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1 18:53:03
https://www.chosun.com/special/future100/fu_society/2020/09/11/CANMIINYEZHHVBGXMMKL37V4QU/
어제 헌법재판소 ‘위헌 제청’
헌법재판소/연합뉴스
‘내 재산 전부를 여자 친구 ○○○에게 주도록 한다.’
유서에 이렇게 남겼더라도 배우자와 자녀가 있다면 그대로 실현되기 어렵다. 민법상 ‘유류분(遺留分)’ 규정 때문이다. 이 민법 조항이 또 위헌 심판대에 올랐다. 재산 처분의 자유를 심하게 제약한다는 것이다.
부산지법 민사 2부(재판장 김태규)는 유류분 근거 조항인 민법 1112조 등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를 가려 달라고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고 10일 밝혔다. 2014년 사망한 박모씨는 아내와의 사이에 네 아들을 두고 있었는데 사망 직전 두 아들에게만 부동산을 증여했다. 나머지 자녀들이 이들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 소송을 냈다. 법대로라면 소송을 당한 이들은 유류분에 해당하는 부동산 지분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을 내 달라고 신청, 부산지법이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유류분 제도는 피상속인(고인)의 재산 처분권에 대한 본질적인 침해”라고 했다. 자기 재산은 자기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게 하는 게 재산권의 본질인데 유류분이 이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유류분 제도를 뒷받침하는 관념인 ‘가산(家産)’에 대한 전제가 달라졌다”고도 했다. 도입 당시인 1977년엔 인구 40%가 농민으로 가족이 함께 농사짓기 때문에 ‘가족재산’ 개념이 가능했고, 이를 유류분으로 분배했지만 지금은 각자 경제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유족의 생활 보장’도 지금과 맞지 않는다고 했다. 1977년 평균 수명은 62.3세였지만 2018년엔 82.7세로 늘었다. 자녀들도 경제적으로 독립한 지 한참 후에 사망하기 때문에 유류분을 남겨 부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본지 통화에서 “유언으로 효도한 자녀에게 재산을 몰아 주거나, 사회단체에 기부할 수 있는데 이런 의사를 무시하고 무조건 상속분의 절반 혹은 3분의 1을 상속인에 내놓게 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해 위헌 제청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헌재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판단한 적은 없다.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은 2008년 295건에서 2018년 1317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사망한 사람의 ‘재산처분의 자유’와 남은 후손들의 ‘상속에 대한 기대’가 충돌하는 것이다. 법조계는 위헌결정이 내려지면 상속법 전반에 대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류분(遺留分)
상속 재산 가운데 고인의 뜻과 관계 없이 상속인을 위하여 반드시 남겨두어야 할 일정 부분. 자녀와 배우자는 법정 상속 재산의 2분의 1, 부모와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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