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송유수관 이인문(李寅文 : 1745~1821) : 산정일장(山靜日長) : Landscapesink and color on silk : 47.7☓115.7cm (eight-panel screen)
by 주해2022. 12. 4.
2021-02-15 19:54:18
LITERATURE
茶 즐거움을 마시다(경기도박물관, 2014), p.132.
EXHIBITED
경기도박물관, 《茶 즐거움을 마시다》: 2014.4.30-8.24.
작품설명
낮잠 자고, 차를 마시고, 책을 읽는 등 소박하고 평화로운 문인의 일상을 읊은 「산정일장山靜日長」이라는 시는 조선시대 사대부로 하여금 이상적 은거의 삶을 구체적으로 꿈꾸게 했다. 중국 남송대나대경羅大經의 『학림옥로鶴林玉露』에 실린 이 시는 조선 후기 시의도가 성행하면서 당대 인기 있는화제로 부상했고, 차비대령화원 녹취재 주제로 등장할 정도로 너른 사랑을 받은 화목이었다. 특히고송유수관 이인문은 산정일장 주제의 그림을 곧잘 그리곤 했던 대표적인 화가 중 하나로 꼽힌다.그가 그린 산정일장은 병풍과 낱폭이 몇 전하고 있으며 출품작과 같은 병풍은 국립중앙박물관에두 틀, 간송미술관에 두 틀이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낙질된 네 폭의 것과 완전하나병풍 순서가 다른 것이 있고, 간송미술관에는 한 폭이 유실된 일곱 폭과 만년작인 작은 크기의 머리 병풍이 있다.이번에 소개할 출품작은 현전하는 고송유수관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대형의 크기를 자랑하는 여덟 폭 병풍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 작품은 시 내용에 충실하면서도 섬세한 필치와 맑은 채색을 더한 은거지의 이상적 풍광을 담아내 이미 경기도미술관의 전시와 여러 연구를 통해 소개 되었다. 각 폭 상단에는 전서와 예서의 명필가로 이름을 널리 떨쳤던 기원 유한지兪漢芝, 1760-1834가 각 폭 장면에 걸맞는 시구를 단정한 예서로 써내렸다. 유한지는 당대 대수장가였던 금릉 남공철과 더불어 중인 출신이었던 이인문, 김홍도 등 당대 손꼽히는 화가들과 신분을 막론하고 폭넓게 교유하고 있었으며, 이는 이인문의 작품을 비롯한 여타 작품들에 남긴 제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대 풍성했던 문화예술을 함께 향유한 경화세족들의 교유관계 일면을 이 작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유한지는 이 밖에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네 폭의 <산정일장>과 <고산구곡시화병高山九曲詩畵屛>, 간송미술관 소장 <한중청상첩> 등에 제화시를 남긴 예가 몇 있으며, 고송유수관의 관지는 마지막 폭에 있는 것으로 ‘고송유수관도인 이문욱이 그리다’라고 쓰고 그의 작품임을 밝혔다.작품을 두 폭씩 나누어보면 서로 마주보는 대칭을 이루고 있는 점이눈에 띈다. 주산의 위치가 그러하며 제시의 위치 역시 그렇다. 또 각폭 전경에는 전각과 인물 등 시구의 주요 주제를 그렸고, 원경에는 화면의 무게를 실어주는 주산을 넣어 모두 비슷한 구도를 보이고 있다.작품을 그리기 전에 화면의 전반적인 구도를 염두에 두고 꼼꼼히 화면을 계획한 이인문의 구성법이 드러나는 부분으로 여겨진다.작품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면 작품 크기와 표현법 등에서 비교적 유사성이 보이는 간송미술관 소장의 일곱 폭짜리 <산정일장>과 비교해봄직하다. 첫 번째 장면은 봄꽃이 저물고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은거한 인물이 턱을 괴고 낮잠을 자는 장면이다. 간송 소장작의 경우전경에 시구의 주요 장면을 부각시켰지만, 출품작은 주제는 물론 주변 경물의 다양한 구성과 꼼꼼하고 섬세한 필치가 돋보인다고 할 수있다. 특히 간송 소장작의 주산은 전경에 비해 힘을 뺀 호방한 느낌이나 출품작은 비교적 부드럽고 섬세한 필치로 미점을 가해 괴량감을주는 등 성실한 묘사에 치중했다. 또한 가옥 옆으로는 계곡이 추가되어 있으며, 하얀 꽃이 핀 나무가 정원에 자리해 있는 등 더욱 다양한경물 배치로 공간의 분위기를 상세하게 표현했다.여덟 번째 장면 또한 표현 방식에 차이를 보인다. 