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아프로디테·니케… 2000년전 신화 속 神 조각상에 관객들 경탄
이탈리아 고대 도시로 들어선 것만 같다. 헤르쿨라네움의 대저택 ‘파피루스의 빌라’에 세워졌던 청동 조각상 ‘앉아있는 헤르메스’가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오른쪽 다리를 앞에 뻗고 바위 위에 앉아있는 잘생긴 청년 조각을 보면서 이상현(11)군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인물을 조각상으로 만나다니 너무 멋지다”고 감탄했다.
14일 오후 '폼페이 유물전'이 열리는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6층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높이 2m 넘는 대리석 조각상 '포토스'를 감상하고 있다. 아프로디테와 크로노스 사이에서 태어난 포토스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열망을 상징하는 존재다. /오종찬 기자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맞아 열리는 ‘폼페이 유물전-그대, 그곳에 있었다’가 13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6층 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전시장은 주말 내내 이탈리아에서 온 귀한 유물을 보러온 관객들로 북적였다. 일요일인 14일에는 오전부터 티켓 발권을 하려는 관람객들로 긴 줄이 늘어섰고, 자녀 손을 잡고 온 가족 단위 관람객, 20~30대 젊은 층부터 노부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들었다. 주말 이틀간 관객 4500여 명이 전시를 보러 왔다.
‘비극의 도시’ 폼페이에서 오랜 세월 화산재에 묻혔다 발굴된 유물은 현대인에게 살아있는 박물관이 됐다. 관람객들은 폼페이 유물에 담긴 미적 감각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족과 함께 대구에서 온 박용남(59)씨는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의 유물임에도 현대를 뛰어넘는 예술적 감각을 볼 수 있었다”며 “디테일이 고스란히 살아있어 폼페이 문화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유연한 자세로 균형 잡힌 신체를 드러낸 조각상 주변에는 많은 관람객들이 몰렸다. 대리석 조각 ‘가니메데와 독수리’ 근처에선 친구와 함께 전시장을 찾은 박성희(34)씨가 “저 척추기립근 좀 봐!”라며 뒷면을 가리키기도 했다. 방금 물에서 나온 듯 몸에 달라붙은 얇은 옷차림의 ‘바다의 아프로디테’ 조각상 앞에선 “아름답다”는 탄성이 이어졌다.
폼페이 건물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사진으로 기록하려는 관람객들도 많았다. ‘춤추는 마이나드’ 앞에서 임재연(45)씨는 “2000년 전 그림인데도 색이 선명하고 아름답다”며 “벽째로 옮겨왔다고 하니 현장감이 더 크다”고 했다. 관람객들은 보존 상태가 좋은 식기와 정원용 수반 같은 장식품을 꼼꼼히 살펴보느라 걸음을 떼지 못하기도 했다. 세종시에서 온 이성우(53)씨는 기원전 6세기 도기를 보며 “우리나라로 치면 고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그릇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폼페이 유물전'.
14일 한국과 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사 주최로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폼페이 유물전'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고 있다. /오종찬 기자
아이들과 함께 온 학부모 반응도 좋았다. 부모와 함께 온 이환희(12)군은 “유물을 보며 글로만 읽었던 폼페이의 역사를 실감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고 했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을 재현한 영상도 어린아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다섯 살 딸과 함께 온 윤승미(33)씨는 “신혼여행을 폼페이로 갔었기 때문에 딸과 함께 올 수 있는 폼페이 전시가 열리기만 기다렸다”며 “아이가 어린데도 재미있어 하고 폼페이 현장에서 느꼈던 신비로운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했다.
전시 마지막에선 폼페이 최후의 순간을 볼 수 있다. 엎드린 채 최후를 맞이한 젊은 여인의 캐스트(화산재 속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희생자의 모습을 본뜬 것)를 본 유미나(45)씨는 “인생이 참 덧없다는 걸 느꼈다”며 “즐길 수 있는 것을 즐기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조선일보사·나폴리국립고고학박물관·CCOC 공동 주최로, 나폴리국립고고학박물관이 소장한 대리석 조각상, 프레스코화, 청동 조각, 장신구, 사람 캐스트 등 폼페이 유물 127점을 전시한다. 5월 6일까지.
14일 '폼페이 유물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6층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오종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