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사진으로 더 빛나는 1500년 전 ‘황금의 나라’
사진가 구본창이 경기도 분당 작업실 정원에서 천마총 금제 관식 사진을 높이 들어보였다. 왕의 관모에 꽂았던 장신구가 활짝 편 새의 양 날개처럼 우아하게 뻗어있다. /박상훈 기자
1500년 전 ‘황금의 나라’ 신라를 호령했던 최고 권력자의 금관이 사진 속에서 눈부신 빛을 발한다. 전시장에서 보던 것처럼 허공에 떠있는 게 아니라 단단한 바닥에 놓여있다. 사슴뿔 모양의 세움 장식, 푸른색 굽은 옥과 순금 달개 장식이 화려하게 장식된 6세기 초 천마총 금관이다.
“신라 금관 사진을 찍으려고 국립박물관 문을 7년 두드렸어요. 드디어 허락받고 사진을 촬영하던 날, 얼마나 떨리던지…. 이 화려한 유물이 신라 무덤에서 50년 전 출토됐다는 게 감동적이지요. 1500년 전에 누군가 이걸 썼고, 최고 장인이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더 벅차오릅니다.”
구본창, 천마총 금관. 4일 개막하는 국립경주박물관 천마총 특별전에서 200*157cm 크기로 전시된다.
사진가 구본창(70)의 경기도 분당 작업실을 찾아가니, 대형으로 프린트한 신라 금관과 장신구 사진이 널려 있었다. 왕의 관모에 꽂았던 금제 장식은 활짝 편 새의 양 날개처럼 우아하게 뻗었고, 귀걸이와 황금 드리개까지 금색 배경 속에서 차분하게 빛난다.
백자 연작으로 순백의 아름다움을 담아온 그가 황금에 빠졌다. 10년 전 호주 여행 중 황금 유물이 전시된 것을 보고 흥미를 느낀 게 시작이었다. 호주 금광 지역에서 사금(沙金)도 찍고, 페루 리마의 박물관에서 잉카 유물을 시리즈로 촬영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지난 2월부터 천마총을 비롯해 황남대총·서봉총·금령총·금관총 등 신라 금관과 관모, 장신구, 귀걸이 등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이 중 천마총 금관 등 사진 11점이 4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개막하는 천마총 발굴 50주년 특별전 ‘천마, 다시 만나다’ 1부에 전시된다.
구본창, 천마총 관모. 역광으로 촬영한 사진(왼쪽). 화려하게 반짝이는 대신 형태만으로 존재감이 드러난다. 오른쪽 사진은 순광으로 촬영한 천마총 관모.
백자를 찍던 그가 왜 황금에 매료됐을까. 그는 “인류의 역사에서 금은 인간 욕망의 종착역인데, 이집트나 잉카 문명에서도 태양 빛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이 반짝이는 색감에 매력을 느낀 것 같다”며 “소유하려고 애쓰지만 권력을 가진 인간도, 찬란한 문명도 결국은 사라지고 유물만 남는다. 피사체로서의 황금을 조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덩어리째 양감이 고정된 백자와 달리 금관은 촬영이 쉽지 않았다. 뿔처럼 튀어나오고, 각도가 흐트러져 있는 데다 바닥에 놓으니 벌어져서 형태를 고정해야 했다. 그는 “전시장에선 늘 붉은색 벨벳 고정대 위에 떠 있는데, 바닥에 닿으니 더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백자는 인사동에서 싸구려를 구입해서 실컷 연습할 수 있었지만, 금관은 연습할 수 없어서 고민했어요. 박물관 뮤지엄숍에서 금관 미니어처를 사서 빛의 방향과 조명, 각도를 맞추는 연습을 했죠. 마침 올해 금령총 전시 때 경주에서 신라 금관 3개가 모여서 그때 찍고,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황남대총 금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서봉총 금관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가 구본창이 경기도 분당 작업실에서 지난 2월 촬영한 신라 천마총 금관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구본창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짧게 직장 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다. 대우실업 무역부에 입사했지만 “이렇게 평생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6개월 만에 그만두고 독일 유학을 떠났다.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이 백자 시리즈의 출발이 됐다. 영국 도예가 버나드 리치가 일제시대 한국에서 구입해 간 달항아리 옆에서 제자 루시 리가 찍은 사진에서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대영박물관(영국), 보스턴미술관(미국), 기메미술관(프랑스), 리움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는 “길 가다 좋은 풍경을 만나거나 아름다운 유물을 만나 사진으로 담으면, 영혼이 부자가 되는 느낌”이라고 사진의 매력을 꼽았다. 6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12월 서울시립미술관 초대전에서 황금 사진을 본격 선보일 예정이다.
구본창, 천마총 귀골이(왼쪽)와 천마총 금제 관식
천마총 특별전은 7월 16일까지. 구본창의 사진과 함께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 실물이 9년 만에 공개된다.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지난 50년이 천마총 발굴품의 연구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이를 응용한 창의적 콘텐츠 개발의 시대이기를 바란다는 의미에서 구본창 사진을 전시 도입부에 배치했다”며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미래를 생각하는 전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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