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10기(생도1기)로 6.25에 참전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워 18개의 무공훈장을 받았으며, 세 번이나 전사 보고가 올라갈 정도로 생사전몰(生死存沒)을 가늠키 어려운 전쟁터를 누볐던 고(故) 이인수 대령을 기린다.
그가 교도소에서 나와 새문안교회 집사로 있을 때, 간증하는 자리에 우연히 참석한 적이 있다. 아래는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 자신이 겪은 경험담을 술회하던 내용이다.
이인수 중령이 지휘하는 대대는 적과의 공방이 치열했던 어느 전선에서, 포획한 인민군 포로들을 심문하는데, 앳되보이는 소년들이 몇이 있었다고 한다. 적이 포위를 좁혀 오는 급박한 중에, 포로들을 후송시킬 형편이 안 될 때는 부득이 사살해야 하는데, 이 소년들이 이인수의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며 불며 애원을 한다.
“저희는 평안도 정주에서 한 동네 사는 친구들인데 의용군에 억지로 끌려 왔어요. 우리네 집안들은 대대로 기독교를 믿는 집안이고, 저희들도 주일마다 교회를 나가는 애들입니다. 공산주의도 모르고 아무런 죄가 없으니 살려주세요. 집에서 어머니가 매일 밤새 기도하면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집에 돌아가야 합니다.”
이인수의 집안도 기독교 집안이었기에, 당시에 신앙이 깊지는 않았으나, 동생 같은 아이들에게 얼마간 동정도 들어가는지라 진위도 구분할 겸 해서, “그렇다면 아는 찬송가를 한 곡 불러 봐라” 시켰더니, 소년들이 눈물 콧물 흘리면서 “나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를 구슬프게 합창을 한다. 이인수는 그들을 신뢰하고, 그 자리에서 국군에 현지 입대시켜서 종군하도록 조치한다.
시간이 흐른 후, 이인수의 대대는 미군이 여러 차례 공격에 실패하고 물러난 난공불락의 적 고지를 탈취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고지 위에는 인민군들이 견고한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훤하게 비탈진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사격을 해대는 통에, 엄폐물도 없는 경사로를 공격해 올라가다가 번번이 전상자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적의 방카에서 퍼붓는 기관총들을 제거하지 않고는 공격이 어렵다는 판단으로 부대원들을 모아 놓고 특공조를 모집하게 된다.
“저 고지의 적 기관총 진지들을 없애지 않고는 고지를 점령할 수가 없다. 목숨을 걸고 적 방커를 날려보낼 용사는 앞으로 나오라.”
목숨을 던져야 하는 임무인 줄 알기에, 아무도 나서지 않고 적막만 흐르는 중에, “저희가 가겠습니다”라며 그 소년병들 네 명이 모두 나서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손톱과 머리칼을 조금씩 끊어서 남기고 폭약 배낭을 짊어지고 진지를 출발한다.
한참 시간이 경과한 후, 미명(未明)의 시간에 요란한 폭음과 함께 적의 진지들은 폭파되었고, 부대는 요란한 함성과 함께별 희생없이 고지를 점령하게 된다. 이인수 중령은 폭파된 적의 진지 주변으로, 소년병들의 흔적을 애써 찾아 보았으나, 뼈 쪼가리(이 단어에 가슴이 뭉클했다) 한 조각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후일, 이인수 대령이 5.16 군사혁명에 가담하고,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을 수임 중에, 반혁명사건으로 수형 생활하던 중에도, 그 소년병들의 얼굴과 찬송 소리가 생생하게 떠올라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소년병들은 일제 시대에 태어나 철없는 유년기를 보냈고, 해방후 공산 정권이 들어선 이래, 이념이 무엇인지, 애국심이 무엇인지 알기나 했겠는가. 단지 죽을 뻔 했던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이인수 형님에 대한 의리와 은혜 갚음으로 목숨을 내 놓았으리라.
애국심이란 나에게 뼈와 살을 전해 준 선조들에 대한 의리 지킴이며, 물과 쌀을 먹여서 키워준 조국 강토에 대한 은혜 보답의 표현이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목숨 바쳐온 선대 영웅들의 희생과 업적을 따라 배움과 실천함이 바로 애국심이 아니겠는가?
그 소년병들은 현충원에 이름 석자로 묻혀 있을 것이나, 그들을 기다리던 어머니와 가족들은 오늘날까지 그들 앞에 꽃 한 송이, 술 한 잔 놓을 수 없는 현실이니 가슴 미어지는 비극이다. 이인수 대령과 특별한 피의 인연을 맺은 소년병들은, 저승에서도 그를 만나 함께 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 이야기는 40여년 전 이인수 대령으로부터 직접 들은 내용을, 기억해서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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