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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문화 . 시사

AI가 되어 불로장생한다면… 축복일까 저주일까

by 주해 2023. 3. 1.

AI가 되어 불로장생한다면… 축복일까 저주일까

 

AI가 되어 불로장생한다면… 축복일까 저주일까

AI가 되어 불로장생한다면 축복일까 저주일까 SF 문학상 휩쓴 중국계 美작가 켄 리우 단편집 신들은 아쿠타가와상 받은 日대표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 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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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문학상 휩쓴 중국계 美작가 켄 리우 단편집 ‘신들은…’
아쿠타가와상 받은 日대표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 ‘본심’

인간의 지적 작용을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다면 마음이나 의식도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을 대신하기 시작한 인공지능(AI)은 죽음이라는 절대적 명제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인공지능(AI) 시대에 죽음과 삶, 인간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담은 소설 두 편이 최근 국내에서 출간됐다. 네뷸러상을 비롯해 SF 분야 문학상을 휩쓴 중국계 미국인 작가 켄 리우의 단편집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황금가지)와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일본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장편 ‘본심’(현대문학). 육신의 죽음 이후에도 인간이 인공지능의 형태로 존재하는 디지털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시대를 상상한 작품들이다.

‘신들은…’에 수록된 단편은 총 11편. 이 중 책과 마찬가지로 제목에 신(神)이 등장하는 ‘포스트휴먼 3부작’이 중심을 이룬다. 여기서 신은 인간 두뇌의 작용을 스캔해 코드화한 뒤 사후(死後)에 소프트웨어 형태로 구현된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신이 구름 위의 전능한 존재였던 것처럼, 인공지능 신 역시 클라우드(구름을 뜻하는 영단어로, 데이터가 저장된 가상 공간을 가리킴)에 존재하며 그 능력은 인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마이크로소프트(MS) 등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던 작가의 기술적 정교함이 돋보이는 설정이다.

주인공 매디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빠가 이런 ‘신’으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천재적 프로그래머였던 아빠의 능력을 인공지능 형태로 보존한 결과다. 그 과정에서 아빠의 인격도 부분적으로 재현된다. 매디는 육신이 없는 아빠와 유대감을 느끼면서 아빠가 네트워크상의 다른 ‘신’들과 벌이는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전자 신호의 움직임일 뿐인 ‘신’들의 싸움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다. 미사일 버튼을 누르자 인간 사이의 전쟁이 벌어지고 수백만의 사망자와 이재민이 발생한다. 섬뜩할 정도로 고도화한 AI 앞에서 오늘의 인간들이 우려하는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신’들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다. 인간은 자신이 불러낸 램프의 요정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소년처럼 속수무책이지만 가까스로 핵 겨울을 모면한다. 작가는 결국 ‘천천히 무너져가는 세상’을 다시 바로잡을 책무가 인간에게 있음을 암시한다. “세상은 우리가 허락하는 만큼만 추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켄 리우, 히라노 게이치로.

‘본심’에는 죽은 사람을 가상현실로 재현하는 서비스가 등장한다. 이미 일반화된 딥페이크(인공지능 영상 합성)가 고도화된 형태여서 현실처럼 읽힌다. 지금의 딥페이크는 사망한 가수·배우를 화면에 등장시키고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정도지만, 앞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저장·처리할 수 있는 반도체·프로세서가 마련되면 “한 사람의 사상까지 학습하고 실제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AI도 만들 수 있을 것”(KAIST 김정호 교수)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자유사’(자발적 안락사)가 합법화된 2040년대의 일본. 주인공 사쿠야와 단둘이 살던 어머니가 돌연 자유사를 선언한다. 정작 어머니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사쿠야는 어머니를 가상현실로 복원한다. 대화를 나눌수록 학습을 통해 더 실제에 가까워지는 가상의 어머니에게서 자유사를 원했던 진짜 어머니의 본심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들은…’이 사회적 차원에서 인간의 역할에 주목한다면, ‘본심’은 개인의 차원에서 AI가 끝내 구현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것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묻는다. 가상 인간의 눈빛에 서린 ‘슬픔의 감정’이 사쿠야에게 전해져올 때 그 안에 마음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자신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한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사쿠야의 어머니가 가상현실 속 자신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자유사가 허용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가난, 질병, 노쇠뿐 아니라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만족감에서 자유사를 선택한다. 작가는 자유사가 만연하는 이유로 인공지능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불길한 의문을 떨치기 어렵다. 죽은 뒤에 언제든 인공지능으로 부활할 수 있다면 죽음은 점점 더 아무것도 아닌 선택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