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열 (金昌烈 : 1929~2021) : 물방울 (Waterdrops) : oil on hemp cloth : 161.5☓115.7cm : 1977년
by 주해2022. 12. 4.
2021-02-09 19:12:23
작품설명
김창열은 1970년대부터 그가 작고하기까지 일관되게 물방울을 그렸다. 1971년 형편이 어려워 파리근교 팔레조Palaiseau의 마구간에서 생활하던 시절, 캔버스를 재활용하기 위해 뒷면에 물을 뿌려 말라붙은 유화물감을 떼어내던 중 우연히 화폭에 맺힌 물방울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작품의소재로 삼기 시작했다. 김창열의 작업은 기하학적 형태를 기반으로 그 배열 사이 틈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점액질의 형상을 표현하던 작품 양식에서 점차 단순화된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마침내 무한한 시공 속에 존재하는 듯 화면에 떠 있는 물방울을 그린 1972년 《살롱 드메Salon de Mai》전의 <밤에일어난 일Événement de la nuit>로 전개됐다. 검푸른 바탕에 단 한 방울로 시작된 작품의 물방울은 이후 누른 마포 생지에 두세 방울, 때로는 떼지어 맺혀 표현됐다.출품작은 거친 마포 위 작가가 끊임없이 수놓은 영롱한 물방울이다. 다른 대상 없이 캔버스 위에오로지 빛을 받은 물방울과 그 그림자만 묘사되어 있다.
가까이서 본 작품의 표면은 흰 점과 약간의 붓 자국에 불과 하지만, 한 걸음 멀어져 작품 전체를 바라 보면 투명하고 맑은 물방울의 이미지가 된다. 여기에 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마포의 물성은 물방울의 생생함과 대비된다. 이 수많은 물방울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배어 나온 것인지 아님, 맺힌 것인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가 하는 호기심을 갖게 되지만 그림 속 물방울은 스며들거나 흐르지 않고 계속해서 영원히 존재한다.김창열의 물방울은 항상 그의 인생과 맞닿아 있었다. 첩첩산중 삼면이 물로 둘러 싸인 고향 맹산을 떠나온 그리움과 한국 전쟁과 해방을 겪으며 소중한 이들을 갑작스레 떠나보냈던 고통, 그리고서양 화단에서 예술가로서 활동하며 자신의 위치와 회화세계의 확립 과정을 거치며 느꼈던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그는 물방울에 녹여 없앴다.
스스로 밝혔듯, 물방울을 그리는 것은 일종의 죽은이들의 넋을 기리는 행위이자 그들의 영혼을 보호하는 정화의식이었다. 5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김창열의 회화는 시대에 따라 화풍의 변화가 있었지만, 물방울만큼은 한결같이 등장하며 일평생쉼 없이 캔버스 위에 옮겨 놓은 이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