 것이다. 위쪽의 돌담 밖에도 같은 자두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 사이에는 돌담 길을 따라 사람 키 높이 남짓한 앵두나무가 여러 그루 무리 지어 자란다. 앵두는 뭇 과일 중 가장 일찍 익는 과일로서 자두와 함께 옛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마당에는 장구를 치고 피리를 부는 악공 둘과 네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그러나 가운데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여인만 소원이 절박한 것 같다. 바로 옆 여인은 심드렁하게 그냥 앉아 있고 노랑 저고리 입은 처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을 뿐이다. 다만 눈에 띄는 장면 하나는 초록 장옷을 걸친 젊은 여인이 앵두나무 사이에 몸을 숨긴 담 밖의 사내와 은밀하게 눈 맞춤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볼수록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