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3 09:28:49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1/10/13/45FV4A624BHKXHKS4BOHJQ4YLI/
내년 서울서 한국국제아트페어와 ‘프리즈’ 동시에 열려
1988년 허스트 등 16명 전시, 런던을 세계 미술 중심으로
세계적 아트페어들 한국을 주목… 미술계, 시너지 고민을
오는 15일 일반 개막하는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KIAF)에 쏠리는 관심은 놀라운 수준이다. 전시작을 미리 볼 수 있는 VVIP 티켓 100장을 온라인을 통해 30만원에 판매했는데 단 이틀 만에 매진됐다고 한다. 아트바젤과 함께 세계 양대 아트페어로 손꼽히는 ‘프리즈(Frieze)’ 아트페어가 내년 가을 서울 코엑스 전시장에서 층만 달리해 ‘키아프’와 동시에 열린다는 소식도 이런 열띤 관심을 이끌어낸 배경이 됐을 것이다.
프리즈 아트페어는 2003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됐다. 1970년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한 아트바젤에 비하면 역사가 비교적 짧지만, 아트페어가 시작되는 과정과 예술에 대한 열정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프리즈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려면 먼저 아트페어의 전신이자 1991년 시작된 미술 전문지 ‘프리즈’ 매거진을 살펴보고, 이 매거진의 탄생에 큰 역할을 한 1988년 프리즈 전시회로 거슬러 올라가 볼 필요가 있다.
1988년 영국 골드스미스대 출신 젊은 예술가들이 런던 남동부 허름한 창고에서 연 전시 ‘프리즈(Freeze)’는 런던을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바꿔 놓았고, 이 전시로 수퍼스타가 된 데이미언 허스트를 인터뷰하며 창간한 미술 전문지 ‘프리즈(Frieze)’는 2003년 런던 리젠트파크에서 시작된 세계 최대 아트페어의 이름이 되었다. 왼쪽 큰 사진은 2019년 런던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빅토리아 미로 갤러리 부스를 둘러보는 관객들. 오른쪽 작은 사진들은 올해 프리즈 뉴욕의 전시장 모습(위)과, 2019년 프리즈 LA에 몰린 관객들(아래)이다. /프리즈 아트페어
1988년 영국, 지금은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는 데이미언 허스트를 비롯해 골드스미스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젊은 예술가 16명이 주축이 돼 런던 서레이독의 빈 창고를 빌려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 제목은 ‘프리즈(Freeze)’. ‘꼼짝 마’라는 의미를 지닌 이 전시 제목에 대해 당시 골드스미스대 강사였던 미술 비평가 이언 제프리는 전시 서문에서 “바로 지금이 프리즈다“라고 표현했다. 젊은 작가들의 상상력와 에너지가 미술계 판도를 뒤집을 것임을 예견한 것이다.
대성공을 거둔 ‘프리즈’ 전시회는 현대 미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예술가 그룹인 ‘YBA’의 뿌리가 되었다. 이 전시가 런던을 넘어 해외까지 순회전을 열며 널리 알려지자, 1992년 미국 아트포럼지(誌) 기자 마이클 코리스가 이들을 설명하면서 ‘젊은 영국 예술가(Young British Artists)’를 줄여 ‘YBA’라고 부른 것이 자연스럽게 이들을 한 집단으로 규정하는 이름이 된 것이다. 마치 19세기 말 ‘인상파’라는 이름이 모네의 작품을 보고 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한 한 신문기자의 기사에서 유래한 것과 비슷하다. 형식과 주제 모두 다양하지만, 최초의 전시회에 참여한 16인을 포함해 많은 영국 현대 미술 작가가 주목받게 됐다. YBA의 등장은 현대 미술의 중심이 20세기 초 파리, 20세기 중엽 뉴욕 이후 베를린, 쾰른 등으로 흩어지다 돌연 20세기 말 런던으로 집결되는 효과를 일으켰다. 이때 한국 미술 학도도 많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프리즈 전시회를 흥미롭게 본 젊은 미술 평론가 매슈 슬로토버는 데이미언 허스트를 인터뷰하며 1991년 미술 전문지 ‘프리즈(Frieze)’ 매거진을 창간한다. 전시회 이름 프리즈(Freeze)와 발음은 같지만 철자는 다른데, 프리즈(Frieze)는 고대 그리스 건축에서 기둥 윗부분을 수평으로 연결해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장식부를 말한다. 가로로 긴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 주로 부조나 그림을 장식한다. 현대 미술의 흐름을 파노라마식으로 조망하겠다는 매거진 창간 취지와도 잘 어울리는 중의적 이름이다.
