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메트 미술관의 얼굴 장식한 한국 설치미술가
1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정면의 기둥 사이에 이불 작가의 조각 4점이 설치된 모습. 작가는 미술관의 파사드(전면부)에 수문장처럼 설치된 이 작품들을 ‘가디언’(수호자)이라 불렀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메트·MET)에서 파사드(Facade) 프로젝트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사실 정말 하고 싶었거든요. 마침 제안이 와서 두말할 것도 없었죠. 그냥 ‘예스(Yes)’.”
12일 미국 뉴욕 메트 강당에서 검은색 상·하의에 백발인 여성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 사람은 세계적인 한국의 설치미술가 이불(60). 1964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이 작가는 그동안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과 성 상품화를 공론화하는 등 기존 관념에 대한 저항 정신을 작품을 통해 세상에 표출해왔다. 그의 작품은 세계적인 인정을 받아 뉴욕 현대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일본 모리 미술관, 영국 헤이워드 갤러리 등에서 전시를 했고, 199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특별상과 2016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았다.
이불 작가가 1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화에서 '롱 테일 헤일로' 작품 의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불이 이번엔 미국 최대 규모이자 세계 5대 미술관에 속하는 메트에 자신의 설치미술 작품 4점을 선보인다. 12일부터 내년 5월 27일까지다. 메트 미술관의 건물은 유명 건축가인 리처드 모리스 헌트가 1902년에 완성했다. 헌트는 본래 기둥 사이에 그리스, 이집트, 르네상스, 근대 양식을 대표하는 네 개의 조각을 넣으려고 했으나, 이를 완성하지 못하고 빈 공간으로 남겨놓았다. 메트는 이렇게 빈곳으로 남겨진 네 파사드 공간을 2019년부터 새로운 조각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바로 그 네 곳에 이불의 설치미술 작품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이불은 이곳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니케(승리의 여신)를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부터 자신이 오래 길러온 반려견에게서 영감을 얻었다는 작품 등을 선보이면서 이들을 ‘가디언(guardian)’이라고 불렀다. 그는 뉴욕타임스(NYT) 등과의 인터뷰에서 “예전엔 이런 건물 공간에 수호자를 연상시키는 조각품을 세워놓지 않았나. 나는 그런 조각품에 여러 시대, 여러 층위의 해석을 입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1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정면의 기둥 사이에 이불 작가의 조각 4점 중 작가가 키우던 진돗개를 추상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왼쪽)과 그리스 신화 속 승리의 여신 니케를 재해석한 작품(오른쪽) 등이 포함됐다. 작가는 미술관의 파사드(전면부)에 수문장처럼 설치된 이 작품들을 ‘가디언’(수호자)이라 불렀다. /윤주헌 특파원·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