이 장면은 달이 떠오르자 두 목동이 돌아오고 문인 역시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출품작은 시에 등장하는 요소들, 즉 쌍쌍이 돌아오는 목동의 모습과 흐르는 시내 등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그 뒤로 연운에 싸인 작은마을과 넘실대는 원산의 모습, 하늘에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을 담아한적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서정적인 장면 연출이 돋보인다. 반면 간송 소장작의 경우 내용을 온전히 묘사하기 보다는 경물이 생략된 부분도 있고 화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모습만 선택적으로 부각해 그린것이 눈에 띈다.두 작품 모두 기년작은 아니나 시의 내용을 성실하고 꼼꼼하게 반영하고 있는 점, 각 경물의 유기적이고 탄탄한 화면 구성법, 필치 등을 미루어 볼 때 출품작을 간송미술관 소장작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의 것으로 상정해 볼 수 있겠다.산정일장 주제를 담은 병풍을 제외하곤, 이인문의 산수 병풍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출품작은 그 소수의 병풍 중 가장 대형의 사이즈, 그리고 온전한 상태를 자랑하며 이인문의 풍성한 필치와 맑은 담채의 향연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관직에 매여 바쁜 일상을 쉬이 탈출하지 못하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은거하는 삶을 옮긴그림을 소장하고 감상하는 것으로 자신의 아쉬운 처지를 위로하곤 했다. 이는 남공철南公轍, 1760-1840이 깊은 산 속 은자의 모습을 담은 산거도를 이인문으로부터 선물 받고 남긴 글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예나지금이나 예술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에는 다름이 없다는 것을 새삼 환기시키는 대목이다.(전략) 지난해 나를 위해 산거도를 그린 것은 내 일찍부터 벼슬 버릴 마음 있는 줄 알았음인가. (중략) 오호五湖와 삼산三山은 하늘 위에 있는 듯 너무 멀어 자나 깨나옛 사람의 싯구만 오래 외웠었네. 내 이제 빽빽이 줄여담아 척폭尺幅 속에 가졌으니 방 위에 높이 걸고 한 잔술을 기울이네.(하략)― 남공철, 금릉집金陵集 중산은 태고인 양 고요하고, 해는 소년처럼 유장하다.내 집은 깊은 산 속에 있는데, 봄과 여름이 교차하는 즈음이면푸른 이끼 섬돌에 가득하고, 떨어진 꽃잎 길 위에 수북하다.문 두드리는 소리 전혀 들리지 않고, 소나무 그림자만 드리웠다.지저귀는 산새 소리 들으며, 오수에 곤히 든다.이내 샘물 긷고 솔가지 주워 차를 달여 마시며,생각나는 대로 『주역』, 『시경』, 『춘추』 「좌전」, 『이소』, 『사기』와도연명과 두보의 시, 한유와 소동파의 글들을 읽는다.조용히 산길을 걸으며 소나무 대나무를 어루만지고,키 큰 나무 무성한 풀 위에서 어린 사슴, 송아지와 함께 어울리고,시냇가에 앉아 양치질도 하고 발도 씻는다.죽창으로 돌아오면, 시골 아내와 어린 아이가 죽순,고사리나물에 보리밥을 지어와, 즐겁게 먹는다.창가에서 붓을 들어 크고 작은 글씨들을 써보고,흥이 일면 짧은 시를 읊조리거나 『학림옥노』 한두 단락을 써보기도 하며,차 한 잔을 다시 달여 마시며, 소장한 법첩, 유묵遺墨,두루마리 그림 등을 감상한다.시냇가를 거닐다가 밭 일구는 노인네 시냇가 벗을 만나면,뽕나무, 삼베 농사에 대해 묻고, 벼 작황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맑은 날, 궂은 날을 가늠하고 절기를 따지고 시기를 헤아리며,한바탕 이야기를 주고받는다.집으로 돌아와 지팡이 짚은 채 사립문 아래에 서면,석양은 산에 걸려있고 보랏빛 푸른빛 등 수많은 형상이짧은 시간에 무수한 변화를 선사해, 황홀경에 들게 한다.소 등에서 젓대 불며 짝 지어 돌아올 때 달이 앞 시내에 새겨졌다.유한지 쓰고, 고송유관도인 이문욱 그리다.참고문헌김소영, 이인문의 산정일장도 연구(인문과학연구논총 36, 2015)홍혜림, 조선후기 산정일장도 연구(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석사논문, 2014)참고도판이인문, 산정일장병, 1824, 간송미술관 소장이인문, 산정일장병, 181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인문, 산정일장병, 간송미술관 소장이인문, 산정일장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