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골문 자전' 낸 손예철 교수
"국내에 제대로 된 학술서 없어" 갑골문 1100字 소개하고 풀이
"가장 오래된 중국문자인 갑골문에 대한 이해는 한자는 물론 중국 역사와 경전을 연구하는 데 필수입니다. 그런데도 한자문화권인 한국에 아직까지 제대로 된 학술서가 거의 없었습니다."
손예철(67) 한양대 중문과 명예교수가 형태·음·뜻이 밝혀진 갑골문 1100여 자(字)를 소개하고 풀이하는 '간명(簡明) 갑골문 자전(字典)'(박이정출판사)을 냈다. 손 교수는 2016년 가을엔 100년 넘게 진행된 전 세계의 갑골문 연구 업적을 한데 모아 해설한 '갑골학 연구'를 출간한 바 있다.
손예철 교수는“갑골문은 한자의 원시적인 모습을 보여줄 뿐 아니라 중국 고대의 역사상을 말해주는 실록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거북의 배딱지나 짐승의 어깨뼈에 국가와 왕실의 중대사를 점치는 글자를 새긴 갑골문(甲骨文)은 중국 고문자(古文字) 중에서도 연대가 가장 올라간다. 중국 고대 상(商)나라의 후기 도읍이었던 하남성 안양현 소둔촌에서 청나라 말기인 1899년 처음 발견된 이래 중국 각지에서 10만 점 넘게 나왔다. 음과 뜻은 같지만 형태가 다른 이체자(異體字)가 많아서 글자 수는 3000~4000자이며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판독됐다. 물건의 형상을 다양하게 본떴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정비돼 진시황(秦始皇) 때 지금 같은 한자의 형태를 갖췄다.
손예철 교수가 갑골문에 입문한 것은 1970년대 말 대만대 대학원에 유학할 때였다. 1930년대 전후해서 대대적으로 갑골문을 발굴했던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밀려가면서 갑골문을 통째로 옮겨왔다. 그는 "자료가 풍부했고 중국도 연구자가 별로 없어서 잘하면 갑골문 권위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갑골문으로 본 상대(商代) 제사 연구'로 석사 논문을 썼고 이후 꾸준히 갑골문 연구를 계속했다.
'간명 갑골문 자전'은 중국 사회과학원이 1982년에 그때까지 발굴된 갑골문 탁본을 모아서 간행한 '갑골문 합집(合集)'을 비롯해서 20세기 초부터 간행된 61종의 갑골문 자료집에서 수록 글자를 뽑았다. 이체자를 한데 모으고 각 글자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해석을 소개한 뒤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따랐다. 이어 갑골문에서의 주요 용례(用例)를 소개하고 중국 고대의 한자 연구를 집대성한 '설문해자(說文解字)'의 풀이와 비교해서 이해를 돕는다. 후한(後漢) 때 허신(許愼)이 지은 설문해자는 한자 1만여 자의 형태·음·뜻을 해설해 한자학(漢字學) 연구의 경전으로 꼽힌다.
손 교수는 갑골문 연구와 함께 중국어사전 편찬과 중국문자학 저술에 힘썼고 설문해자 번역을 오래 전부터 준비하는 등 중국어학 연구에 집중해 왔다. 그는 "나도 다른 학자들처럼 문학이나 경전을 연구하고 싶었지만 우리나라가 기초연구를 너무 소홀히 해서 이쪽에 매달리게 됐다"고 말했다. 조선시대에 화려하고 이론적인 주자학만 집중적으로 받아들이고 명·청대 중국에서 발달했던 실증적인 고증학은 관심이 적었으며 그런 학풍이 현대에도 이어졌다는 것이다. 손예철 교수는 "오래 걸리고 힘들어도 기초를 다져야 학문이 발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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