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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한국 고미술

구운몽도 九雲夢圖-ink and color on silk -53.8☓126.6cm (eight-panel screen)

by 주해 2022. 11. 21.

2019-12-11 22:01:27

 

 

구운몽九雲夢은 1679년 조선 숙종 때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이 쓴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고전 소설이다.

이재李縡의 『삼관기三官記』에 의하면 효성이 지극했던 김만중이 모친을 위해 하루 사이 지었다고 전하며, 당시 유배 중이던 자신의 처지를 비유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소설은 국문과한문본은 물론, 그림으로도 그려져 궁중장식화, 세화, 민화, 자수에 이르기까지 대중적이었다.구운몽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육관대사六觀大師의 제자였던 성진性眞은 8선녀를 희롱한 죄로 인간계에 유배돼 양소유楊少游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관직에 나아가 여러 난을 평정하고 부마에까지 이른 그는 과거 8선녀의 후신인 8명의 여인을 차례로 만나 아내 삼고 영화를 누리며 살다가 말년에우연히 노승의 설법을 듣고 인생무상의 덧없음을 느낀다. 그리고 함께 불법을 따르려는 순간, 잠에서 깨어나 이 모든 것이 허망한 꿈, 즉 일장춘몽이었음을 깨닫고 다시 성진의 모습으로 돌아와 불교에 귀의한다는 반전의 결말도 담고 있다.연구 논문에 따르면 현존하는 구운몽도는 30여 점으로, 이 중 절반 이상이 병풍 형태로 전한다. 이들은 낙질을 포함하나 본래 8폭 구성이며, 구운몽의 여러 장면 중 주로 8선녀를 주제로 한 남녀 상봉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출품작 역시 총 여덟 폭으로 주로 만남의 장면을 담았는데, 여타 작품들이 40센티 남짓한 화면에그려진 것과 비교해보면 광폭에 제작되었다.

또한 편파구도에 주요 장면을 부각시키고 세밀한 필력과 채색을 더한 것으로 보아 별격의 궁중화임을 알 수 있다.진채봉과의 만남양소유의 탄생에 이어 소설에서 두 번째 주제에 해당하는 진채봉과의 만남은 세속에서의 부귀영화가 시작되는장면이다. 진채봉은 팔선녀의 후신 중 양소유가 처음 대면한 인물로, 둘은 버드나무 숲에서 시를 읊조리고 감상에 빠져 있는 가운데 마주쳤다. 주로 서로 마주한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반해 이 작품에는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두고 시동이 애틋한 편지를 대신 전하는 장면으로 묘사한 점이 특징이다. 혼인을 약속한 이들은 훗날 진채봉의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리며 헤어지게 되는데, 저 멀리서아득히 바라보는 진채봉의 모습과 막 붓을 내려 놓고 답시를 건네는 양소유의 표정에서 그리움이 묻어난다. 또한만남의 배경이 되었던 버드나무도 화면 곳곳에 배치해 원작에 빗대 충실히 묘사했음을 알 수 있다.계섬월과의 만남계섬월은 진채봉과 이별 후 양소유가 낙양의 한 잔치에서만난 인물이다. 당시 연희에 참여한 이들은 시 겨루기를통해 이긴 사람이 미인 계섬월을 차지하기로 하는데, 양소유가 단번에 뛰어난 문장으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주로 두 사람이 마주한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반해 이작품에서는 양소유가 누대에 올라 아직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마중 나온 계섬월의 옆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가옥 안은 남녀노소 어울려 한껏 들뜬 분위기로, 양소유 뒤로 계섬월이 선 방향을 함께 흘끗 대는 인물도 보인다. 아득한 원산들을 뒤로 한 채 화려한 누각과 버드나무 사이로 사람들이 타고 온 말의 치장이 잔치의 규모를짐작케 하며, 막 움트는 하얀 꽃송이가 양소유와 계섬월사이 피어나는 온정을 대변하는 듯하다.정경패와의 만남기녀였던 계섬월은 양소유와의 만남을 뒤로한 채 그의 배필로 장안의 정경패를 추천한다. 당시 정경패는 일절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았는데, 그의 모친이 거문고 연주를 좋아한다는 정보를 얻은 양소유는 여자로 변장해 집안에출입하기 이른다. 어머니 최씨 부인에게 한껏 거문고 솜씨를 뽐내던 양소유는 정경패와의 만남을 청하고, 바로 이장면이 구운몽도의 한 폭으로 자리잡았다.

방에 들어서는 정경패나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음률을 듣는 그녀의모습이 주 도상인데 반해 작품에는 입구에 서 있는 뒷모습으로 그렸다. 이는 여장을 눈치챈 후 방을 나서는 장면으로, 양소유를 비롯한 최씨 부인과 시녀들까지 모두 그녀를 응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당혹감에 연주를 멈춘 채바라보는 양소유의 모습이 흥미롭다.가춘운과의 만남곧 과거에 급제한 양소유는 정경패와의 혼인을 앞두고,그녀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일화가 생긴다. 양소유의 여장에 속았던 정경패는 처녀가 외간 남자와 한 자리에 있었음을 수치스럽게 여겨, 자신의 몸종 가춘운을 선녀로 변장시킨 후 양소유와 만나게 했다. 그림에는 이 내막을 모르는 양소유가 시동을 이끌고 한껏 앞서 골짜기를 향해들어가는 모습이다. 화면 가득 험준한 산세와 연운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그 사이로 정경패의 별장과 빨래가재가 눈에 띈다. 이는 한창 일을 하던 가춘운의 시녀가 양소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를 알리러 막 뛰어들어간상황 임을 암시하는 도구이다. 가춘운은 양소유가 혼인전까지 흠모했던 여인으로, 정경패와의 혼사 후에도 첩으로 들여 그 인연을 이어갔다.적경홍과의 만남이후 양소유는 반역을 막기 위해 연나라로 향했다. 이곳에서 연왕의 항복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준마를 탄서생을 만나 길벗을 삼게 되는데, 이 인물이 다섯 번째 만남에 이르는 적경홍이다. 적진부터 남장을 하고 따라나선적경홍은 계섬월의 지인으로, 한때 양소유가 담벼락에서담소를 나누던 둘 사이를 의심하기도 했다.

