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세한도'(1844), 종이에 수묵, 23.3x108.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작년 연말 정부는 ‘세한도’를 기증한 손창근 선생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하고 대통령이 직접 격려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는 흔히 값을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라고 할 만큼 최고의 명작으로 꼽는다.
‘세한도’란 이름은 논어 자한편의 겨울이 되어야 송백이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뜻의 ‘세한송백(歲寒松柏)’에서 왔다. 그림 속의 오른쪽 고목나무는 소나무, 나머지 3그루는 잣나무라고 흔히 해설한다. ‘송(松)’이 소나무인 것은 틀림없으나 ‘백(柏)’이 무슨 나무인지는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잣나무와 측백나무를 똑같이 ‘백(柏)’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측백나무 종류 전체를 말한다. 잣나무는 우리나라 중북부에서 중국 동북부와 아무르강 북쪽 러시아에 걸쳐 분포한다. 중국 문화의 발상지인 황허나 양쯔강 유역 등 중국 내륙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공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중국 선비들은 잣나무를 평생 본 적이 없다. 따라서 중국 문헌에 나오는 송백을 소나무와 잣나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참고로 추사가 귀양 가서 살았던 제주도에는 아예 잣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중국에는 측백나무 종류가 여럿 있지만 이들 중 우리나라에는 측백나무만 자란다. 결국 ‘세한송백’의 나무는 소나무와 측백나무로 보는 것이 맞는다.
그렇다면 ‘세한도’에 그려진 실제 나무는 무엇인가? 문인화로서 마음속의 풍광을 그렸을 터이지만 그림의 모델은 있었을 것이다. 추사는 귀양지였던 제주 서귀포 대정마을에서 만나 익숙한 나무를 대상으로 삼지 않았을까 싶다. 대정 일대에는 침엽수로서는 소나무와 바닷가에 주로 자라는 곰솔[海松]이 흔하다. 그림에서 보면 집 앞의 비스듬히 자라는 오른쪽 고목은 껍질이 거북 등처럼 갈라지고 잎은 짧으나 부드러운 맛이 난다. 소나무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바로 옆 나무는 굵기가 소나무의 3분의 1 남짓하며 껍질이 세로로 길게 갈라지고 줄기도 곧다. 잎이 촘촘하고 솔잎이 억세다는 느낌이다. 곰솔을 떠올려 보면 바로 그 나무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집 왼쪽의 두 나무는 오른쪽 두 나무보다 지름이 가는 젊은 나무이다. 줄기가 곧으며, 가지는 거의 수평으로 뻗고 잎은 상하 짧은 직선으로 처리하였다. 역시 곰솔의 특징과 일치한다.
따라서 ‘세한도’ 속에서 만나는 나무는 늙은 소나무 한 그루와 3그루의 곰솔이다. ‘세한송백’의 본래 뜻으로 읽으면 소나무와 측백나무, 그림 속의 실제 나무로 보면 소나무와 곰솔이라고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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