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6 17:52:27
https://www.chosun.com/culture-life/art-gallery/2021/02/16/IT5PN3BOUNBKDD65LCZ4SSW3HA/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展… 국립현대미술관서 5월까지
①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글 쓰는 화가’김환기의‘자화상’(연도 미상). ②화가 구본웅이 시인 이상을 그린‘친구의 초상’(1935). ③1938년 조선일보 자매지‘여성’에 처음 발표된‘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백석 시·정현웅 삽화). ④박고석·장욱진·천경자 등 당대 최고 수준의 화가들에게 직접 표지 그림을 맡겨 실었던 월간‘현대문학’. /국립현대미술관·환기미술관
화문(畵文)은 글과 그림이 어울린 것이다. 시인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고 화가 정현웅은 주황 물감과 먹색의 선으로 시의 이미지를 시각화했다. 지면 위에 그려진 여인과 당나귀와 흰 눈이 활자의 서정을 배가한다. 조선일보 자매지 ‘여성’에 1938년 3월 처음 발표된 이 글과 그림은 미술과 문학이 하나일 때의 미적 성취를 보여준다.
목가시인 신석정의 첫 시집 ‘촛불’은 서양화가 김만형이 표지화(畵)를 그렸고, 김기림의 첫 시집 ‘기상도’는 건축가 겸 시인이었던 이상이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꾸몄다. 이태준의 첫 수필집 ‘무서록’은 화가 김용준이 표지 그림을 그리고 장정했다. 이태준이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영웅”이라고 했던 그 책은 내용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겉면을 할애하고 있다.
건축가 겸 시인 이상이 장정한 김기림의 첫 시집 '기상도'(왼쪽),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 표지 그림을 그린 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5월까지 열리는 전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는 문학과 미술이 별개가 아니었던 1920~1940년대의 혼종을 탐색한다. 전시장 1층에 실제 도서관처럼 수십 개의 책상과 종이 더미가 놓여있다. 장르 간 협업이 가장 활발했던 당대 신문 연재소설 코너다. 홍명희가 쓰고 구본웅이 그린 ‘임거정전’, 이기영이 쓰고 안석주가 그린 ‘고향’…. 조선일보에 연재된 한용운의 소설 ‘박명’은 삽화가 정현웅이 그렸다. “순영이는 옷을 입으려고 할 때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아니한 자기의 몸이 체경에 비치는 것을 보았다” 같은 야시시한 문장이 세련된 여체로 형상화됐다. 프랑스 화가 에드가르 드가의 ‘욕조’를 연상케 하는 대담한 구도다. 화단(畵壇)의 부재 속에서 이들은 인쇄 미술의 발전에 재능을 쏟아부었다. 미술관 측은 “의외로 20대의 호응이 뜨거워 한국 근대미술에 대한 젊은 세대의 열기를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 방탄소년단 리더 RM도 다녀갔다.
김용호 시인의 시를 읽고 화가 이중섭이 그 소회를 화폭에 옮긴 '너를 숨쉬고'(1950년대). /국립현대미술관
◇김광균은 왜 김환기의 그림을 샀나
문학과 미술은 서로의 후원자였다. 이를테면 이상은 다방 ‘제비’를 열어 친구였던 구본웅의 그림을 걸었고, 시인 김기림은 신문기자로서 구본웅의 전위적 전시에 대한 호평을 싣는 식이었다. 시인 김광균은 당대 문화계를 “두 개의 피리로 한 곡조를 불기”로 평했다. “시를 그림과 같이, 그림을 시와 같이” 여겼던 김광균은 최재덕 등 친구들의 그림을 소장하는 한편 그들의 미술사적 의미를 글로 써 부각했다. 건설회사를 운영하던 그의 부산 사무실 벽면에 김환기의 ‘달밤’이 걸린 사진도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오장환, 이중섭, 구상, 이쾌대, 진환, 서정주 등 시인·화가들의 관계망이 얽히고설킨다. 이들의 작품과 사료가 대거 전시장에 나왔다. 김인혜 학예연구관은 “이들은 함께 새로운 시대 즉 ‘현대’를 인식하고 이를 예술로 펼쳐보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정지용 시인의 글, 정종여 화가의 수묵화가 함께 만들어낸 시화(詩畵). /국립현대미술관
종교를 매개로 절대성의 세계를 추구한 시인 정지용과 화가 장발, 조선일보 사회부장과 신입 기자로 처음 만난 화가 이여성과 시인 김기림, 서로에게 시와 초상화를 헌정했던 백석과 정현웅 등의 이인행각(二人行脚)도 재미 요소다. 김환기와 시인 조병화의 일화도 웃음 짓게 한다. 김환기의 성북동 집에서 아침부터 거나하게 취한 두 사람. “열두시쯤 돼서 나는 견디기 어려워 ‘가야 하겠어’ 했더니 ‘그럼 이 방에서 그림 하나 가지고 가’ 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아직 이젤에 걸려있는 마르지 않은 그림을 손에 들고 ‘이곳에 싸인을’ 했더니 ‘싸인은 무슨 싸인, 그림을 보면 내 것이지’ 하며 그저 가지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지금 아들네 집에 걸려있습니다.” 해당 유화 ‘가을’도 전시장에 있다.
◇글 쓰는 화가들, 두 뮤즈
활자와 이미지는 결국 언어로 수렴한다. 단순함을 찬미한 장욱진, 산(山)의 화가 박고석, 솔직한 수필로 대중적 사랑을 누린 천경자 등 문인 화가의 글과 그림을 배치한 공간도 따로 마련됐다. 유명 화가들에게 직접 표지화를 청탁한 월간 ‘현대문학’ 원본 54권도 벽면에 전시해 ‘두 뮤즈’를 지닌 이들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를 통해 이들은 암울한 시대 속에서 기어이 빛을 발굴해냈다. 기하추상의 선구자 한묵은 1956년 3월 16일 자 조선일보에 짧은 글 ‘오늘은 작은 버러지 되어’를 썼다. “아아 눈부시게 밝은 세상이다. 저 하늘! 저 태양! 저 빛깔! 저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