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작은 그림의 큰 가치를 알았다
유영국 회화 ‘Work’(1967). 130×130cm. 절정기 작품으로, 이 시기 그는 과감한 원색 사용,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의 미묘하고 풍부한 변주를 통해 순수한 추상을 추구했다. /PKM갤러리
“서울 약수동 적산가옥에 살던 시절, 겨울에는 너무 추웠어요. 화실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안방 앞의 좁은 마루에서 소품을 그렸지요. 사람들은 대작을 그리던 아버지가 소품을 그리니까 소품 값은 싸겠거니 했는데, 아버지는 ‘가격을 그런 식으로 매기는 게 아니다’라면서 안 팔고 보관해왔어요.” (차녀 유자야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
추상화가 유영국
한국 1세대 추상화가 유영국(1916~2002) 사후 처음으로 미공개 소품이 한자리에서 공개됐다.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유영국의 자연: 내면의 시선으로’에 1950~80년대 유화 34점이 나왔다. 이 중 21점이 유족들이 한 번도 세상에 공개하지 않고 소장해온 작품. 대작 위주로 작업해온 유 작가가 생전에 간혹 그린 10호(53×45cm) 내외의 희귀 소품들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유영국의 세 자녀는 “각자 따로 갖고 있던 그림도 있어서 처음 본 작품이 꽤 있다”고 했다.
유영국, 'Work'(1967). 24.5×33.3 cm. /PKM갤러리
소품이지만 꽉 찬 밀도감과 색감을 뿜어낸다. 형·색·면으로 고향 울진의 높은 산과 깊은 바다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유영국의 독자적 작품 세계가 그대로 살아있다. 유자야 이사는 “작은 그림이라고 허투루 그리신 분이 아니다. 대작과 똑같이 완성도가 높은데 사람들은 5호 그림이면 100호 가격의 20분의 1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차남인 유건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전 이사는 “아버지 화실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이 그림은 뭐냐고 여쭤보면 늘 ‘네가 보는 대로 보면 된다’고 하셨다”며 “그림을 완성한 후에도 벽에 몇 개를 진열해 놓고 끊임없이 고치셨다. 마음에 드는 색깔과 형태가 나올 때까지 계속 고치셨던 게 기억난다”고 했다.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진 이사장과 유자야 이사, 유건 전 이사(왼쪽부터)가 아버지 유영국의 회화 ‘Work’(1974)를 바라보고 있다. /전기병 기자
유영국은 과묵한 화가였다. 아무도 추상화를 알아주지 않던 시절, 처음부터 추상을 시도한 이유도 “말이 없어 좋다”는 것이었다. 유자야 이사는 “아프신 것도 표현을 안했다. 돌아가신 뒤 보니까 아버지가 그림 그릴 때 쓰던 안경이 7개가 나왔는데, 마지막 안경의 렌즈 두께가 1cm가량 되더라. 그런데도 한 번도 눈이 불편하다는 얘기를 하신 적이 없다”고 했다. 장남인 유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건 직업정신이다. 늘 서서 팔레트를 들고 그림 그리시던 모습. 1992년인가, 거동이 불편하셔서 이제 좀 쉬었다 하시라고 했더니 ‘환쟁이가 그림 그리다 죽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고 소리를 치셨다”고 했다.
유영국 화백의 미공개 소품들이 걸린 전시장 전경. /PKM갤러리
유영국, 'Work'(1965). 40.5×50.7cm /PKM갤러리
최근 해외에서 ‘유영국의 재발견’이 시작됐다. 지난해 미국 뉴욕 페이스갤러리에서 첫 해외 개인전이 열렸고, 올해는 세계 최대 현대미술 축제인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유럽 첫 개인전이 진행 중이다. 베네치아의 유서 깊은 고택에서 열리는 전시는 ‘비엔날레 병행 전시 중 꼭 봐야 할 전시’로 꼽혔다. 현지 관람객들은 “마크 로스코 같다” “원색의 깊이와 풍부한 에너지가 놀랍다”며 오랫동안 그림 앞을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달 초 열린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에서는 유영국의 1973년 대작이 첫날 오전 20억원에 팔려 화제가 됐다.
유진 이사장은 “사실 아버지를 해외에 소개하는 게 많이 늦었다”며 “꾸준히 아버지의 예술을 알리고, 언젠가는 유영국미술관을 세우는 게 재단의 목표”라고 했다.
PKM갤러리에 전시된 유영국 회화 'Work'(1975). 유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똑같은 그림도 볼 때마다 다르게 느껴진다. 이 그림도 전에는 초록색 산이구나 생각했는데, 이번에 보니까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 콘 같다"며 웃었다. /PKM갤러리
'유영국의 자연: 내면의 시선으로' 전시장 전경. /PKM갤러리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진 이사장과 유자야 이사, 유건 전 이사(오른쪽부터)가 아버지 유영국의 회화 ‘Work’(1974) 옆에 서 있다. /전기병 기자
유영국의 유족들은 최근 제1회 서울시 유리지공예상 시상식 때도 뉴스에 올랐다. 유영국의 장녀는 현대 금속공예의 선구자인 고(故) 유리지(1945~2013) 작가. 유족들이 서울공예박물관에 작가의 작품 327점을 기증하고, 30년간의 공예상 운영 기금 9억원을 기부하면서 상이 제정됐다. 유자야 이사는 “예술가의 길에 철저했던 아버지는 그 시절 여성은 예술가와 결혼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술가의 길을 택한 언니는 공예와 결혼한 셈”이라며 “젊은 공예가를 양성하는 것이 큰 꿈이었던 언니를 대신해 상을 제정했다. 공예상과 연계된 전시를 통해 작가들이 더 많은 영감을 받고 의욕을 키워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PKM갤러리 전시는 10월 10일까지. 무료.
“소품이니까 싸겠지?”… 유영국, 안 팔았던 ‘작은 그림’ 최초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