그리고 2003년, 프리즈 매거진은 런던 리젠트파크에서 세계적 규모의 아트페어를 시작한다. 매거진 이름이 이제 아트페어 이름이 된 것이다. 현대 미술을 다루는 ‘프리즈 런던‘과 고전 예술 중심의 ‘프리즈 마스터스’ 두 분야로 구분한 것도 프리즈 아트페어 성공의 주 요소였다. 런던의 성공을 발판으로 2012년 뉴욕으로 진출할 때에도 현대 미술을 다루는 ‘프리즈 런던’은 뉴욕 크리스티 및 소더비 양대 경매사의 메이저 경매에 맞춰 5월에 열고, 고미술을 다루는 ‘프리즈 마스터스’는 10월에 런던과 동시에 개최하는 시간 차 공략 작전을 구사했다. 리젠트 파크의 드넓은 잔디밭에는 조각 공원 형태의 ‘프리즈 스컬프처’가 전시됐다. 프리즈는 뉴욕에서 이룬 성공을 발판으로 2019년 2월 로스앤젤레스에도 진출했다.
프리즈의 미국 진출로 뜻밖의 피해를 보는 쪽도 생겼다. 매년 3월에 열리던 뉴욕의 아모리쇼 아트페어다. 1994년 시작된 이름 있는 아트페어지만, 3월 두바이 아트페어와 아트바젤 홍콩에 밀리고 있던 터에 바로 두 달 뒤인 5월에 프리즈 아트페어마저 상륙하자 좋은 갤러리와 컬렉터를 확보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승자 독식의 미술계에선 한정된 갤러리와 작가의 작품이 압도적 인기를 끈다. 어떤 갤러리도 여러 아트페어 중 가장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곳에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 컬렉터들 역시 1년에 한 번 뉴욕을 간다면, 이제 아모리쇼가 있는 3월이 아닌 크리스티와 소더비 메이저 경매가 열리는 5월을 선택해 가는 길에 프리즈까지 관람하는 쪽을 택한다.
반면 아트페어 유치로 살아난 도시도 있다. 2002년부터 아트바젤을 개최한 마이애미다. 마이애미는 아트바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디자인’을 중심으로 도시를 특화했다. 마이애미는 한적한 휴양도시에서 유수의 미술관이 세워진 세련된 도시로 변신해 부동산 특수도 누리고 있다.
1988년 런던의 허름한 창고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젊은 작가들은 30여 년 뒤 한국에서 자신들의 전시와 같은 ‘프리즈’라는 이름의 아트페어가 열릴 것을 상상했을까? 아트바젤이나 프리즈 같은 세계적 아트페어가 한국을 주목하는 것은 한국 미술 시장의 빠른 성장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모든 면에서 빠른 한국은 미술품 수집가층도 빠르게 커지는 중이며, 정보 전달도 인터넷 속도만큼이나 빠르다. 아모리쇼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인가, 아니면 마이애미처럼 시너지를 낼 것인가. 선택 기로에서 키아프는 빠르게 프리즈와 동시 개최하기를 선택했다. 그 효과가 벌써 시작된 것 같다. 세계가 국경이 없는 듯 소통하는 글로벌 시대, 지금의 선택을 좋은 결과로 만들어내는 것은 이제 한국 미술계와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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