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13 18:02:44
2016년은 대향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전
*** 덕수궁 국립 현대미술관 (2016.06.03~2016.10.03) ****
1999년 1월, 한 화가의 자화상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다.
쌍꺼풀진 눈에 콧수염이 멋진, 잘 생긴 얼굴이다. 화가가 요절한 지 43년 만에 나타난 자화상이다.
그때까지 이 화가의 제대로 된 자화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들은 놀랐다. 세밀한 연필 묘사는 마치 인물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우리 근대미술사에서 그만큼 실감나는 자화상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숙연해졌다.
자화상에 얽힌 일화가 너무나 드라마틱했기 때문이다.
43년만에 공개된 자화상
자화상의 주인공은 비운의 화가 이중섭(1916~1956)이다.
그는 6·25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한 뒤, 사무치는 그리움을 토하듯이 그림을 그린다. 단란한 가족상이 수많은 엽서와 은박지에 상감된다. 몇 개의 선으로 얼굴 특징만 잡아낸 그의 캐릭터가 재미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본격적인 자화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개된 자화상은 다르다. 거칠거나 단순화된 '이중섭 표' 그림과는 딴판이다.
탄탄한 묘사력에 힘입은 얼굴 생김이 아주 사실적이다. 종이는 변색되어 누렇다. 접어서 보관한 탓에 접지 자국마저 선명하다. 그 가운데 이중섭이 정면을 응시한다. 초췌한 표정. 안광이 빛난다. 사뭇 귀기마저 감돈다. 기막힌 일화 때문에 더 그렇다.
1955년의 일이다.
당시 이중섭은 일본인 부인과 두 아들을 일본 처갓집으로 보낸 뒤, 홀로 남은 처지였다.
대구에서 개최하려던 개인전이 무산된다. 따라서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가려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긴다. 밀항마저 실패한다. 자포자기의 심정. 여관(경복여관)에서 지낸다. 굶기를 밥 먹듯이 한다. 허기 때문에 누워 지낸 적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미쳤다는 소문이 돈다. 하루는 친구인 소설가 최태응(1998년 작고)에게 묻는다. "너도 내가 정신병자라고 생각 하냐?" 그는 즉석에서 거울을 놓고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미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기 얼굴을 직시하는 것이다. 잠시 후, 최태응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로 31, 세로 48.5㎝ 크기의 종이에 이중섭의 모습이 정말 생생했다. 후줄근한 작업복 차림(시인 구상네 가족 그림에서도 이중섭이 입고 있는 작업복이다!)에, 뒤로 벗겨 넘긴 부드러운 머리카락과 퀭한 눈, 광대뼈가 두드러진 폭 팬 양볼, 그리고 단정한 콧수염 아래 보일 듯 말 듯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 1년 후, 이중섭은 세상을 등진다.
묘비명 같은 붉은색 서명
자화상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눈동자와 약간 어긋난 좌우대칭이 강한 인상을 준다. 정작 눈길을 끄는 것은 얼굴이 아니다. 작가의 '서명(sign)'이다.
자화상의 오른쪽 하단을 보자. 'ㅈ ㅜ ㅇ ㅅㅓ ㅂ'이라고 또박또박 적혀 있다. 작업복 위에 명찰 같다. 이상하다. 서명이 색연필에다가 붉은 색이다. 얼굴을 연필로 그렸다면 서명도 연필로 끝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연필을 색연필로 바꾸었다. 왜 그랬을까? 우리나라에서 붉은색으로 이름을 쓰는 것은 금기가 아닌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감했기 때문일까? 공교롭게도 자화상은 죽기 1년 전에 그려졌다.
그래서였을까. '자화상'의 소장자인 이중섭의 조카(이영진)는 "삼촌의 자화상은 마치 유서(遺書) 같았다"고 한다. 1950년대 말, 최태응은 수소문 끝에 자신이 보관하던 자화상을 유족인 조카에게 건네준다. 자화상의 일화를 전해들은 조카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삼촌은 월남하기 전에 스탈린의 초상도, 심지어 할머니의 초상도 안 그린 사람이다. 그런 삼촌이 자화상을 남긴 것이다. 조카는 추측해본다. 삼촌이 당시에 이미 죽으려고 작정을 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 허기에, 절망까지 겹친 시절이었다. 게다가 서명마저 피눈물처럼 붉었다. 조카는 기구한 삼촌의 운명에 가슴이 저몄다. 그래서 삼촌의 유서 같은 자화상을 40여 년 동안 일절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한 장의 자화상으로 남은 사내
이 자화상은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을 연상케 한다. 정면을 응시하는 형형한 눈빛에서 선비의 지조가 느껴지는 자화상 말이다. 이중섭의 자화상도 강렬하기가 그것 못지않다. 이 역시 겉모습을 통해 비가시적인 정신까지 그리는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자화상이다. 그는 혈서를 쓰듯이 혼신을 다해 자신을 그렸을 것이다. 정신이상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눈과 코와 입을 그리고, 마침내 서명을 했다.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결국 자화상은 스스로 그린 '영정(影幀)'으로 남았다. 붉은 서명이 묘비명처럼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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