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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전시 . 탐방 . 아트페어

남관 (1955-1990)의 추상회화 : 2019.11.6~11.30 - 갤러리현대

by 주해 2022. 11. 21.

2019-11-06 10:23:59

 

남관(1911~1990) - 피난민(1957년) 100호

 

남관의 추상회화 1955-1990

2019.11.6~11.30

본관

현대화랑은 <남관의 추상회화 1955-1990>전을 개최한다. 전시에는 작가가 파리로 건너간 1955년부터 작고한 1990년까지 제작한 시대별 주요 작품을 엄선해 선보인다.

남관(1911-1990)은 국제 미술의 중심지 파리에서 추상화가로 큰 성공을 거둔 독보적 존재다. 1955년 몽파르나스에 화실을 마련한 그는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수학하며 추상화 작업을 시작한다. 1956년 파리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현대국제조형예술전》에 참여하고, 1958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당대 파리 화단을 이끈 전위적 예술모임인 《살롱 드 메》에 초대받는다. 1966년에는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 파블로 피카소, 안토니 타피에스 등을 제치고 대상을 수상한다.

1950-60년대, ‘파리 시대’의 남관은 고대 유물에 영감을 받은 작품을 발표한다. 때 묻은 벽, 황폐한 뜰, 오래된 성이나 유적의 잔해처럼 보이는 아스라한 풍경이 캔버스에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회색이나 자색 계열의 물감을 사용해 마모되거나 녹슬고 부식한 표면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또한, 이 시기에 고대 상형문자와 한자를 떠올리는 형상을 도입하는데, 서체 모양으로 자른 종잇조각을 캔버스에 움직이며 화면을 구성하는 실험을 전개한다. 1970-80년대, ‘서울 시대’의 남관은 독특한 인간상과 색채를 탐구하며 자신만의 추상 언어를 완성한다. 남관 회화의 핵심적 조형 언어인 얼굴(마스크) 이미지가 등장하며, ‘파리 시대’ 작업의 어두운 화면은 청색을 중심으로 차츰 밝아진다. 이밖에 콜라주 방식을 역이용하여 화면에 붙인 재료를 떼어내 그 부분에 다시 색을 칠하는 데콜라주를 자유분방하게 구사한다.

“그림이란 삶의 축적이자 나의 인생”이라고 말한 남관. 그는 1990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남다른 열정으로 창작 활동에 정진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남관의 아름다운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고, 그 뛰어난 예술성을 다시 한번 널리 알린다.

 

http://news.zum.com/articles/56230688

 

글자인 듯 얼굴인 듯… 환기와 어깨 겨룬 '문자추상 거장'

 

[남관 추상회화展]

내년 30주기 앞당겨 대표작 선봬

콜라주·데콜라주 등 실험작 다양그림 '태고의 유물'(1964) 등을 보면 그가 고적(古跡)을 발굴하듯 그렸음을 알 수 있다. 그림은 폐허에 세워둔 묘비처럼 보이는데, 그 묘비명은 해독할 수 없다.

추상의 아득한 상형이 관람객을 맞는다. 화가 남관(1911~1990)의 내년 30주기를 앞당겨 시기별 대표작 60여 점을 선보이는 '남관의 추상회화' 전시가 서울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30일까지 열린다. 특히 갑골문(甲骨文) 등 고대 상형문자에서 길어올린 정신의 밀어를 그림으로 구현한 '문자추상'이 빛난다. 정확히 판독할 수 없는 아리송한 조형성이 매번 다른 의미를 조립한다. 이를테면 '원형질 공간'(1973)을 채운 건 국적 불명 기호이나, 한글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것은 '문명의 기원'이거나 '문명의 비원'처럼 보인다.

                  화실에서 작업 중인 생전의 남관. /현대화랑


동양의 발묵(潑墨), 물감 뿌리기, 신문지·은박지·천을 화면에 붙이는 콜라주 등 각종 화법 실험도 다채롭다. 덧댄 사물을 뗀 자리에 남은 공터를 다시 물감으로 채우는 데콜라주(décollage) 기법은 그림에 보석의 색과 함께 묘한 입체감을 부여한다. 남관의 외아들인 조각가 남윤(67)씨는 "2차원과 3차원을 겸비한 그림"이라며 "형태가 있는 듯 분명치 않고 깊이가 없는 듯 있어 공상을 자극한다"고 말했다.

 

문자를 찬찬히 살피면 이목구비가 발견된다. 얼굴로 나아가는 것이다. 추상에 가까운 '삐에로' 연작부터 '구각된 상'(1988)처럼 매우 구체적인 얼굴도 있다. 남관의 '얼굴'은 전쟁의 기억에서 왔다. 남관은 1973년 조선일보에 "벌판에 쓰러진 젊은 병사의 얼굴… 얼굴, 얼굴들을 나는 길 가다가 땅 위에 구르는 이끼 낀 돌 위에서도 보고 고궁의 퇴색한 돌담에서도 본다… 내가 그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얼굴"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유화 '황색의 반영'(1981). 글자인 듯 얼굴인 듯 알쏭달쏭한 추상이 옥이나 비취 같은 색감을 풍긴다. /현대화랑

흔히 '한국 1세대 추상화가'로 불린다. 1955년, 김환기(1913~1974)보다 1년 앞서 프랑스로 건너갔다. 부산 피란 시절 해군종군화가단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의 인연도 각별하다. 1951년 대한미술가협회 전시미술전람회 공모전에서 남관이 1등, 김환기가 2등을 했고, 이듬해 두 사람의 2인전이 부산 뉴서울다방에서 열렸다. 김환기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친구였던 시인 김광섭의 시에서 딴 제목인데, 남관의 두 번째 아내가 바로 김광섭의 딸 소설가 김진옥이다.

남관의 재발굴 시도와 더불어 내년 상반기 그의 고향 경북 청송에 남관생활문화센터가 문을 열 예정이다. 폐교로 방치된 옛터가 그의 이름을 빌려 다시 빛을 보는 것이다.

 

2019.11.30일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