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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천경자 작품관

천경자(1924~2015)-탱고가 흐르는 황혼-46.0☓41.5cm - color on paper - 1978년

by 주해 2022. 11. 19.

2019-06-14 23:40:28

 

 

LITERATURE

Department Store, Shinsegae,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 신세계백화점 79주년 기념展: 2009, p.31.

Chun KyungJa, CHUN KYUNG JA: 2007, pl.103.

Random House Joongang, 천경자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2006, p.22.

Sejong Books, 천경자: 1995, p.79.

JoongAng Ilbo, 季刊美術 22號 (1982·여름): 1986, cover page.

 

작품설명

여인의 애절한 정한情恨이 짙게 묻어나는 천경자의 작품세계는 작가 자신의 삶과 연계하여 몇 차례의 변모를 보였다. 그 과정은 크게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 지을 수 있는데, 일본 유학시절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하며 미술계에 데뷔했던 1942년부터 1959년 개인전 전까지를 전기로, 부산소레유 다방에서의 개인전 및 옥인동 정착 후 세계여행을 시작하는 1969년까지를 중기로, 이후1970년 서교동 시절부터를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대체적으로 전기와 중기의 작품들은 작가개인의 체험에서 비롯된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에 대한 내적 갈등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다. 전기에는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속으로 입선하며 화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으나 해방과분단의 소용돌이 속에서 집안의 몰락, 혼인 실패, 아버지의 별세, 여동생과의 영원한 이별 등을겪으며 불행했던 시대의 한恨과 자신의 운명에 대한 고뇌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해방 후 광주에서 지내다 홍익대학교 전임강사가 되어 서울에 올라와 셋방을 전전하다 마침내 옥인동에 정착하면서 3평 남짓의 제대로 된 화실을 가지면서 작가로서 비교적 안정되고 행복한 시절을 맞이하게 됨으로써 화풍의 변모를 보여주었다.

중기로 접어드는 1959년, 부산 소레유 다방에서 선보였던 개인전부터 이전의 사실적인 화풍이 점차 약화되는 대신 초현실적인 화면에 시적인 이미지들이 환상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고 이러한 경향은 이후 작품에도 지속되어 천경자만의 독특한 화풍을 형성하는데 원초가 되었다. 1970년, 천경자는 해외 스케치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옥인동에서 서교동으로 집을 옮기고 새로운 도약과 변화를 모색했다. 외부 자연에 존재하는 것들을 통해 자신의 꿈과 낭만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지면서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현실을 떨쳐버리기 위해 많은 곳을 찾아 다녔고, 그의 영원한 테마인 ‘여인’을 본격적으로 등장시키며 자신의환상을 펼쳤다. 여인은 초반에는 주로 작가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으로 그려지다가 자신의 회고적 의미를 강하게 담아냈고, 이국異國의 여인들에게서도 자신과 감성과 동질의 것을 찾게 되면서초월적인 여인상으로 발전시켰다.

출품작 두 점은 시기상 후기에 속한다. 후기의 작품들은 1980년대 중반을 전후로 다른 양상을갖는데 대표적인 것이 채색방식이다. 물감을 엷게 풀어 반복적으로 쌓아 올리던 것에서 나아가높은 농도의 물감 사용을 보인다. 이로써 화폭의 분위기는 서정에서 직관으로 이행된다. 담배를태우고 있는 여인과 다양한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모습이 담긴 출품작들은 모두 1978년에제작되어 서정적 분위기가 짙게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린 후 색을 올리고 다시 마르기를 기다렸다 또 올려야 해 인고를 필요로 하는 만큼 켜켜이 덮여나간 화면은 그시간만큼의 깊이를 갖는다.

천경자는 197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회고 성격이 짙은 작품들을 제작하며 내면세계에 초점을맞추었다. 이전처럼 숙명에 맞서기보다는 찬란한 고독으로 감내하는 관조를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적 요소가 배가되며, 이러한 경향은 출품작(Lot.41) <탱고가 흐르는 황혼黃昏>에서 두드러진다.담배를 입에 문 여성의 옆모습을 두 송이의 장미와 담배연기로 묘사한 이 작품은 짙은 환상성과담대한 구성이 특징이다. 천경자의 작품에 있어 여인과 함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꽃인 두 송이의 장미는 푸른색과 노란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옷깃사이에 간직한 장미는 여인의 손끝과, 허공을 맴도는 장미는 여인의 입술과 동색을 이루어 남성과 여성, 이성과 감성 등의 이중적 의미를 연상하게 한다.

특히, ‘한恨은 보랏빛’이라 말하던 작가의 말과 연관하여 보면 가슴에 품고 있는 푸른 장미의 의미가 부각된다. 옷과 같은 색을 가진 기다란 담배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는 노란 장미를 휘감아 돌다가 여인의 뒤편으로 사라진다. 담배연기의 형태와 단정하게 말아 올린 여인의 머리 굴곡은 뱀의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가 뱀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말부터로 1950년대 초반에는 화사花巳를 즐겨 그렸는데 커다란 흑사黑巳와 화사들이 엉긴 <향미사香美蛇>를 내놓은 1969년 이래 묘사하지 않다가 이즈음 다시 소재로 삼아졌기 때문이다. 뱀이 여인의 머리를 휘감기도 하고 꽃들이 어우러진 곳에서 똬리를 틀고 있기도 하는데 출품작에서는 여인의 머리와담배연기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소재 하나하나가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 채 내면세계를 은유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이 작품은 네 마리의 뱀을 화관처럼 머리에 쓰고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는1977년작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와는 또 다른 관점의 자화상으로 해석된다.“나를 달래준 것은 오로지 한 편의 슬픈 영화요, 한 개비의 담배였다.”항상 작품 제작을 우선에 두고 매달렸지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 새로운작품만으로 전시를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던 천경자는 출품작을 제작한 해 가을, 현대화랑에서열아홉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원래 1977년 10월에 열 예정이었지만 작품 제작이 지연되어 1978년 4월로 미루었다가 이마저도 작품이 충분치 않아 다시 9월로 연기하여 개최했다고 한다. 이 전시에는 출품작 <탱고가 흐르는 황혼>을 비롯해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한恨>, <고孤>, <윤삼월>, <아열대>, <초원>, <별에서 온 여자> 등 20여 점이 전시되었다. 출품작은 계간미술 1982년 여름호 표지를 장식했으며, 2006년 3월,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 전시를 기념해 작가의 뜻에따라 대표작 14점을 선별하여 제작된 한정 판화 모음집에 포함된 작품이기도 하다.

화가 천경자는가까이 갈 수도 없고멀리할 수도 없다매일 만나다시피 했던명동 시절이나이십 년 넘게만나지 못하는 지금이나거리는 멀어지지도가까워지지도 않았다대담한 의상 걸친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허기도 탐욕도 아닌원색을 느낀다어딘지 나른해 뵈지만분명하지 않을 때는 없었고그의 언어를시적이라 한다면속된 표현아찔하게 감각적이다마음만큼 행동하는 그는들쑥날쑥매끄러운 사람들 속에서세월의 찬바람은더욱 매웠을 것이다꿈은 화폭에 있고시름은 담배에 있고용기 있는 자유주의자정직한 생애그러나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 朴景利, <千鏡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