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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문화 . 시사

佛의 우크라 파병 발언 뒤엔 러시아와의 우라늄 쟁탈전이 숨어 있다

by 주해 2024. 4. 4.

佛의 우크라 파병 발언 뒤엔 러시아와의 우라늄 쟁탈전이 숨어 있다 

 

[최준영의 Energy 지정학] 佛의 우크라 파병 발언 뒤엔 러시아와의 우라늄 쟁탈전이 숨어 있다

최준영의 Energy 지정학 佛의 우크라 파병 발언 뒤엔 러시아와의 우라늄 쟁탈전이 숨어 있다

www.chosun.com

프랑스 카테농 원전 /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 2월 26일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파리에서 개최한 ‘우크라이나 지원 국제회의’에서 유럽연합 국가들의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을 언급해 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미국, 독일 등의 강력한 부인으로 파병 논란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프랑스가 2000명 파병을 준비하고 있다고 러시아 정보 관계자가 주장하는 등 파장은 계속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파병 발언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되지만, 작년 7월 쿠데타가 발생한 아프리카의 니제르를 둘러싼 프랑스와 러시아의 긴장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쿠데타 직후 수도 니아메에서는 수천 명이 러시아 국기를 흔들면서 프랑스 대사관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했다. 니제르는 아프리카 서부의 내륙국으로 1인당 GDP가 561달러에 불과한 극빈국이지만 프랑스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곳에 대량 매장된 우라늄 때문이다. 쿠데타 직후 니제르가 프랑스와 기타 EU 국가에 우라늄 수출을 중단했으며, 여기에 러시아가 관여하고 있다는 허위 정보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면서 이를 둘러싼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프랑스는 전체 전력의 70%를 원자력발전으로 생산하는 국가이다. 원자력발전은 당연히 우라늄이 다량 필요하다. 원자로 총 56기를 가동하기 위해서 프랑스는 연평균 약 8000톤의 천연우라늄이 필요하다. 프랑스는 1948년부터 2001년까지 국내에서 총 21만톤의 우라늄을 채굴했지만 경제성 하락으로 채굴이 중단된 이후 현재는 전적으로 해외 공급에 의존하고 있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1년 동안 프랑스가 도입한 우라늄 8만8200톤은 주로 카자흐스탄(27%), 니제르(20%), 우즈베키스탄(19%)에서 생산했다. 눈에 띄는 것은 니제르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니제르는 아프리카에서 나미비아에 이어 둘째로 많은 우라늄을 생산하고 있으며, 40년 넘게 프랑스의 주요 우라늄 공급국 역할을 해왔다. 니제르의 우라늄은 1957년 처음 발견되었으며, 1971년 상업적 생산을 시작했다. 니제르의 우라늄 생산량은 세계 전체 생산량의 5%수준이지만 EU에서 니제르산 우라늄이 차지하는 비율은 24%로 매우 높다. 니제르는 EU에 우라늄을 수출하는 국가 중 1위다. 세계 최대 우라늄 생산국인 카자흐스탄을 제쳤다. 빈곤국인 니제르에서 우라늄 수출은 전체 수출액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지분 90%를 보유한 오라노(Orano·옛 Areva)는 니제르 광산을 세 곳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 곳인 이모우라렌 광산은 아프리카 최대 우라늄 매장지이자 세계 2위 매장량(약 17만9000톤)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 광산은 지난 2009년 우리나라의 한전과 한수원이 지분 10%를 인수하면서 우리와 인연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니제르는 독립 직후부터 프랑스에 우라늄을 지속적으로 대량 공급해 왔지만 니제르 국민들은 불만이 많다. 프랑스와 체결한 계약이 불공정할 뿐 아니라 광산 주변 지역에 환경오염과 건강 피해를 일으키고 있지만 제대로 된 대응이나 보상이 없다는 것이다. 2010년 발간된 국제 NGO 옥스팜의 보고서를 통해 오라노를 비롯한 프랑스 기업들이 2010년 니제르에서 총 35억유로 상당 우라늄을 채굴했지만 각종 면세 혜택 등으로 실제 니제르에 간 금액은 4억5900만유로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니제르의 우라늄 광산은 테러 집단인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의 주요 공격 목표가 되었다.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프랑스군은 10년 동안 대테러 작전 및 안정화 작업을 진행했지만 목표 달성에 실패하였다. 이 과정에서 반 프랑스 정서는 니제르뿐 아니라 인접한 말리, 부르키나파소 등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프랑스군 이외에 미군도 니제르와 군사협정을 체결하고 대규모 공항을 건설하여 드론을 중심으로 한 대테러 작전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쿠데타 이후 니제르 정부는 러시아와 협력 강화를 표방하면서 미국과 맺은 군사협정을 일방적으로 종료해 미군 역시 철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반면 러시아는 용병 단체 바그너 그룹 등을 통한 지원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면서 상황을 어느 정도 안정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 등을 강요할 뿐 제대로 된 경제 지원에 소홀한 서방 국가들과 달리 러시아는 현지 정서를 이해하고 아프리카가 필요한 것을 제공해준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러시아에 대한 호감은 상승하고 있다.

중국도 조용히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국가원자력공사(CNNC)의 우라늄 광산 투자와 더불어 페트로차이나의 석유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내륙국인 니제르에서 생산하는 원유를 수출하기 위해 인접국인 베냉을 통과하는 2000km 송유관 건설도 40억달러를 투자해 진행하고 있다.

현재 니제르 정부는 신규 우라늄 광산 채굴 허가 발급 절차를 중단하였으며 프랑스 업체들이 보유한 기존 채굴 허가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리, 부르키나파소는 바그너 그룹과 같은 러시아 민간 군사 기업에 광산 채굴권을 부여했는데, 만약 니제르도 우라늄 탐사 및 채굴 등에 대한 권한을 러시아 업체에 부여할 경우 프랑스와 러시아의 긴장은 한 단계 더 높아질 수 있다. 최근 프랑스는 니제르 우라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몽골 및 카자흐스탄과 협력을 강화하려 나서고 있지만 양국 모두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 및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국가들에 대한 에너지 자원 의존 확대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석유 없지만 아이디어는 있다”… 佛, 1973년 오일 쇼크 뒤 원전 비중 급격히 늘려

1970년대 초반까지 프랑스 전력 생산에서 원자력 비율은 8%에 불과했다. 전체 전력 생산의 65%를 석유 화력발전에 의존하던 프랑스에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에 따른 오일쇼크는 큰 위기감을 불러왔다.

이런 상황에서 1974년 3월 6일 피에르 메스메르 총리는 1000MW급 원자력발전소 13기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프랑스에 석유는 없지만 아이디어는 있다’는 구호로 요약되는 일명 메스메르 계획(Messmer Plan)의 시작이었다. 메스메르 계획은 1985년까지 원자력발전소 80기를 우선 건설하고 2000년까지 170기에 이르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한다는 야심 찬 내용이었다. 프랑스는 계획에 따라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나서 1980년대 후반까지 54기를 건설했고, 전력 생산에서 수입 화석연료를 대체한다는 목표를 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표준화된 원자로의 대량 건설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 프랑스 업체들은 이후 원자력 산업계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단기간에 집중 건설된 원자력발전소의 노후화에 따른 문제가 2020년대 들어 빈발하면서 대규모 가동 중단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2015년 제정한 ‘녹색 성장을 위한 에너지전환법’에 따라 당초 2025년까지 원자력발전 비율을 50%로 줄이고자 하였지만 2019년에 2035년으로 연기했다. 최근에는 새 원전 건설과 기존 원자력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병행함으로써 미래에도 계속 높은 원자력발전 비율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