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존과학센터, 5년 만의 쾌거
15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센터 보존처리장. 5년 만에 지광국사탑 보존처리를 끝낸 이태종 학예연구사(오른쪽)과 연구원들이 새 석재를 보강해 복원한 옥개석 앞에서 웃고 있다. /신현종 기자
부서진 조각을 맞추니 사라졌던 지장보살이 되살아났다. 지난 15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보존처리장. 국보 제101호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부재(部材) 29점이 대수술을 끝내고 뽀얀 얼굴을 내밀었다. 폭격을 맞아 형체를 알 수 없었던 지붕돌 정면 지장보살상이 새 석재로 얼굴을 되찾았고, 뭉개졌던 나비·벌·구름 무늬, 지붕 아래 드리운 장막의 미세한 주름까지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국보 101호 지광국사탑의 지붕돌이 보존처리를 끝낸 모습. 가운데 날개를 활짝 편 가릉빈가(불교에서 극락정토의 설산에 산다는 상상의 새)가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지광국사탑 지붕돌 가장자리 부분. 날개를 활짝 편 가릉빈가(불교에서 극락정토의 설산에 산다는 상상의 새)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보개(팔각형 덮개) 보존처리를 끝낸 모습. 뽀얗게 흰 부분은 새 석재로 보강해 넣은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대수술 끝내고 제 모습 되찾은 탑
일제강점기에 뜯기고 6·25 때 폭격으로 파손됐던 비운의 탑이 대수술을 받고 다시 태어났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서울 경복궁 안 국립고궁박물관 앞뜰에 있다가 보존 상태가 악화돼 지난 2016년 전면 해체·보수 공사에 들어갔던 지광국사탑이 5년에 걸친 보존 처리를 끝내고 제 모습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2016년 탑을 전면 해체한 지 5년 만에 보존 처리가 끝났다. 일제강점기에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을 통해 지붕돌에서 소실된 지장보살상, 나비·벌·구름 문양까지 되살렸다. 전체 부재 29점 중 19점에 새 돌을 넣었다. 수리가 끝난 각 부재는 고향인 원주로 돌아가 탑의 형태로 세워질 예정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지광국사탑은 고려시대에 나라에서 ‘국사(國師)’ 칭호를 받은 지광국사 해린(984~1070)의 사리를 봉안한 탑이다.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5.2m 석탑으로, 아래 평면이 4각형 양식이다. 탑 전체에 조각한 구름·연꽃·봉황·신선 무늬 등 화려하고 이국적인 풍모까지 갖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승탑(僧塔)으로 평가받는다. 6·25 때 폭격을 맞아 1만2000개 파편으로 조각 났다가 1957년 일일이 붙이고 시멘트로 땜질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땜질 부분까지 떨어지는 등 위험한 상태였다.
지광국사탑이 6 25 전쟁 때 폭격을 맞아 파손된 모습.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소는 먼저 시멘트를 뜯어내고 파손된 부분엔 새 석재를 보강해 넣었다. 이태종 학예연구사는 “2년 동안 전국 채석장을 찾아다니며 유전자 비교하듯 석재 성분을 비교 분석한 결과, 원 자리인 원주의 귀래면 석산에서 원래 돌과 가장 비슷한 재질의 입자 고운 화강암을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전체 부재 29점 중 19점에 새 돌을 넣었고, 가장 훼손이 심했던 지붕돌은 절반 가까운 48%가 새 석재로 복원됐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0호 석장(石匠) 이재순 보유자가 새 돌을 깨고 쪼아 문양을 새겨 넣었다.
지광국사탑 수리 과정에서 지붕돌의 시멘트를 제거하는 모습. /국립문화재연구소
지광국사탑 수리 과정에서 탑신석의 수지처리면을 미세 보정하는 모습. /국립문화재연구소
일제강점기에 촬영한 유리 건판 사진과 1934년 작성한 실측 도면을 바탕으로 지장보살상 등 사라진 도상을 찾았고, 1957년 잘못 복원됐던 지붕돌 방위와 추녀 위치를 바로잡는 성과도 있었다. 이 학예사는 “60년 전 수리하면서 원래 위치를 찾지 못한 부재 14점이 탑신석 사리공 안에 들어 있었다”며 “이 중 8점을 제자리에 찾아 넣었다”고 했다.
15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센터 보존처리장. 팀원들이 5년에 걸쳐 수리를 끝낸 지광국사탑 탑신석 주위에 서 있다. 이태종 학예연구사(오른쪽)는 "1957년 수리 중 원래 위치를 찾지 못한 부재 14점이 탑신석 사리공 안에 들어 있었다”며 “이 중 8점을 제자리에 찾아 넣었다”고 했다. /신현종 기자
연구소는 또 “해체 과정에서 상층 기단석 위에 누군가 붉은 색으로 그린 말 그림을 발견했다”며 “1912년 오사카로 반출됐을 때 일본인이 훼손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정확한 기록이나 경위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15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센터 보존처리장에서 팀원들이 복원이 완료된 부재들을 살펴보고 있다. /신현종 기자
◇110년 유랑 끝에 드디어 귀향
지광국사탑은 우리 문화재 수난사를 대변한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 일본인에게 원주의 절터에서 뜯겨 서울 명동으로, 이듬해 일본 오사카로 불법 반출됐다가 다시 돌아오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1990년대까지 최소 9번을 옮겨다녔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경복궁을 떠나 용산으로 이전할 때 다른 석조물들을 모두 가져갔지만 이 탑만은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옮기는 과정에서 더 훼손될 것을 우려해서다.
강원도 원주 법천사지에 탑비가 홀로 서 있는 모습. 오른쪽 네모난 빈 자리가 국보 101호 지광국사탑이 원래 있던 자리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다시 태어난 탑은 110년 만에 고향 땅을 밟게 된다. 지난 2019년 6월 문화재위원회 결정으로 원주 절터 이전은 확정됐지만, 경내 어느 지점에 놓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당시 문화재위원회는 탑이 있던 자리에 보호각을 씌워 세우거나 절터에 전시관을 건립해 전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연구소는 “수리는 끝났지만 야외에서 비바람을 계속 맞으면 훼손이 진행될 우려가 있다”는 입장. 하지만 원주시 측은 “보호각을 세우면 주변 경관을 해치고, 전시관 안에 놓는 건 탑이 제자리에 돌아온다는 취지에 걸맞지 않는다”며 “탑비가 기다리는 원래 자리로 복귀해야 한다”고 했다. 문화재위원회는 올해 안에 탑의 안정성 등을 고려해 최종 이전 지점을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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