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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한국 고미술

이유 (李濡) 초상 肖像 :Portrait of Yi Yu : ink and color on silk : 42.0☓68.7cm

by 주해 2022. 12. 4.

2021-02-11 12:46:58

 

 

작품설명

 

머리에는 사모를 쓰고 분홍색의 담홍포를 입고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녹천 이유李濡, 1645-1721의 반신상이다. 가느다란 눈매와 눈가의 주름, 뭉툭한 코와 그 옆으로 깊게 패인 팔자주름까지 그의 생김새를 사실적으로 묘사했고 수염과 눈썹의 흰털까지도 꼼꼼하게 그렸다. 또한 콧날 주변과 눈가, 주름에 부분적으로 음영을 구사해 입체감 있게 나타냈다. 얼굴표현에 있어 세밀한 필치가 돋보이며, 전체적인 옷주름은 윤곽선만으로 간결하게 표현하는 조선시대 초상화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된 작품이다.녹천 이유는 숙종대에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지낸 인물로 1719년 기로소에도 입성했다. 당시 숙종이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기념해 제작한 <기사계첩耆社契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서도 그의 초상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기사계첩>에 실린 이유 초상에는 ‘영부사 녹천 이공 75세 진영領府事鹿川李公七十五歲眞’ 이라 쓰여 있어 그의 나이 75세 때 그려진 초상임을 확인할 수 있는 반면 출품작의 제작시기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앞서 언급한 초상과 생김새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정 1품 이상만 착용할 수 있던 서대를 착용하고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기사계첩 초상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시점에 그려졌거나 후대에 이를 보고 모사했을 가능성을 염두해볼 수 있겠다.초상화와 함께 전하는 자료에 의하면 큰 집에 이유 초상 두 점이 있었으며, 본래 같이 봉안하였으나 후에 9대손 이규진이 이봉移奉했다고 한다. 또한 정조 선황제의 태봉胎封, 임금의 태를 안치함, 또는 태를 묻은 곳을 경성으로 옮길 당시 이 일에 참여해 그 곳에서 나온 금박을 하사 받았다고 쓰여 있으며, 이 또한 온전하게 보관되어 함께 전해지고 있다.

함께 전하는 기물들

惠定公眞本 大宅奉安二本中 큰 댁에 봉안한 두 본 가운데 하나

己巳 正月 初三日 九代孫 揆眞 移奉 기사년 정월 3일 구대손 규진揆眞 이봉移奉함.

胎封所出金箔, 태봉胎封에서 나온 금박金箔은

有時爲起死回生之靈劑云 때론 기사회생의 명약이 된다고 함.

劉典祀所言 유전사劉典祀가 말함.

戊辰 十月 寧越郡 正陽里 所在 무진년 시월 영월군寧越郡 정양리正陽里에 소재함.

正祖宣皇帝胎封 移奉于京城時 정조 선황제正祖宣皇帝, 정조 이산의 태봉을 경성으로 이봉할 때

自胎室所出金箔 태실에서 나온 금박.

參役時所受 이 역사役事에 참여할 때 받은 것임.

 

참고도판기사계첩 中 이유초상, 1719, 보물 제 929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