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1년 어느 날, 러시아 황제 이반 4세가 황태자이자 아들 이반의 머리를 왕홀(王笏)로 후려쳤다. 임신한 며느리의 옷매무새가 단정치 못했다는 이유였다. 피를 쏟으며 쓰러진 자식을 보고서야 제정신이 든 이반 4세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울부짖었지만 이미 늦었다. 지은 죄 없이 무참히 죽임을 당한 아들은 마지막 순간에도 순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용서를 전한다. 늙고 어리석은 아비의 광기가 부른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피비린내가 진동할 듯 처참하게 그려낸 이는 일리야 레핀(Ilya Yefimovich Repin·1844~1930). 레핀은 19세기 러시아 최고의 화가라고 불리지만 출생지는 지금의 우크라이나다.
이 사건은 레핀이 그림을 그리기 300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아들 이반이 이반 4세의 거처에서 사망한 건 사실이나, 사인이 명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고, 아비 손에 맞아 죽었다는 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몇몇 소문 중 하나였지만, 레핀의 작품 이후로는 누구도 의심치 않는 역사적 사실이 됐다. 그렇다면 레핀은 왜 수백 년 전의 참사를 그때 들춰냈던 것일까.
1881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당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거리 한가운데서 폭탄 테러로 암살당했고, 그 후 테러범들 또한 도심에서 공개 처형됐다. 이 모두를 목도한 레핀의 머리에는 피 웅덩이에서 벌어지는 사투에 열광하던 에스파냐의 투우 관중이 떠올랐다. 왜 사람들은 끔찍하고도 혐오스러운 혈투에 매료되는지, 그리고 왜 이토록 잔인한 폭력이 경기장이 아닌 현실에서도 끝없이 일어나는지, 레핀은 질문을 던지며 흐릿했던 과거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되살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