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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천경자 작품관

천경자(1924 ~ 2015) : 정靜 : color on paper : 162.5x85.0cm : 1955

by 주해 2023. 2. 16.

 

 

LITERATURE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 100인선집 9 천경자』(금성출판사, 1979), p.5, p.25, pl.14.
『선미술 [겨울·제4호]』(선미술사, 1979), p.14.
『천경자 화문집 꿈과 바람의 세계』((주)경미문화사, 1980), p.15.
『천경자 - 꿈과 정한의 세계』(삼성문화재단·호암미술관, 1995), p.8, pl.3.
『천경자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랜덤하우스중앙(주), 2006), p.198.
『CHUN KYUNG JA』(천경자, 2007), pl.3.
『천경자 평전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미술문화, 2016), p.69, pl.7.
『미완의 환상여행』((주)이봄, 2019), p.181.

수상
1955년 제 7회 대한미술협회전 대통령상
 
EXHIBITED
롯데백화점(서울), 《재현과 재연 : Spotlight》: 2022.9.1-10.27.
 
 

천경자는 형식적인 전통주의와 통속적인 기법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독창적인 소재와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해 현대적인 채색화를 형성했다. 대범하고도 독특한 색채감각과 형태의 명확한 묘사력을 통해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었다.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여자미술 전문학교에 입학한 천경자는 당시 인상주의 이후 입체파와 야수파가 화단을 풍미하던 일본 화단에서 섬세하고 고운 채색화의 화풍에 매료 당한다. 작가적 수양을 쌓으면서 영향을 받은 사실적이고 장식적인 색채 감각에서 시작해 자신만의 작품을 발전시켜 나갔다. 당시 작품은 주로 극사실적 표현 방법의 채색화로 특히 노인이 등장하는 인물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작가로서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것은 전문학교 재학 시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모델로 삼아 그린 <조부(1942)>와 <노부(1943)>로 조선미술 전람회에서 입선한 것이 계기가 됐다.특히 동경 유학을 마치고 귀국 후 시기는 독자적인 작가로서의 면모가 보이는 시기로 개성적인 소재의 도입과 독특한 화법이 등장하게 된다. 채색화를 한다는 사실만으로 왜색풍의 그림을 그린다며 평가 절하한 일도 있었으나 확신에 찬 작가 정신으로 작업에 열중해 그의 존재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 나갔다. 당시 국내 화단에서 강조하던 한국적인 화풍에 대해서 천경자는 과거에 집착하는 대신 현실을 대담하게 응시하는 새로운 리얼리즘 속에서 참다운 민족미술이 탄생할 수 있다고 보고 진취적인 동양화풍을 모색하게 된다.

천경자의 대표적인 소재라고 할 수 있는 여인상은 1950년대부터 제작됐는데, 이 시기에는 전통적인 여인상과 새로운 여성 이미지에 대한 모색이 함께 이루어졌다. 1954년에는 국제구락부에서 개최한 전시를 통해 작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아 홍익대학교의 전임강사로 임명돼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1955년에 그려진 이번 출품작은 고향을 뒤로하고 상경해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 때의 작품으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작품의 형식이나 표현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실적인 화풍은 점차 사라지고, 주황과 적색이 가득한 색채로 바뀌어가며 환상적이면서도 초현실적 화면이 만들어진다. 천경자의 대표적인 초기작인 이번 출품작은 천경자 여인상의 시작이 되는 중요한 작품으로 대한 미술협회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더욱 견고히 만들어준 작품이다. 작품의 크기 역시 세로가 1미터 62센티에 이르는 대작으로 전하고 있는 작품 중에서도 큰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출품작을 제작할 시기에 천경자는 전남일보 기자였던 김남중의 아이를 낳았지만 혼외로 낳은 자식이었고 그의 부인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까지 들리며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또한 종로구 사직동에 월세로 든 집에서 마저 돈도 없이 쫓겨나 경제적인 어려움도 겪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끈질긴 집념으로 작품을 그렸는데, 그녀의 수필에서는 울면서 작품을 완성해 대한미협전에 냈다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천경자의 심리를 반영한 듯 시든 해바라기가 가득한 밭에 검은 고양이를 안고 홀로 앉아 있는 계집아이를 그렸고 작품의 제목은 고요함을 뜻하는 <정靜>이라 붙였다. 출품작을 보면 배경과 인물의 배치가 대담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늘어뜨린 해바라기의 둥근 꽃 머리와 이를 받치고 있는 줄거리대, 그리고 보랏빛과 붉은빛이 감도는 배경이 전반적으로 신비로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해바라기들은 햇빛을 받지 못한 듯 큰 꽃을 지탱하기 버거운 모양으로 맥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고, 검은 고양이를 안고 있는 소녀는 소소한 인기척에 흠칫 놀라 불안하고 긴장된 얼굴로 옆을 응시한다. 주변을 둘러싼 시든 해바라기와 더불어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노란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하는 고양이는 화면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인물의 시선은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닌 화면 밖 어떤 곳을 바라보는 듯 이어져 화면 너머에 또 다른 미지의 존재가 서있을 것만 같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소녀처럼 보이는 인물은 아름답게 묘사되기보다는 짧은 머리와 미성숙한 몸으로 그렸다. 작품의 모델은 큰 딸 혜선으로 1998년 천경자가 미국으로 떠나 2015년 작고하기 전까지 함께 세월을 보내며 그녀의 마지막을 지켰던 인물이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큰 딸의 모습을 보고 그렸지만, 쓸쓸한 공간 속에 홀로 앉아 있는 소녀의 모습에는 작가가 당시 느꼈을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투영된 것처럼 보인다. 시들고 쓰러진 해바라기로 가득 채운 화면의 맨 아래로는 하얗게 피어오른 꽃 세 송이가 그려져 있는데, 작품에서 가장 밝은 색채로 칠했다. 화사한 색감으로 표현된 꽃송이들은 생명력을 가진 소재로 슬픔과 괴로움 안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 있는 듯하다. 이렇듯 천경자의 작품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개인적인 경험이 투영되는 자전적인 소재로서 굴곡진 삶에서 느꼈던 한과 고독의 정서를 다양한 여인상에 담아내는 과정을 통해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20230228  :  S  :  추정가 KRW 900,000,000 ~ 1,200,000,000

                              HP  :  600,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