이 장면도 구운몽도의 한 소재로 쓰이나 출품작에서는 세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막 성문을 나서는 양소유의 뒤로 굽이진길을 뒤따르는 적경홍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연나라의포로였던 적경홍이 양소유의 모습에 반해 연왕의 천리마를 훔쳐 달아났던 것이다. 우측 하단에는 고개를 조아린관료의 모습을 그림으로서 반란을 진압하고 당당히 나서는 양소유의 위엄 또한 강조했다.난양공주와의 만남다시 수도로 돌아온 양소유는 그 공을 인정 받아 임금으로부터 후한 상과 제후 직을 제안 받았다. 그러나 이를 거절하고 예부상서 겸 학림학사 자리에 올라 자주 궁에서숙직을 하던 중 왕의 여동생이자 여섯 번째 여인에 해당하는 난양공주 이소화와의 연이 닿게 된다. 어느 날 난양공주는 양소유가 부는 퉁소 소리를 듣고 화답했으며, 학두 마리가 음률에 맞춰 서로 노니는 모습을 보고 그가 배필 임을 확신했다. 그림을 살펴보면 전면의 화려한 궁을배경으로 난양공주가 자리했고 마당에는 학 한 마리가서 있다. 그 시선을 따라가보니 담 너머 학림원 창가에서퉁소를 부는 양소유의 모습과 막 날아드는 또 한 마리의학이 보인다. 퉁소와 학을 매개로 이어지는 둘의 첫 만남을 원작 그대로 충실히 담고 있는 셈이다.심요연과의 만남태후는 난양공주와의 혼인에 있어 적극적인 입장이었으나 양소유는 정혼자 정경패를 떠올리며 거절을 반복했다.이에 대노한 태후는 그를 옥에 가두었다가 티벳 정벌을위해 대원수로 임명, 전장에 출전시켰는데 여기서 만난 이가 심요연이다. 심요연은 본래 암살을 목적으로 군진에 잠입한 자객이었으나 이를 눈치 채고 기다리던 양소유의 호방한 모습에 반해 마음을 바꾸었다. 다른 폭에 비해 배경대부분이 여백으로, 어스름한 밤 분위기를 나타내는 보름달만이 덩그런하다. 양소유의 장막을 호위하는 병사들은모두 눈을 감은 채 잠들었으며, 장검을 쥔 심요연은 마치선녀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이다. 심요연을 기다리는 양소유와 그녀 사이에는 선을 두어 두 사람 간의 묘한긴장감과 인연을 표현했다.백능파와의 만남여전히 전장을 다니던 양소유는 반사곡이라는 곳에 이르러 물을 마신 병사들이 단체로 기력이 쇠해지는 등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묘책을 고심하던 중 깜빡 잠이 든사이 꿈에서 동자 두 명에 이끌려 화려한 말을 타고 용궁에 이른다. 여기서 용왕의 딸 백능파를 만나 남해태자로인해 곤궁에 빠져 있던 그녀를 구하게 되는데, 마지막 폭에 이 장면이 담겼다. 치장한 말 대신 청룡 두 마리가 이끄는 화려한 가마에 올라타 호위를 받으며 이동하는 양소유와 백능파가 상단에 자리했으며, 하단에는 넘실대는 물결 사이로 얼핏 용궁의 높은 첨대가 드러났다.

남해태자와의 결투 장면을 주로 하는 것과는 달리 양소유와 백능파를 주인공으로 부각시킨 점이 특징이며, 앞선 폭과 마찬가지로 배경은 간략화했다.살펴본 여덟 폭의 각 장면들은 소설 구운몽을 기반으로그 줄거리를 재구성해 주요 장면들을 꼽아냈다. 또한 각기 주인공과 의복은 물론 전각의 모양새와 기물들까지 원작에 충실한 모습으로, 세필의 촘촘한 묘사와 과하지 않은 채색이 도드라진다. 구운몽도는 처음 소설이 만들어진이후 궁중장식화로도 제작되었던 바, 이 작품은 화폭의크기나 채색 안료, 공필화법 등으로 보아 궁에서 전문 화원의 손길을 거친 수작 임을 짐작케 한다. 정확한 묘사의전각들, 많은 부분의 배경을 이루는 연운과 물결 표현, 산수에 드리워진 청록빛, 수지법 등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알려진 구운몽도와는 몇 가지 다른 형식의 구도를 취한 점과 그 필체로 보아 비교적 이른 시기의작품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구운몽도는 19-20세기에 산재해있어 보다 앞선 작품의 발굴이라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김은비, 「19세기 〈구운몽도〉 연구」(덕성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