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미술/서양 미술사

말레비치와 타틀린… 러시아 출신으로 잘못 알려진 우크라 화가들

by 주해 2022. 12. 22.

2022-03-07 22:26:42

 

[아트 인사이트] 말레비치와 타틀린… 러시아 출신으로 잘못 알려진 우크라 화가들 

 

[아트 인사이트] 말레비치와 타틀린… 러시아 출신으로 잘못 알려진 우크라 화가들

아트 인사이트 말레비치와 타틀린 러시아 출신으로 잘못 알려진 우크라 화가들 추상 미술 말레비치, 스탈린 시대 탄압받았지만 서방서 재평가 아방가르드 운동 타틀린의 실험 정신, 후대 작가

www.chosun.com

 

추상 미술 말레비치, 스탈린 시대 탄압받았지만 서방서 재평가
‘아방가르드 운동’ 타틀린의 실험 정신, 후대 작가에 큰 영향
시대에 앞선 전위 예술, 우크라 국민의 자유 수호 정신과 통해

우크라이나의 용감한 항전이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가슴 벅찬 뉴스를 보며 몇몇 우크라이나 작가가 떠올랐다. 대부분 러시아 작가인 줄 알지만 알고 보면 우크라이나 출신 작가다. 첫째는 단연 카지미르 말레비치(1879~1935)다. 마침 그의 대표 작품을 모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 전시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어 오랜만에 그의 작품을 생생하게 본 덕분이기도 하다. 전시회의 제목처럼 말레비치는 일반적으로 러시아 예술가로 여겨지지만 그의 고향은 항전 중인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키예프)다.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사각형이나 원형 등 단순한 형태를 회화의 가장 순수한 요소로 여기는 ‘절대주의’ 창시자로 꼽힌다. 위쪽 그림은 ‘들판의 소녀들’(1928~1929)로 인물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했다. 아래 왼쪽 그림은 1914년 작품 ‘모스크바의 영국인’으로 물고기, 사다리, 초, 나무 수저 등 다양한 물체가 담겼고 동서양과 도농간 대비를 상징하고 있다. 아래 가운데 사진은 블라디미르 타틀린의 대표작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 아래 오른쪽은 말레비치의 1910년 작품 전시회 사진이다./게티이미지코리아

당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제국 치하의 한 행정구역이었고, 그가 고향을 떠나 러시아 제국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니 그를 러시아 예술가로 소개하는 것도 무리는 없다. 그러나 말레비치의 활동에서 끝까지 항전하겠다고 선언한 우크라이나의 국민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

원과 사각형만을 사용하는 기하학적 추상은 말레비치의 대표작이다. 인물이나 풍경 등 현실 세계의 무언가를 재현하거나 연상시키지 않고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 된다는 ‘절대주의’ 이론이다. 부르주아를 위한 초상화나 장식으로 전락한, 어떤 목적에 봉사하는 예술이 아닌 현대적인 그림들은 처음에는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정부의 찬사를 받았지만,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적 현대미술은 스탈린 시대를 맞이하자 곧 비난 대상이 되었다. 추상화는 금지되었고, 말레비치는 교수직을 박탈당한 채 정부 지침대로 일하는 농부와 노동자를 사실적으로 묘사해야 했다.

흥미로운 반전은 1935년 57세로 숨을 거둔 말레비치의 장례식에서 일어났다. 암으로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 수 있었던 작가는 장례식을 준비했다. 자기 작품처럼 관을 사각형으로 만들었고, 대표작인 검은 사각형 그림을 자기 주검 위에 걸도록 지시했다. 그 옆에는 사실적 재현 기법으로 그린 자화상을 걸었지만, 얼굴 아래 오른쪽 하단에는 검은 사각형을 작게 넣어 사인을 대신했다. 비록 스탈린 정부의 명령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추상을 놓을 수 없었던 작가의 소심한 반항이 새겨진 ‘웃픈’ 장례식이었다. 그가 떠난 후 작품은 폐기될 위기에 처했지만, 큐레이터들이 그의 작품을 미술관 수장고에 몰래 숨겨놓아 지금까지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작품이 남은 덕분에 그의 활동은 서방으로 알려질 수 있었다. 미국 중심으로 미술사를 쓸 때는 외면당했지만, 냉전 시대가 지나자 재평가를 받고 있다.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2014년 그의 회고전을 기획하며 영국에서 활동 중인 유명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해석을 더했다. 그녀는 말레비치에 대한 연구로 졸업논문을 쓸 정도로 큰 관심을 가져왔고, 그의 추상화를 자신의 건축에 적용했다. 말레비치의 예술이 화가뿐 아니라 건축가에게도 큰 영향을 준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디드는 한국에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진 바로 그 건축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